정권교체를 넘어 거대한 전환을 준비하자.
전망기획① 2012년 양대 선거와 한국사회

정태인/새사연 원장


 
[목차]

1.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 침체"로.
 
2. "87년 체제"의 위기와 "거대한 전환"
 
3. "정권교체"에서 "시대교체"로.
 
 
 
[본문]

1.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침체로”
 
2012년 우리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하기 전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역사의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위지는 이런 역사의식을 “역사로서의 현재”라는 말에 담았다.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이다.
1990년대 말 미국정부는 IT 버블이 붕괴하자 재빨리 부동산 버블로 바꿔치기 했다. 그 수단은 금융규제완화와 금리 인하였고 그 결과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초래된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이다. 2009년 전 세계적 금융완화정책과 재정확대정책으로 각국의 성장률이 회복기미를 보이자 G20의 세계적 차원의 개혁도, 또 오바마의 내부 금융개혁도 흐지부지 끝났다.
 
2010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로 제2차 위기가 촉발되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같은 통화를 쓰면서도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에 대한 보조금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사태이다. 비유하자면 우리 정부가 강원도에 대한 지역교부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서울이 강원도로부터 막대한 교역 이익(경상흑자)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현재의 유럽 위기는 내부의 위기이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재정통합을 하는 대신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유로화 표시 국채를 발행해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역내 강대국의 은행들이 인수하도록 했다. 재정이 해야 할 일을 금융으로 해결한 것이다. 미국이 소비와 재정을 재무성 증권으로 조달하고, 유럽이 재정을 역내 금융으로 바꿔치기 한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을 만능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겼기 때문이다.

AP연합뉴스/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

 
이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대규모 적자로 인해 재정확대정책도 쓸 수 없고 이미 0%에 이른 금리 때문에 금융완화정책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바야흐로 선진국 전체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바야흐로 “대침체”(Great Recession, 대공황과 비교하기 위해 학자들이 2008년 위기에 붙인 말)는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의 위기도 동시에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새로운 국제통화와 국제청산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데, 달러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하고, G20는 IMF 기금을 조금 늘리는 정도의 밖에 합의하지 못했다.
위기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야 할지에 관한 새로운 정책체계도 나오지 않았다. 1945년 이후의 복지국가를 뒷받침한 케인즈이론이 1930년대에 출간됐고, 1980년대를 풍미한 통화주의이론이 1960년대에 정립된 것에 비하면 위기 이후의 사회의 이론은 오리무중이다. 학문의 제국주의를 일삼으며 오만을 떨던 경제학은 이미 붕괴했다.
중장기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환율법”(환율을 조작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나라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게 한 보호무역법안)과 제3차 양적 완화(달러의 증발)로 또 한편의 환율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주기를 갖는 패권 주기도 최저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구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점에 올랐던 미국의 단일 패권은 쇠퇴 기미가 역력한데 이를 대체할 패권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헤게모니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세계는 중미간의 위태로운 힘겨루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한 복판에 있다. 이렇게 10년 주기, 60년 주기, 그리고 패권 주기가 모두 최저점에 이른 상태를 나는 “3중의 위기”라고 불렀다(경향신문, 2009. 1.12).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석유의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오일피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으며(전문가들은 2015년경으로 예측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역시 다음 세대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에너지/석유 위기가 겹칠 가능성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이 이런 문제를 곧 해결하리라고 믿기에 너무나 큰 위기들이 첩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기가 다른 위기, 즉 시간대(time span)가 다른 위기가 중첩되고 있다는 것은 해결의 주체와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로서의 현재”는 2012년 총-대선이라는 구체적인 한국 상황(알뛰세 표현으로 말하자면 conjuncture)에서 중첩적인 과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위기의 각 영역에 고유한 해결 방향을 찾아내고, 2012년 한국이라는 정세 안에서 그 방향을 당장 실현할 하나의 가치와 비전으로 제시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위기 해결 방향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작업은 고도의 추상성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2. “87년 체제”의 위기와 “거대한 전환”
 
세계경제 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도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과 이에 긴밀히 묶여 있는 가계부채가 바로 그것이다. 2009년 세계적 경기자극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의 수출대기업이었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버블 붕괴의 초침을 잠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는 90%를 넘나드는 대외의존도의 한국경제를 바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자동차의 내수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수출 증가율 역시 반토막 날 지경에 이르렀다. 1100원대에서 방어해 온 환율마저 무너진다면(현재는 유럽위기의 여파로 달러가 강해지고 있지만) 실물침체가 금융경색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마저 있다. 내부에서 파들거리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도 1980년대 후반 미국의 S&L 위기처럼, 제2금융권으로부터 시작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진행되어 온 양극화는 사회 전체에 절망, 즉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융자유화와 가계신용의 확대,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부동산/증권 투기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지표들을 가파른 비율로 상승시켰다. 주거, 교육/보육, 일자리, 노후, 건강 걱정이라는 이른바 ‘5대 불안’은 그 직접적 결과이다.
 
한국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와 외환위기, 뒤이어 IMF의 강요와 내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진행된 김대중 정부의 노동유연화,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과 이명박 정부의 비준으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6월 항쟁”으로 시작된 “87년 체제”는 군부독재를 종식시켰을 뿐,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모델이 자리를 잡지 못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부”는 자기 고유의 사회경제모델을 실행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모델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클린튼-블레어정부가 그랬듯이 적나라한 신자유주의에 약간의 훈기를 불어 넣었을 뿐 시장만능으로 치닫는 시대를 역전시키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탄했듯이 민주정부는 새로운 시대의 장자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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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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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 붕괴와 부활, 그리고 한국

 

정태인(경제평론가)

 

1. 마이드너의 꿈 -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

 

 

(이번 호에 쓸 글은 상당한 경제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웨덴 모델은 지금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스웨덴 모델은 신정완교수의 믿을만한 책 등으로 꽤 많이 소개돼 있으니 여유가 있으신 분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복잡다단한 역사를 생략하고 렌-마이드너 모델을 단순화한 논리로만 설명합니다. 가능한 쉽게 이야기하려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그건 오로지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스웨덴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내 마지막 질문은 똑같았다. “제2의 마이드너라고 할 만한 사람은 누굴까요?” 때론 렌-마이드너 모델 이후 스웨덴 특유의 독창적 거시모델이 만들어졌는지, 또는 그런 모색을 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다. 그러나 속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마이드너와 한 방을 쓸 정도로 절친했다는 스트리앙교수도 곤혹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LO(우리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의 연구책임자에겐 “당신이 그 후계자가 되길 바란다”고 덕담을 했더니 그는 “말도 안된다”며 얼굴을 붉혔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는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평등교육과 성평등 정책에 관해 담당자에게 직접 들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그런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전반적인 거시모델에 관해서 물었으니 답이 신통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 답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지금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스웨덴이 이번 여행기에서 뭔가 냉대를 받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런 ‘불평등한 질문’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마이드너 자신이 1998년 인터뷰에서 받은 것이기도 했다. “창조적인 사회민주주적 개혁의 새로운 목소리를 들은 게 있나요?”(실버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있냐구요? 나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건 (83살이나 먹은 늙은이라서) 내 잘못이겠죠”(마이드너)

 

요스타 렌과 함께 1951년 저 유명한 렌-마이드너 모델을 만들었던 루돌프 마이드너는 1993년 “왜 스웨덴 모델은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썼다. 한 때 빠른 성장과 동시에 최고의 복지를 누림으로써 온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스웨덴 모델. 그 설계자가 실패를 자인할 수 밖에 없는 비통함이 글 안에 절절하다.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했던 그 모델의 핵심은 무엇이었고 왜 무너졌는가?(지면 때문에 다음 달에 얘기하겠지만 지금은 ‘스웨덴 모델의 부활’을 논하고 있다. 여전히 스웨덴은 세계 최고이다. 최근의 금융위기 때도 미국 언론들은 ‘스웨덴에서 배우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바로 1990년대 초 스웨덴의 정책을 따르자는 얘기니 과연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마이드너 스스로도 자신이 쓴 LO의 제안서(1951)를 ‘케인즈주의의 수정’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이들의 관심은 케인스의 ‘실업 대책’이 아니라 정반대로 ‘안정정책’이었다. 유럽의 북쪽 외진 곳에 있었던 덕에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피했고 더구나 전후 유럽의 부흥기를 맞아 스웨덴은 초호황을 누렸다. 따라서 스웨덴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인플레이션이었는데 문제는 동시에 완전고용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른바 ‘필립스 커브’(최초로 필립스가 인플레이션과 실업율의 트레이드 오프 관계를 논문으로 쓴 해는 1957년이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한 경험은 독특한 인플레이션 이론을 가지도록 했는데 그것은 초호황으로 숙련 노동자를 구하기 힘든 수출대기업이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의 노동자에게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임금-물가 연쇄 상승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으로 알려지게 되는 뉴케인지언의 이론을 이들이 생생한 경험 속에서 이미 깨닫고 있었다는 얘기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의 동시 달성이라는 꿈의 비법은 무엇일까? 물가안정을 위한 재정긴축정책과, 동시에 산업간 임금격차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연대임금정책이 그 핵심이다. 물론 이것은 LO와 SAF(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기업가들의 모임)가 중앙교섭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출대기업으로서는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줘도 되니 대환영이고, LO는 평등과 연대라는 사회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그림1> 참조).

<그림 1> 렌-마이드너 모델

 

문제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한계산업 또는 중소기업들이 파산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렌-마이드너 모델이 지닌, 또 하나의 독창성이 나오는데 바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다. 노동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동시에(70년대 이후 스웨덴의 실업수당은 이전 월급의 80% 수준을 넘나든다) 성장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재교육/재훈련을 하는 것이다. 훗날 학자들이 ‘일자리 보장’(job security, 즉 평생직장)이 아닌 ‘고용보장’(employment security)이라고 부른 정책이며, 요즘 유행하는 유연안정성(flexecuity)의 원형인 셈이다. 여기서 유연성(flexibility)이란 곧 노동자의 이동성(mobility)이며, 말하자면 노동자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이다. 마이드너는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을 당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율조정’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수출대기업 등 고생산성 산업부문이 초과이윤을 누리고 결국 권력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70년대 중반에 마이드너는 ‘임노동자 기금안’(마이드너 플랜)을 내 놓는다. 원안은 대기업 이윤의 2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해서 노조가 관리하는 기금에 내 놓게 하는 것으로 이렇게 20-30년이 지나면 노조는 웬만한 기업의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물론 SAF 등 자본가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사민당도 세가지 의견으로 분열했으며 결국 LO와 사민당 관계는 서먹해지고 끝내 사민당의 패배로 이어져서 마이드너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결과가 그렇다 해도 임노동자기금안은 시장경제 틀 내에서 실제로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정책이었으니 기금사회주의자(fund socialist)인 블랙번이 2005년 마이드너가 세상을 떴을 때 조사에서 그를 ‘끝없이 실천적인 비전있는 사회주의자’라고 칭송할만 하다. 마이드너 스스로 말한대로 임노동자기금은 렌-마이드너 모델의 원래 요소는 아니었지만 그림에서 보듯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정책이었다. 다만 왜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든 70년대말이 아니라 최상의 조건이었던 50년대 말부터 시행하려 하지 않았을까가 아쉬울 뿐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렌-마이드너 모델은 짧게는 노동자 주도의 독창적 구조조정 정책이고(사실 이들의 독창적인 임금-물가상승이론이나 수출대기업의 이익이 되는 연대임금 모델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심지어 ‘반노동자적’ 정책으로 비판받기 십상일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장기전망을 가진 모델이었으며 실제로 약 20여년간 스웨덴 경제가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든 동력이었다. 물론 이런 성공은 80%에 이르는 노조 조직률과 평조합원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점은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스웨덴 모델의 장기 위기를 설명하는데도 필수적인 요인이며 동시에 최근의 ‘부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다음 호에 계속).

 

 

 

2. 스웨덴 모델의 붕괴와 부활, 그리고 한국

 

 

(저는 결코 스웨덴 전문가가 아닙니다. 일주일 갔다 오고 한두달 공부를 했다 해서 어떤 나라를 안다고 한다면 그건 선무당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글이 바로 그렇습니다.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스웨덴 논쟁에서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혹시 독자들을 호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그러하듯 우리나라에 관한 생각을 스웨덴에 투사하는 오류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신정완교수, 조영철박사의 글을 꼭 같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온갖 경제학 이론이 다 등장하기 때문에 어려우실 겁니다.)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

 

마이드너가 비통한 마음으로 위 제목으로 글을 쓴 때는 1993년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내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노정하던 스웨덴은 그예 1991년 통화위기를 맞았다. 1984년에서 94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3.0% 증가한 반면 스웨덴은 1.4%에 머물렀다. “스웨덴 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미국과 스웨덴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앞다퉈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이 일할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에 물들게 했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공짜 점심(예컨대 월급의 80%에 해당하는 장기 실업수당)을 주는 데 왜 일을 할 것이며 병가를 내도 조사를 하지 않으니 툭하면 집에서 쉬는 게 당연하다(도덕적 해이). 소련-동구가 그렇게 망했는데 ‘북구사회주의’(미국이나 주류경제학 쪽에서 보면 북구는 사회주의다)라고 어디 가겠는가?

 

미시논리(이기적 인간의 행동 원리)로 보면 그럴듯하고, 또 주위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어서 바로 수긍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은, 훗날 린더트에 의해서 철저히 실증적으로 반박되었다. 현실에서도 스웨덴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1%를 성장해서 미국의 2.8%보다 높은 성장률을 거둠으로써 ‘부활’하게 된다. 물론 임금격차 등 각종 평등 지표에서 스웨덴은 여전히 수위를 달리는 반면 미국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렇다면 지난 번에 살펴본 렌-마이드너 모델은 왜 70년대 중반부터 작동하지 않았을까? 또 90년대 중반 이후에 다시 효율과 평등의 균형을 찾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 번째 원인에 대한 마이드너 스스로의 진단은 이렇다.

 

우선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네번에 걸친 대규모 평가절하 등)으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 반면 원래부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던 연대임금정책은 효력을 상실했다. 그는 첫 번째 이유로 그 스스로 심혈을 기울였던 동일노동가치-동일임금이라는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데 실패했다고 자책한다. 기업가 집단이 중앙교섭을 거부하면서 기업의 이윤격차가 임금격차를 낳았고(효율임금의 적용) 노동자의 연대는 훼손되어 임금부상(wage drift)과 와일드캣 파업이 빈번해졌다. 마이드너의 확신대로 임금격차와 노동자 간의 경쟁은 자본가의 통제 능력을 극대화한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최저임금법 등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이것은 곧 사회적 합의 모델이 붕괴한 것을 의미했다.

 

마이드너는 애써 희망을 찾는다.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에서 동맹을 찾아내는 능력이 사회민주당이 지도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스웨덴 사회주의가 다시 일어서려면 “스웨덴 노동운동이 원래 모델을 회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져야 하며 여전히 연대임금과 집합적 자본형성이 그 핵심이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가치에 기초한 사회라는 이상(notion)은 비인간적 시장의 힘에 의해서 절멸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

 

렌-마이드너 모델의 붕괴

 

비전문가로서 단언하건대 렌-마이드너 모델은 훗날 단순화된 케인스 모델이 아니다. 20-30년대의 케인스의 정책 처방만 놓고 본다면 70-80년대 스웨덴 좌우파 정부의 정책이야말로 케인스주의에 가깝다.

 

예컨대 위기 시의 평가절하 정책이라든가(물론 케인스의 주장은 처칠 정부의 금본위제 집착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유효수요 부족을 메우기 위한 재정확대 정책이 그러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금융세계화와 기술혁명이라는 조건에서 이런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한 인식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대내적으로는 과거의 스웨덴 모델, 즉 노조나 기업가 등 주요 행위자들의 행동양식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점에서 70-80년대의 정책은 대위기를 낳았다.

 

분명 관대한 복지제도가 이미 70년대부터 노동규율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국제분업의 측면에서 포드주의가 세계적으로 일반화하면서 스웨덴의 철강, 조선산업이 일본, 그리고 뒤이어 한국 등에 밀리기 시작했다. 장기적인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부르주아 연립정부나 사민당 정부가 모두 선택한 것이 대규모 평가절하정책이다. 76-82년에 집권한 부르주아 연립정부는 사양산업에 대한 보조금과 고용유지지원금도 지급했다. 이 모두 인플레이션 억제와 생산성 향상(즉 구조조정)을 통한 완전고용 달성이라는 렌-마이드너 모델과는 정반대의 정책이다. 대규모 보조금이 가져온 재정적자는 공공저축의 증대라는 또 하나의 축도 무너뜨렸다(<그림1> 참조).

 

인플레이션은, 어쩌면 당연하게 렌-마이드너 모델을 붕괴시켰다.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특히 85년의 대출상한규제 철폐), 조세개혁(특히 91년 이자에 대한 조세감면)은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넘어 폭발적인 거품경제를 불러 일으켰다. 평가절하로 인한 무역흑자에 대해 불태화정책(통화환수)을 쓴다면 수출-내수 부분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수출분야의 남아도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더 쏠리게 만든다. 이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가면(투기공격) 바로 외환위기이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자를 붙잡기 위해 이자율을 무려 500%까지 올려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스웨덴 모델의 부활?”

 

그렇다면 지난 10여년의 성장률 회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없이 많고 더구나 인구 900만명의 소규모 수출경제는 대외 조건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번의 금융위기가 스웨덴에 얼마나 타격을 줄지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90년대 초반에 정립된 정책기조(신정완교수의 “통화주의적 사민주의”)가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스웨덴의 부활’ 또는 성장과 평등의 균형이란, “80년대의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시스템이 스웨덴 고유의 장점들을 흡수해서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국면에 들어간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가설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렌-마이드너 모델은 거시적으로 볼 때 안정정책이었으며 동시에 동학적으로 볼 때는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정책이었다. 물론 마이드너의 기대와 달리 연대임금정책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지 않았다. 경제의 구조변화와 함께 금속노조(주로 수출대기업 산하)의 영향력은 눈에 띠게 줄어들었고 화이트칼라 노조와 공공노조 등이 하나의 중앙교섭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으로 첨단 벤처기업이 늘어나게 되면 업종의 다양성을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리로 포괄하는 임금결정제도를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자본 쪽에서도 기업별 분권교섭과 와일드캣 파업이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1997년 “산업발전과 월급 형성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산별, 지역별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분권화된 중앙교섭이 복원되었고 부분적으로 금속노조의 리더십도 회복되었다. 여전히 80%에 가까운 조직율은 노조가 언제든 적극적으로 거시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이하 <그림2> 스웨덴 모델의 부활 참조).

 

 

산업의 다양화와 불확실성의 증대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유효성도 의심을 받고 있지만(급변하는 환경에서 미래에 어떤 산업이 잘 나갈 것으로 알고 거기에 맞는 맞춤교육을 어떻게 하겠는가?) 지방분권형 노동시장정책이 클러스터와 결합된다면 (네트워크의 정보효과로) 이 문제는 더욱 효과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전통의 보편적 사회서비스(교육, 보육, 의료 등)도 과거처럼 증가 일변도는 아니지만 GDP의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스웨덴 국민의 복지와 고용을 동시에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평등 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구3국은 돌아가면서 성평등지수 1,2,3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 특유의 개인 과세와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지만 성평등정책(출산휴가와 육아제도 등)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율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고용율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성평등이 더욱 진전되면 첨단산업이나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90년대를 거치면서 스웨덴이 산업구조 고도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에릭슨이 상징하는 IT산업이나 바이오산업, 그리고 사업지원서비스 분야의 클러스터(기업-연구기관-지원서비스의 지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는데 폰투손 등 일부 학자들은 이를 독일의 도제식 직업교육에 대비하여 스웨덴의 평등교육(특히 기초교육의 강화)에 연관시키고 있다. 협동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북구형 교육이 네트워크형 협동을 필수로 하는 클러스터 발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모델에 비해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거시적 안정의 메커니즘이다. 자본이동과 변동환율제 하에서 안정의 닻(앵커)을 과거처럼 노동부문이 떠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좌파나 케인지언 쪽에서 격렬하게 비판하는 지점이지만 내가 보기에 스웨덴의 EU가입과 중앙은행 강화는 환율과 금리의 안정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케인스 역시 인플레이션을 줄곧 경계했으며 물가는 중립적 위원회(잉글랜드 은행과는 다른)가 관리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결국 그림에서 보듯이 렌-마이드너 모델은 대폭 수정된 상태로 복원되었다(또는 평등전략이 관철되는 새로운 스웨덴 모델이다). LO-사민당의 거시안정정책은 EU의 안정협약과 중앙은행이 사전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과거 산업사회 시절에 연대임금정책이 담당하던 역할은 더 넓은 사회 제도/정책들, 즉 분권화된 임금교섭, 성평등정책, 평등교육정책 등이 나눠 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처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클러스터의 발전은 다수 시민의 참여 속에서 지속적인 구조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 감히 가설적으로 말하자면 스웨덴, 조금 더 넓혀서 북구의 사회경제를 지배하는 정신은 기본적으로 ‘자제의 경제학’(economics of self-restraint)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변화에 맞서는 ‘자조의 대응 경제학’(economics of self-help response)이다.

 

다만 마이드너가 시도했던 임노동자기금과 같은 장기적인 소유의 사회화 전략은 아직 찾을 수 없다. 금융자본주의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이 때,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역할(사회공헌 투자)은 분명 바람직해 보이지만 여기에서 길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일 것이다.

 

한국과 스웨덴 - 정반대 방법으로 유사한 성공을 거두다?

 

스웨덴모델을 공부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성장전략에 관해서 한국과 스웨덴이 보인 유사성이다. 우선 수출경제라는 점이 그렇고 또한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이뤘다는 점이 그렇다. 외환위기를 공통으로 겪었고 교육에 힘입어 IT등 산업구조 고도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나 그런 성장을 향해 밟은 길은 거의 정반대다. 스웨덴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평등 전략을 고수했다면 한국은 줄곧 불평등 전략을 구사했다. 똑같이 임금을 억제했지만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가 스스로 했다면 한국은 군화발과 제도로 짓밟았다. 한쪽은 80-90% 조직된 노조가 거시 정책을 결정한다면 한쪽에서는 10% 남짓의 노조가 극한의 생존 투쟁을 한다.

 

똑같이 교육 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자랑하지만 한 쪽은 평등과 협력교육을, 다른 한 쪽은 극단적 경쟁교육을 시키고 있다. 결국 성장률은 한국이 조금 높지만 평등에 관한 모든 지표는 극과 극을 보이고 있다. 내 이해가 맞다면 스웨덴은 신자유주의의 압력을 평등의 성장 흐름 안에 외적 규제로 흡수했고 한국은 신자유주의를 전 사회의 운용원리로 받아 들여 모든 부문에서 극단적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 변화에 대한 개인의 마지막 대응은 출산인데, 한 쪽에서는 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출산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출산율이 1.13까지 떨어졌다.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가치를 떠나서 과연 어느 모델이 지속가능할까? 내 원래 전공이 클러스터/산업정책이어서 그런지 나는 클러스터의 발전에서 두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본다. 평등이 다양성을 낳는 사회, 자발적 협력이 이뤄지는 사회가 아니고선 아무리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도(결국 기업도시/혁신도시로 변질된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클러스터였다) 클러스터는 위에서부터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이 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생태의 지속가능성이 최우선의 가치로 주목받지만 건설업의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자연은 파괴될 수 밖에 없다. 스웨덴이 자제와 자조의 모델이라면 한국은 강제와 타율의 모델이다. 한 쪽은 생명을 북돋우고 한 쪽은 생명을 죽인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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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lanchas ghd baratas 2013.03.24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는 시민의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다.


음..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졌네요.

사실 이번 금융위기로 거시경제학은 파탄이 난 상태입니다. 물론 경제학계가 이걸 인정하는 데는 최소 10년은 걸리겠지요.

[##_1C|cfile9.uf@145E60504EA4D2812CDEBD.jpg|width="500" height="333" alt="" filename="cfile9.uf@145E60504EA4D2812CDEBD.jpg" filemime=""|월가 시위대가 미국 월스트리트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 AFP연합뉴스 | 경향신문DB_##] 


해서 현재의 표준 모델을 설명하느니 케인즈의 간단한 모형, 그리고 그 이후 거시경제학이 어떻게 전개됐는가, 그리고

현재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정리했습니다.

인용된 논문 중 몇개를

파일로 올립니다(과연 단 한명이라도, 단 한편이라도 읽어 볼까요?^^)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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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완교수 노트 제2부 1장과 2장입니다. 원래 강의계획에는 3장(거시경제정책)까지 한번에 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하하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거시경제학을 한번에 할 방법이 없어서 두번으로 나눕니다.
대신 제7강 비주류경제학, 제8강 정의론을 한번에 묶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이 쪽이 전공이라 줄여서 강의하기가 더 쉬울 거 같아서..)

[##_1C|cfile2.uf@1171444B4EA4D2DD151DDB.jpg|width="500" height="302.3076923076923" alt="" filename="cfile2.uf@1171444B4EA4D2DD151DDB.jpg" filemime=""|AP연합뉴스 | 경향신문DB_##]


첨부 파일은 참고자료인데 여기에 나오는 챕터나 페이지는 크루그만 등 "경제학 입문" 입니다.

이번 강의는 케인즈를 중심으로 현재 금융위기까지 거시경제이론이 어떻게 변했는지 개관할 예정입니다. 다음 두 파일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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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DB


신정완 교수의 노트로 제5장에서 제7장입니다.

일반적인 경제학교과서로는 시장실패 부분과 정부의 정책(조세 및 보조금) 부분을 보시면 됩니다. 예컨대 크루그만 교과서로는
제4장, 제6장, 제10장, 보울스 교과서로는 제9장에 해당합니다.

다소 자세한 내용, 그리고 경제학교과서에 나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보고 싶으면

 

첨부한 파일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신정완교수 노트에서 특별히 그림을 추가할 것은 없습니다. 위에 첨부한 보완자료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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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uboutin pas cher 2013.04.03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든지 급해하지 말고 기회는 항상 당신이 제일 주의 하지 않는때에 당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을거예요.



신정완교수의 노트 진도를 본 다음, 너무 간단한 요약이라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은 첨부파일을 보거나 일반적인 경제학
원론, 또는 미시교과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정완교수 노트의 그림은 수요일 쯤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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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완 교수의 기본 강의안 ,

그리고 제가 쓰고 있는 경제원론의 미시 - 수요공급부분에 관한 파일을 첨부합니다.

노트만 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항은 경제원론 책이나 미시의 수요공급법칙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애구 제가 첨부파일을 저장만 하고 붙이지를 않았네요.  신정완교수 노트에 나오는 그림들도 찾아서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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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진경 2011.09.06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수강생입니다. 첨부파일을 찾지못하겠는데요.. 어찌 찾아야 할지요

  2. 심옥빈 2011.09.08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첨부파일을 어케 찾아야 하는지요?

  3. 이진산 2011.09.08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자료 잘 받아갑니다. 꼼꼼이 읽어야 하는데...
    오늘 수업시간에 뵙겠습니다.


* 이 글은 7월 6일자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복지동맹 성공의 조건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

 

스웨덴 복지정책의 초석인 렌-마이드너 플랜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이드너가 비통한 마음으로 위 제목의 글을 쓴 때는 1993년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내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노정하던 스웨덴은 그예 1991년 통화위기를 맞았다. 1984년에서 94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3.0% 증가한 반면 스웨덴은 1.4%에 머물렀다. “스웨덴 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미국과 스웨덴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앞다퉈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이 일할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에 물들게 했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스웨덴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1%를 성장해서 미국의 2.8%보다 높은 성장률을 거둠으로써 ‘부활’하게 된다. 임금격차 등 각종 평등 지표에서 스웨덴은 여전히 수위를 달리는 반면 미국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 학자들은 “스웨덴에서 배우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다면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웨덴의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특히 85년의 대출상한규제 철폐), 그리고 조세개혁(특히 91년 이자에 대한 조세감면)은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넘어 폭발적인 거품경제를 불러 일으켰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평가절하 정책에 따라 수출-내수 부문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수출분야의 남아도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더 쏠리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가면 바로 외환위기이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자를 붙잡기 위해 이자율을 무려 500%까지 올렸어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스웨덴의 부활은 1997년 분권화된 중앙임금교섭이 부분 복원되었고, 여전히 GDP의 25%를 차지하는 전통의 보편적 사회서비스(교육, 보육, 의료)가 복지와 고용을 동시에 지탱했기 때문이다. 협력과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 성 평등청책에 의한 높은 고용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또 한번의 산업구조조정을 성공시켰다.

요컨대 위기의 원인은 거시정책이었고 동시에 노동자 연대의 붕괴였다.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는 거시 정책을 쓰면서 복지를 유지하거나 확대한다는 것은 스웨덴에서 조차 불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이유(자본자유화와 금융규제 완화)로 경제위기를 맞았던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부활 역시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아메리카의 복지국가 캐나다의 비극

 

이 땅에서 정말 살기 힘들어 이민을 택하고자 할 때 우리 국민의 머리에 떠오르는 제1순위 나라 중 하나가 캐니다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캐나다는 1989년에 미국과 FTA를 맺었고 1994년에는 이 협정을 확대해서 멕시코까지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발효시켰다.

 

과연 당시 세 나라 정부의 주장대로 성장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 복지도 확대되었을까? 지난 20여년간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소득 양극화 현상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 그리고 3-4위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아예 검토 대상도 아니다. 아메리카의 유럽, 캐나다는 15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다행히도 캐나다는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의 전통에 따라 일반적인 예금 및 대출 업무에 종사했고 파생상품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바젤II보다도 더 강한 자본규제와 유동성 규제에 따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택가격의 버블도 존재하지 않았다. 개방과 민영화, 규제완화에 적극적이었던 멕시코가 2009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본 및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캐나다 사례는 다시 한번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경제성장, 고용, 그리고 실질임금은 나프타의 약속과 달리 지난 15년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동안 경제성장율은 연 평균 2.25%(1인당 GDP는 1.2%) 정도로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전인 80년대의 3%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실질임금은 96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고작 4% 가량 증가했으며, 캐나다 정부가 나프타를 맺으면 따라잡을 거라고 장담했던 미국과의 생산성 격차는 2000년 경부터 더 벌어지고 있다. 전 산업 부문의 생산성이 1% 이상 증가해서 매년 5% 이상의 추가 성장이 일어날 거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그 결과 2000년대 10년간의 중간 지점에서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 중 나쁜 쪽에서 13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은 물론, 놀랍게도 14위를 차지한 한국보다도 캐나다의 불평등지수가 더 높았다. 1990년대 초반 이래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캐나다의 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지출의 비율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나프타 이후 캐나다 정부는 ‘노동복지’(workfare), ‘의무국가’(duty state), ‘사회투자국가’ 등의 구호를 내세워 노동의 의무를 강조하며 복지를 축소했다. 특히 실업급여 제도에서 수급자격의 강화, 급여의 축소, 수급기간의 단축을 통해 현격한 후퇴가 일어났다. 앞에서 본 스웨덴 비판의 핵심인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한 정책을 실제로 수행한 것이다.

 

클락슨 등 캐나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나프타는 외부헌법, 또는 초헌법의 역할을 했다. 일반적인 복지정책, 특히 공공성 강화정책은 나프타의 여러 독소조항과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특히 투자자국가제소권은 캐나다의 공공정책을 가로막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94년에서 2010년 7월까지 캐나다는 알려진 사건만 28건의 제소를 당했다. 한국정부가 강조하는 “예외조항”이 나프타에도 유사하게 존재하지만 자연자원 관련 10건, 환경보호 7건, 심지어 우편서비스 2건 등 핵심적인 공공정책이 그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소송이 진행된 사건보다 돈을 주고 타협한 사건이 더 많을 것이고 소송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지레 포기한 정책 또한 숱하게 많을 것이다.

 

한국이나 멕시코처럼 복지제도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양극화 세력, 즉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FTA의 위력은 배가된다. 멕시코의 전화나 철도 민영화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위기의 엄청난 폐해를 보면서도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야 한다”(박병원 전 경제수석)며 여전히 메가뱅크-투자은행을 추진하는 대통령 측근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위기 덕에 주춤하고 있지만 물 민영화, 가스 및 철도 민영화, 특히 의료민영화를 여전히 호시탐탐 노리는 곳에서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복지 확대는 커녕 복지 축소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협상에서 미래유보로 빠졌다고 하더라도 자발적 민영화와 FTA가 결합하면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대상이 됨으로써 어떤 비극이 발생해도 되돌아갈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스웨덴이나 캐나다에 비한다면 복지에 관해서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가에 불과하다. 연부역강한 청장년의 경우에도 금융규제 완화와 투기, 그리고 시장주의 정책기조를 따랐을 경우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양극화 시대 우리 국민의 의식을 사로 잡은 구호는 “부자 되세요”라든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따위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심각한 양극화 속에서 “나와 내 아이만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 비로소 다 함께 사는 길, 즉 복지를 요구하게 되었다. 지난 2008년의 총선과 작년의 지방선거를 비교해 보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부를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 복지국가는 험난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미국식 FTA를 맺고, 자발적인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함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양극화를 촉진하면서 복지로 그 구멍을 메운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홍수방지책을 만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지출만 늘리면 필경 재정이 악화되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적반하장의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당장 부동산투기와 사교육 등 투기를 근절해야 하고 금융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학력과 성에 따른 양극화를 시정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금융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경제정책기조를 확 바꿔야만 복지동맹이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 아이들 대에 이르면 “아시아의 모범적 복지국가”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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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ap louis vuitton bags 2013.04.08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사람에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활동을 이해하고, 사물을 보는 개념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 글은 내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릴 예정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은 한마디로 ‘신뢰’다. 하바드대의 퍼트넘이 “사회적 자본”에 관한 이론을 전개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이 에밀리아 로마냐였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의 네트워크’로 정의된다. 작년 이맘 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난 이 신뢰의 뿌리를 찾으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학자건, 일반 기업인이건, 또는 협동조합원이건 돌아오는 답은 허망했다. “우린 원래 그래”

 

흔히 이 지역 사람들은 이 곳이 르네상스의 발원지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시민적 인본주의가 중세시대부터 뿌리박혀 있었다는 얘기다. 자신의 영지를 나눠 준 백작부인의 얘기는 이들에게 아직도 자랑거리다. 또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이 지역 레지스탕스 얘기도 흥미롭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주도인 볼로냐의 시청 벽면엔 그 때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이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공산당과 이 계열의 협동조합이었던 레가를 주축으로 이탈리아의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레지스탕스를 벌여서 무솔리니가 항복하기 전에 스스로 독립했다. 우리에겐 영화로 더 알려져 있는 꽈레스키의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의 무대 역시 에밀리아 로마냐인데, 돈 까밀로 신부(별명이 ‘볼셰비키 신부’다)와 공산당원인 뻬뽀네 시장은 시종 아웅다웅하지만 레지스탕스의 동지로서 서로 깊이 신뢰하는 사이이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공산당, 그리고 그 후신인 좌파민주당, 민주당이 단 한번도 정권을 잃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역사가 없다고 신뢰의 사회가 불가능한 건 아닐 것이다. 이 곳은 1950년대 초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못 사는 동네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EU 전체에서도 제일 잘 사는 주 중 하나이다. 당시 만난 에밀리아 로마냐 주 경제부 장관은 “우리는 인구 430만에 기업이 40만개입니다”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어린아이와 노인을 빼면 한 기업 당 불과 5-6명의 영세기업만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곳이어서 전체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수출한다. 삼성이나 현대같은 대기업이 없는 데도 말이다.

 

여기서 신뢰의 네트워크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의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는 자기만 독점하는 기술이나 노우하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워낙 작은 기업들이라 서로 지식과 위험을 공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이 지역 내 9개의 현(우리로 치면 시나 군)은 서로 다른 산업을 영위하는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 요즘 말로 클러스터)를 가지고 있으며 또 각각 고도의 기계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같은 명품 자동차산업은 그 자체로 기계산업이지만 세라믹산업 역시 타일제조 기계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우유협동조합은 팩 기계공장을 가지고 있다. 종합적 지식, 암묵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기계산업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커 나가기 어렵고 모든 최종재 생산 기업의 든든한 허리가 된다. 이렇기 때문에 여기서 하청단가를 후려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물론 최근 ‘주도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 작은 기업들의 영세성을 보완해주는 중간조직들도 매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1940년대에 이미 형성된 CNA(중소기업-수공업 연합회)나 레가(협동조합 연합회)는 회계나 법률, 해외 진출, 그리고 정부 로비 등 사업서비스를 대행해 주고 70년대부터는 “리얼서비스센터”가 산업별 기술 자문을 수행했다. 나아가서 90년대 이후로는 역내 대학교, 국립연구소, 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첨단산업(예컨대 바이오 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신뢰에 입각한 정보의 공유가 시장의 경쟁 메카니즘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런 점이 이 지역을 포함한 제3이탤리가 포드주의를 이을 모델(예컨대 피요르-사벨의 ‘유연전문화 모델’)로 각광받았던 이유일 것이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들 중소기업이 장차 세계화와 정보기술혁명의 격랑 속에서 스스로 대기업이 되거나 아니면 소멸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신뢰의 네트워크 속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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