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원론'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0.11.07 제2쟝 생산가능곡선, 그리고 교역의 이익 (1)
  2. 2010.11.07 제1장 경제, 그리고 경제학
  3. 2010.11.07 경제학 서론

* 이 자료는 경향신문기자들과 함께 하는 경제학 강의 내용입니다. 이 자료를 기초로 "딸을 위한 경제학"을 쉽게 쓸 예정입니다.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제2장 경제모형 : 상충관계와 무역

- 현실은 푸르르지만 대단히 복잡하며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회색의 추상적 모형을 상정한다.

<cf>

* 맑스는 이를 상향으로 표시한다. 하늘 위에서 조감도를 찍으면 중요한 도로와 건물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본질적인 부분으로 모델을 구성한다. 이후에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카메라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데 그 때도 전체 그림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맑스 체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사적 유물론이다.

* 프리드만은 이런 관념에 대해 반대한다. 모델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이유가 없다. 어떤 틀을 만들든 현실을 잘 예측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당구 선수들이나 골프선수은 물리학이나 유체역학을 전혀 모르지만 경험에 의해서 공을 맞출 수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모형을 머릿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주류경제학에는 이런 고도 개념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체계로 본다면 가장 높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은 일반 균형론이다.

* 맑스나 주류경제학 모두 뉴튼 물리학의 영향을 받았다. 진화경제학, 그리고 복잡계 이론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패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 이론은 생물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가설을 세워 현실을 단순화하는 ‘사고의 실험’”

- 세가지 모형

(1) 생산가능곡선

- p33-35 그림 2-1(효율성), 2-2(볼록성), 2-3(성장의 효과) 설명

* 생산가능곡선은 생산의 기술적 효율성을 보여 준다.

* 생산가능곡선은 ‘효율성’이라는 일반적 경제학의 개념을 잘 설명해 준다. 생산에서의 효율성이란 한 물건을 더 생산하고 싶으면 다른 물건의 생산을 줄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를 말한다.

cf) 보통 경제학자들은 머리의 한계 때문에 두 재화의 관계를 먼저 상정한다. 그리곤 행렬을 이용해서 n개로 확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책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2라는 숫자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 생산가능곡선의 볼록성은 기회비용의 체증을 나타낸다. 어떤 물건을 조금 생산할 때 한 단위당 드는 기회 비용(포기해야 하는 다른 물건의 양)에 비해 점점 더 많이 생산할 수록 한 단위당 다른 물건을 더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한계비용이 증가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cf) 생산가능곡선 상의 접선을 한계전환율(MRT, marginal rate of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즉 어떤 점에서 한 재화를 한 단위 더 생산하기 위해서 얼마나 다른 재화를 포기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한 재화를 많이 생산하면 생산할수록 당연히 MRT는 작아진다(음이 기울기이므로)

cf)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규모의 경제, 학습 경제 등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이것이 복잡계 경제학의 출발점 중 하나다.

* 경제성장은 생산가능곡선의 바깥 쪽 이동을 의미한다.

- 생산가능곡선과 무차별 곡선

* 이 그림은 두 재화 사이의 수요-공급곡선에 다름 아니다.

* 이 그림의 균형(Z)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최대한 만족하는 점이며 이 때의 상대가격이 균형가격이 된다. 이것은 일반균형에 대한 직관이다.

* MRT=MRS(marginal rate of substitution, 무차별곡선의 기울기)=상대가격

(2) 비교우위론

- pp 37-39 그림 <2-4>, <2-5>

cf) 편의 상 기회비용 불변(MRT=기울기 일정)의 그림 이용

cf) 특화와 교환이 확실히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두 재화의 가격이 결정한다.

- 비교우위와 절대우위

* 비교우위는 기회비용을 비교한다는 경제학의 관점을 잘 보여 준다.

* 누구나 자신이 비교우위가 있는 생산에 특화하여 교환하면 이익을 얻을 것이다.

* 사람들이 교환으로부터 모두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렇지 않다면 교환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비교우위론은 리카도가 곡물법 논쟁에서 제기한 것이다. 곡물법 논쟁이란 영국의 곡물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매겨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다. 여기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승리한다(또는 제조업자가 농민에게 승리한다).

- 비교우위론에 대한 비판

* 직관적으로 농업이나 광업으로 모노 컬춰가 된 나라들은 시간이 갈수록 뒤쳐진다. 또한 모노컬춰는 시장의 가격변동에 따라 상반된 성과를 낳는다. 특히 식량이나 광물은 탄력성이 적기 때문에 가격 변화가 크다. 따라서 그런 나라 국민들의 삶은 불안정하다.

* “일본, 남한, 중국, 그리고 다른 성장의 수퍼스타들의 경험에서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현재의 비교우위에 따라 전문화하기보다 산업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성장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기간에 제조업의 수퍼파워가 됐는데 부존자원에 기초했다면 거뒀을 성장보다 훨씬 빨랐다... 고성장 국가들은 저생산성(”전통적“) 행위에서 고생산성(”현대적“) 행위로 재빠른 구조전환을 시도한 나라들이다... 달리 말하면 가난한 나라나는 부자나라가 생산하는 것을 생산함으로써 부자가 되었다.”(Rodrik, D, Making Room for China in the World Economy, 2010 AEA 제출 논문)

* 즉 비교우위론이란 정태적 교환의 이익을 보여줄 뿐 한 나라의 동태적 발전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 비교우위론은 특화/전문화와 교환의 이익을 보여주지만 현실의 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는 개인에게 적용할 때도 무리가 있다.

(3) 순환도

- <그림 2-7>, <2-8> 설명

* 한국의 경우 가계소비가 약 60%(약) 지하고 기업의 투자(총자본형성)이 약 25%(강)를 차지한다.

- 실제 거시모형

* 한은 국민소득 방정식

- 실증 경제학과 규범 경제학

1) 내년에 유료 도로 통행료 수입은 얼마나 될까?

2) 통행료를 1달러에서 1.5달러로 올리면 총수입은 얼마나 증가할까?

3) 통행료 인상이 교통량과 도로 근처의 대기오염을 줄 수 있지만 출퇴근 시민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줄 수도 있다. 통행료를 인상해야 할까?

* 경제분석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한 정책이 다른 정책보다 명백히 낫다는 것을 보여 줄 때 사용

*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공통의 가치와 달성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경제학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경제학은 이런 일에 많이 개입한다. 주로 가진 자들 편에서...

- 경제학자들은 왜 합의를 잘 하지 못할까?

* 트루먼 “팔이 하나밖에 없는 경제학자가 필요하다”

1) 시각 차이가 언론에 과장되게 보도된다, 2) 정치와의 연관 3) 가치의 차이 4) 모형의 차이 - 단순화를 위해 가정을 서로 달리 했기 때문에 다른 결과

* 특히 정치와의 연관이 중요하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는 더 많이 연구되고(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안정적 삶을 누릴 수 있다), 더 많이 보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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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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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akley sunglasses cheap 2013.04.12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곤조곤 나직나직 천천히『혜교의 시간』.


제1장 경제, 그리고 경제학

(1) 경제학을 왜 공부하는가?

-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기술

* 경제학의 붕괴. 특히 효율적 자본시장 이론/ 자본시장 자유화 이론이 붕괴했다. G20에서도 경기증폭적 제도를 바꾸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상 버블을 인정한 것이다.

* 그런데 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 이 책은 현재까지 경제학이 제안한 답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현실에 비추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책은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이 받아들인 답이 과연 맞을까에 관한 서술이다. 그렇게 해야 경제학의 답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cf) 이를 위해서 행동경제학과 “승자의 저주”를 이용

* 대안에 관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협력해, 특히 시급한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해서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봐야 하는가를 제시하려고 한다.

cf) 예컨대 현재의 G20라면 금융거래세(토빈세+케인스세)와 새로운 국제통화체제가 “실현가능한 방향”이라고 제시할 것이다.

- 몇가지 실용적 이유가 있다.

첫째, 시장의 논리는 현실에서 작동한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속성이 있는 한 수요-공급의 법칙은 언제나 작용하는 힘이다. 따라서 특히 먹고 사는 문제, 즉 물질이 목적인 문제라면 시장의 논리가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현실이 꼭 그렇다는 얘긴 물론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른다면 현실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힘을 무시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 논리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둘째, 경제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가장 중요하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Q 먹고 사는 문제는 인류 역사 상 언제나 중요했는데, 아니 동식물에게도 중요한데 왜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경제학이 성립했는가?

* 경제학은 일상적인 삶을 연구하는 학문(마셜)

세째, 경제학은 거대한, 아름다운 논리 체계이다(맑스주의 경제학은 역사와 논리가 버무려진 더 거대한 체계이다). 여기에 나오는 몇가지 모듈은 사고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예컨대 공공재 문제 따위가 그러하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런 문제(누군가를 배제할 수도 없고 같이 즐겨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가 발생했을 때 논리적 귀결을 알기 때문에 사고를 진전시키는 데 용이하다.

-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을(만) 알면 현실을 오해한다.

이 책은 현실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잘 정리되어 있는 주류경제학(mainstream economics)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을 주로 보지만 현실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이상을 알아야 하고 또 느껴야 한다.

스티글리츠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갈파한다. 때로는 경제학이라는 안경을 벗고 맨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생활에서, 그리고 역사적 사건 속에서 느끼는 것들이 경제학으로 들여다 본 세상과 비교되어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어야 경제학 자체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논리를 이해하되 논리에 빠지 말라.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삶은 푸르르다”

cf) "그는 오직 자신의 이윤추구를 의도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촉진하게 한다“(스미스, 국부론)

색깔 뿐 아니라 경제학이 아무리 복잡해도 논리체계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모든 논리는 선이다. 현실이 면이라면 논리는 현실의 한 점을 꿰뚫을 수 있을 뿐이다. 삶의 직관이 논리를 감싸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이 다른지 느끼고, 가능하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그 논리라는 방향타도 없이 현실을 그냥 헤맬 수는 없다. 그래서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회문제에 맞닥뜨린다. 그런 여러 문제를 꿰뚫는 원리가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정책 담당자들은 흔히 시장이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것이 파탄이 난 지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 이 책은 경제학에서 합의가 된 명제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최대한 의심하도록 만든다. 올바른 의심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과제이다.

* 우리는 경제학이 사실에 대한 학문(실증경제학)일 뿐 아니라 가치에 대한 학문(규범경제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예) 우리가 의심을 가져야 하는 경제학의 가정들

* 우리는 이기적인가? 협력을 할 조건은 무엇일까?

* 인간의 능력은 얼마나 유한한 것일까? 모든 정보를 다 알고 그것을 즉각 처리해서 합리적인 답을 구할 수 있다는 명제는 얼마나 타당할까? 그런 것을 전제로 삼아 전개되는 논리체계는 얼마나 믿을만 한가?

* 거의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장기해(long-term solution)를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까? 예컨대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지만 끊지 못하는 것을 미래 할인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얼마나 타당할까? 인류 전체로 봐도 심각한 생태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그 징후는 곳곳에 나타났고 요즘 TV 프로그램의 인기 메뉴 중 하나다. “남극의 눈물”을 보라) 북유럽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어떤 나라도 정책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나 있다.

* 시장균형은 실제로도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 하루를 살아 가면서 몇 번이나 계산을 통한 ‘선택’을 할까? 대부분은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일상은 무엇일까? 일상이야말로 어떤 균형의 결과가 아닐까?

* 내 월급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정해진 것일까? 아니 저 사과 값은 왜 500원일까? 더 맛있어 보이는 저 사과는 600원인데 그 차이는 왜 하필이면 100원일까?

* 경향신문 기자와 조선일보 기자의 월급 차이는 왜 나는 것이고 왜 딱 200만원일까?

* 이재용의 월급과 내 월급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셋에 대한 경제학의 답은 효용 또는 한계생산력의 차이가 시장에서 값으로 환산된 결과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도대체 한계생산력을 어떻게 계산할까? 우리는 생산함수를 모른다)

cf) 이 질문은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맑스주의자라면 ‘정당한 착취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산업예비군’의 존재로 인해 경제논리에 의해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럼 혁명=착취를 없앤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어떻게 정해질까?

국가는 한계생산력이라는 개념을 동원해서 ‘정당한 임금’을 계산하지 않을까? 그 이후에 필요에 따라 재분배하는 경로를 통하지 않을까?

* 우연은 우리 삶을 얼마나 지배하는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 뿐 아니라, 현재의 사회에 필요한 능력을 우연히 가지고 있는 사람과 미래의 사회에 필요한 능력을 우연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또 어떤 보수를 받아야 하나? 복불복일까?

cf) 평등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선호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일이라면(적극적 기회의 평등, Sen) 그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성이 효율성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빠른 기술혁신의 시대에 불과 10년 후의 일도 지금 알 수 없으며 지금 필요한 인력이 10년 후에도 그럴 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배계급/특수 전문계급의 직종이 안정적일 뿐...)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경제학을 이해하고 현실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일이다.

(2) 경제란 무엇일까.

- 먹고 사는 일

*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재화와 서비스가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II, p4)

- 착근된 세상에서 분리된 세상으로 “신분에서 계약으로”

* 경제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됐지만 왜 경제학은 17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을까? 뭔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전에는 종교나 정치의 분배 원리 속에서 먹고 살았으므로 경제라는 별도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자연의 힘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동아시아 왕조에서 경제문제라면 농경사회의 경우 물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치수)였다. cf) 농경시대의 제후로서의 이명박.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공유자산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없었다.

cf) 4천여 년 전 순(舜) 임금이 세상을 다스릴 적에 큰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치수책임을 맡았던 곤(鯀)이 치수방법을 잘 몰라 실패하자, 그 아들인 우(禹)가 이를 물려받아 9년에 걸친 치수사업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치수하는 동안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쳤지만 한 번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성을 다하여 마침내 치수에 성공하였는데, 이 때 응용한 오행이치가 곧 황하지류인 낙수(洛水)에 출현한 거북이 등의 1에서 9까지의 수 무늬(일명 洛書2))입니다. 훗날 치수의 공덕으로 순임금의 선양을 받아 하나라 시조가 된 우임금은 치수에 활용한 낙서(洛書)의 아홉 가지 수리를 본받아 천하 만민을 대동평치(大同平治)하는 9가지 범주의 대법(일명 九疇)을 펼쳤습니다.

- 경제는 사람을 재생산한다. 맑스 “생산은 생산관계를 재생산한다”

cf) 제약, 선호, 신념은 진티스의 BCP이론에서 유래. 이를 통해 진티스는 사회학의 “과잉사회화된 인가”과 경제학의 “과소사회화된 인간”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 그러나 현재 이 체계로 경제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제약은 최적화문제의 제약조건으로 해소하고 신념은 부분적으로 (경제학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인간행동)을 설명할 때 이용.

* “어느 사회든 재화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방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그리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틀짓는다”(I, p85)

* 교육은 그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키워내는 역할을 한다. 흔히 고용주가 좋아할만한 개인의 특성을 계발하거나 적어도 높이 평가한다.“

- 경제체제

- 자본주의 경제체제

* “돈독이 오른 사회”(양동휴)

*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할은 생산력의 발전이다”(맑스)

* 15-16세기에 시작된 자본주의는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더 생산력이 높았다. (Maddison p44 그림, 14세기부터 서유럽이 중국보다 1인당 GDP 앞서기 시작, 1950년경부터 아시아의 비중이 커져서 머지 않아 재역전 확실)

Q. 그런데 왜 아시아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았을까? 경제학자들은 영국의 사적소유권이나 경제적 자유와 중국의 중앙집권 체제를 든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거부한다. 그것은 식민지의 존재로 인해 값싼 생산요소를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호전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 “(15세기 경부터) 지속적이고 신속하며 광범한 과학적 발전과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I, p35)

* 인구, 기술, 임금,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 모든 지표는 1800-1850년대에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다(차례로 I, p46, 43, 38, 53 참조, 다른 책... 또는 원본에서 더 좋은 그림).

* 자본주의는 또한 세계 차원의 불평등의 심화과정이었다.

* "자본주의 체제가 확장되면서 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없다. 심지어 사람들의 시간개념이나 시간 관리방식 자체도 달라졌다“(I, p50) 가족의 개념도 달라졌다. 자본주의는 육아를 상품화하거나 국가가 제공함으로써 가족의 최소단위를 바꿔 놓았다.

* 자본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적은 이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기후변화 등 생태계의 한계이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였지만 생태계의 한계는 그렇지 못하다. 지구 전체가 공유자원의 문제(공유지의 비극)에 빠져 있다. 1인당 소득이 같을지라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미국 사람은 스위스 사람보다 4배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오히려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생태문제를 경제학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 원리를 찾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이다.

<박스> UN 기후협약과 교토의정서

cf) 시장실패, 코즈 정리 부근에서 <박스> "배출권 시장“해법에 대한 소개와 논평

(3) 시장, 국가, 그리고 공동체 (이걸 넣어야 할까?)

- 조선 - 총독부 - 이승만정권 - 군부독재 -...

* 도대체 한국에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또 우리는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는가?

Q.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인가?

* 사회를 재생산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면 그 자체는 지배계급도 재생산한다.

cf) 국가의 탄생 Olson

- 시장, 국가, 공동체(시민사회)의 결합구조로 사회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 앤더슨의 복지국가 유형 분류 소개, 여기에 과거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북한, 중국을 더해서 시장, 국가, 공동체의 역할 및 분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소개

* 자본주의 유형을 비교해 보면 국가의 역할, 공동체 또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세계화 (이 책은 세계화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할 것이다)

* “단일한 세계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제 생산자들의 생계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I, p61)

* 경제는 세계화되었지만 정부는 국가 단위에 머문다는 것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예컨대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위협하는 것, 그리고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 그러하다.

* 이로 인해 “세계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풍요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적 빈부격차와 불안정의 원인이 된다. 흔히 국가의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현재의 세계에는 그나마 위기에 대처하는, 그리고 꽤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그 정부마저 없다.

* 글로벌 공공재는 어떻게 공급되어야 하는가?

제2장 경제학의 기본 개념

(1) 선호 (첫번째 시간의 실험과 협력의 조건 요약)

* 인간은 이기적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가?

cf) 2007년 수능 문제 소개. 정확히 인간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답을 유도.

* 센은 이러한 인간을 “합리적 바보”라고 부른다. 실은 이보다 더 심각한데 왜냐하면 현실에서 타인의 안녕이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을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I, p75)

- 선호, 규범, 제도

* 이 가정에 대한 판단은 아주 중요

“정치평론가들은 정부의 체계를 고안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악당이며, 사람들의 행동에는 이기심 이외에 어떤 목적도 없다는 것을 격언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동기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통치해야 하며, 무한한 탐욕과 야심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공이익을 위해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데이비드 흄, “도덕, 정치, 문학에 관한 에세이, I, p69)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 (한국 등 동양의 속담을 더 생각해 보라)

- 실제로 경제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유인구조를 염두에 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올바른 결과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 수준의 상한선을 제도에 맞추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은 대단히 많다. 학술진흥재단의 엄격한, 계량화한 심사도 그런 예 중 하나이다.

* 제도는 사람들의 행동유형을 틀짓는 성격을 가진다. 그 행동유형이 정책의 진정한 목적과 부합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cf) "결정적 요인은 행동의 동기가 다른 사람에 대한 고려인지 아닌지이지, 행위자의 행복 여부가 아니다“ (I, p70) 이 문장은 타인을 돕는 것도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결국 이기적인 행위라는 주장에 대한 방어이다.

-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사람들의 공통의 유전적 형질을 “인간 본성”(human nature)이라 하고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문화적 차이“라고 부른다.

- 역사적으로 협력적인 종은 번성하고 그들의 행위는 다른 집단에 의해서 모방되었다.

“한 부족 내에서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유리한 점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지만,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배해 훨씬 유리하다... 이것 또한 자연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부족들 간에는 하나의 부족이 다른 부족을 대체해 나가는 과정이 진행되므로,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덕성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므로,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점차 늘어가게 될 것이다 (Darwin, "인간 유래와 성 선택”), 최정규, p203 재인용)

- 이 책에서는 호모에코노미쿠스에 입각한 경제학의 설명을 정리하고 그 한계를 제시한다. 물론 대안적 설명이 가능하면 소개할 것이다.

- 선택, 그리고 명령

* 사람들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을 한다(호모에코노미쿠스의 개인적 선택에 관한 4가지 기본원칙. II, pp10-16).

1) 자원의 희소성은 선택을 불가피하게 한다.

2) 어떤 것을 선택하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포기된 대안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며 이것이 선택의 실제 비용이다. 대학 진학의 기회비용은 등록금+집세 등 비용 + 4년동안의 월급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들이 가니까, 또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대학에 진학한다. 또 현실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계산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류경제학자라면 그 계산을 하는 비용이 너무나 커서, 즉 거래비용이 너무나 커서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거라고 설명할 수 있다. cf) 거래비용은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3) “얼마나 많이”라는 결정은 한계 개념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활동을 아주 약간 더 하는 것과 아주 약간 덜 하는 것 사이의 편익과 비용을 비교한다. 한계결정(marginal decision)이란 한계 상황에서 상충관계(trade-off)의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런 비교가 한계분석(marginal analysis)이다.

예) 경향신문에서 기자를 10명 고용한다고 공고를 냈을 때 (회사가 생각하기에 실력이 모자란) 마지막 한명 이 갖다 줄 이익과 회사에서 책정한 월급을 비교해서 결정한다. 이 결정에 따라 5명을 고용하기도 하고 때론 10명을 고용하기도 한다. 실력있는 사람들의 월급도 이 마지막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는 어떤 사람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4) 사람들은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따라서 물질적 유인에 반응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유인을 바꾸지 않은 채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표> 참조)

<p15 플로리다 학교들의 성적에 대한 현금보상 논쟁> (만일 그 현금 보상을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그러나 사람들의 선택은 타인의 명령에 따른 경우도 대단히 많다.

* 선택의 대부분은 일상(routine)에 의해서 이뤄진다. 이러한 일상이 현실의 균형을 이루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Q 이승기 광고를 보고 ** 냉장고를 선택했다. 이건 혹시 명령이 아닐까? 명령은 정보를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Q 왜 군대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시장을 이용하지 않을까? 정답 후보로는 시장이 시행착오를 통해 균형을 찾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목숨은 시행착오의 대상이 아니다.

(2) 효율성

- 노동과 투입요소를 낭비하지 않고 잘 사용하면 물질적 풍요와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인간이 자유와, 자유를 누리기 위한 능력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성은 바람직한 가치이다.

-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효율성을 달성한다고 생각한다. 크루그만은 이를 상호작용의 다섯가지 원칙이라고 부른다(II. pp17-24).

1) 교역으로부터 이익이 발생한다. 경제가 존재하는 것은 교역으로부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교역을 통한 이익이란 결국 분업의 이익이다. 시장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특화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시장이 없었을 때도 분업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시장이 이런 분업을 획기적으로 촉진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 “사람은 교역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스미스, 국부론의 첫문장)

2) 시장은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 균형의 안정성에 관한 조건을 갖추면 가격은 시장을 균형으로 이끈다. “어느 누군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더 이상 후생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균형이라고 말한다”(II. p20)

3) 자원은 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효율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파레토최적을 의미한다.

* 주류경제학에서는 흔히 쓰는 파레토최적(Pareto optimality, 또는 파레토효율 Pareto efficient)이란 어떤 사람의 효용을 낮추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효용을 높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거꾸로 모든 사람의 효용을 낮추지 않고 최소한 한 사람의 효용을 높일 수 있는 상태라면 그것은 파레토 비효율적인 상태이다. 경제학에서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상태를 말한다.

* 이 정의 하에서는 만일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효용을 줄여야 한다면(예컨대 상어알로 이뤄진 고양이 먹이의 생산을 줄여야 한다면) 그것은 효율적인 행위가 아니므로 선택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논리로 극단적인 예를 만든 경우이지만 우리의 경제적 행위는 미묘한 선택으로 가득차 있다.

4) 시장은 대부분 효율성을 달성한다. 시장경제에 포함되어 있는 물적 유인체계는 자원의 이용 기회를 잘 활용되도록 작동한다.

5) 시장이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정부의 개입이 사회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왜 시장이 실패하고 이 때 어떤 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가는 경제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 효율성을 고려할 때 흔히 간과하는 비용으로는 환경에 대한 영향, 가사 노동,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 등이다.

(3) 공정성(fairness, 크루그만 교과서에서는 equity라고 하고 공평성으로 번역했다)

- “공정한 경제체제란 이익과 비용이 공평하게 배분되는 사회이다”(I, p110 수정)

* 여기에는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평등한 기회란 모든 사람이 능력의 범위 안에서 여러 장애물로부터 동등하게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차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 공정성 개념에는 의사결정의 참여, 즉 민주주의가 포함된다.

* 특히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에 대해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쌍용의 매각 결정에 쌍용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효율성과 공평성은 상충관계에 있다”. 예컨대 공영주차장에 장애인을 위한 주차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비효율성을 수반한다. “효율성에 비해 공평성을 정확히 얼마나 더 증진시켜야 하는가의 문제는 정치적 과정의 핵심을 파고들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II. p22) 이것이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의 기본적 차이이다.

- 이명박대통령도 공정한 사회를 내세웠다. 과연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 위에서 설명한 게임에서의 공정성...

*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Q. 온도가 올라가면 값이 올라가도록 설계한 청량음료 자동판매기는 정당한가? 이런 질문은 실제 상황이다. 대학 2학년 때 경제학교수의 질문이 그랬다. “추석 전날 기차 역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석날 아침표를 정점으로 해서 멀리 떨어질수록 기차 삯을 떨어뜨리면 어떨까?” 조금 바꾸면 똑같은 방식으로 고속도로 이용요금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은 정당한가?

cf) 중세시대부터의 정당한 가격 just price의 역사를 설명

- 공정성은 그 사회에서 합의된 바와 합의해야 할 바를 민주주의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4) 계급과 권력

- 우리는 사회가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배계급은 여러 장치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며 이것이 경제의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 비유하자면 권력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상대로 하여금 최악의 결과를 선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수감된 죄수가 마피아의 두목과 부하라면 부하는 둘이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자백할 것이다.

* 자본가의 권력은 한 기업 내에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노동자는 탈출 선택(exit option)을 할 수 있지만 만일 실업자가 많은 상태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물론 그 경우 노동자의 선택은 최소의 노력 지출일 것이다. 이 때문에 계급 간의 타협이 가능해 질수도 있다.

- 계급과 권력,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사회는 어떤 행위가 선택인지, 명령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또는 선택과 명령 사이의 스펙트럼 상의 위치를 대체로 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5) 구조와 변화

- 어떤 사회도 변화한다. 구조는 재생산되지만 내생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 구조와 변화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이다.

* 사적 유물론은 생산력이 발전하면 생산관계라는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내생적 역사이론이다. 자본주의의 경쟁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내적 동력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결국 생산관계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맑스 시대의 자본주의 사회와 현재는 대단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민주주의적 결정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이런 변화도 발전된 생산력을 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Q. 발전된 서구 사회, 예컨대 스웨덴은 계급구조를 얼마나 바꾼 것일까? 만일 국가와 공동체 부분이 사적 부분보다 크다면 그것은 계급관계를 바꾼 것일까? 무엇을 기준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 우리는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역사적 관점을 따른다.

* 이것은 제도경제학, 진화경제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사의 성과를 이 책에 가능한 많이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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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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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서론

경제원론 2010. 11. 7. 17:07
* 지금 경향신문 기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경제학 원론 자료입니다. 이 글들을 기초로 해서 "딸을 위한 경제학"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쓸 예정입니다.  너무 길어서 원문을 첨부합니다.




경제학 서론

정태인(경제평론가)


1. 시장의 원리와 한계

(1) 시장과 민주주의(정치)

모든 교과서나 대중서가 그러하듯 시장의 원리에 초점을 맞춰 강의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 물론 시장부터 알아야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믿음처럼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면 어찌 세상이 이리 팍팍할 것인가?

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1원 1표의 원리가 작동한다. 우리는 시장에서 결코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이재용씨는 시장에서 나보다 몇만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그가 나보다 몇만배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또 그 정당성은 거의 모두 그가 아버지를 잘 만났다는데서 비롯된다. 이런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과연 옳은 것일까?

반면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기본으로 삼는다. 이재용씨나 나나 투표함 앞에서는 똑같은 한표를 행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장과 민주주의가 동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미국 스스로 내세운 자신들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평등할까?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이재용씨가 언론사를 소유하게 되면(시장에서 돈으로 사면 된다!) 과연 민주주의에 내재해 있는 평등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될까?

그게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 뭔가 규제를 해야 한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마주 서서 긴장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달간의 촛불집회에서 나온 목소리가 바로 이것이다. 광우병 우려의 소, 교육 시장화, 의료민영화, 공기업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것은 시장이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치, 즉 권력은 경제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나 독재 등 정치체제의 유형과 경제성과 간에 선형적인 관계를 설정하기는 어렵지만(예컨대 낮은 경제 발전 단계에서 독재는 경제성장(만이라면)을 촉진할 수 있다), 권력관계를 빼고 경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2) 시장의 원리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참 희한하게 생각했던 게 있는데 모든 교과서가 하나 같이 소비자 행동에 거의 반 가까운 지면을 할애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호에 관한 복잡한 가정, 예산선과 무차별곡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한계효용 균등의 원리 등등 온갖 개념이 여기에서 다 나온다.
그럴듯하지만 또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인데, 이 모두가 수요곡선이 매끄럽게 우하향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공급곡선은 너무나 허망하게도 기업의 (단기) 비용곡선으로 간단하게 설명된다.

단언하지만 수학적 체계를 갖추다 보니 탄생한 이런 복잡한 개념들은 다 잊어도 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선 다 알아야 한다).
어느 경제학자도 현실 경제를 생각할 때 이 복잡한 도출과정을 떠 올리지 않는다. 다만 우하향하는 수요곡선, 우상향하는 공급곡선, 그리고 두 곡선의 교차점만 알면 된다. 그리고 이 두 곡선의 존재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값이 비싸지면 덜 사려고 할 것이고(우하향하는 수요곡선) 반대로 생산자는 더 많이 팔려고 할 것이다(우상향하는 공급곡선). 그리고 두 곡선이 만나는 곳, 즉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는 곳에서 균형이 이뤄진다.

수요곡선은 효용극대화(인간은 오직 자기의 (물질적) 만족을 (이기적으로) 극대화한다)의 균형점을 표시하며 공급곡선은 이윤극대화(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한다)의 균형점을 나타낸다. 그리고 둘 사이의 균형은 시장균형이 되며 그 때의 가격이 균형 가격이다.

모든 재화에 대해 이런 균형이 이뤄진다면 모든 사람은 (이기적 욕구를) 만족하게 될 것이다. 소비자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만 하면 되고 생산자는 오로지 돈 벌기에 혈안이 되면 그만이다. 그야말로 '되고송'이다. 자기 욕심만 채우면 전 사회는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최고의 상태로 행복해진다(파레토 균형).
이 얼마나 좋은가. 온통 눈에 밟히는 가난한 사람들, 사회 전체를 잊어도 된다. 아니 모두 잊고 자기 이익을 채우는데 일로매진해야 사회는 발전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물론 아담 스미스는 이렇게 천박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 경제학자들이 그 쪽으로 몰아갔을 뿐).

시장이론의 힘은 막강하다. 적어도 인간의 본성 중에 이기심이라는 게 존재하면 시장이론은 현실에서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나아가서 사회가 호모에코노미쿠스를 상정해서 구성된다면 인간의 다른 본성은 억압되며 시장이론은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공황직전까지 번성했던 자유주의, 그리고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시장이론만으로 사회를 조직하면 마르크스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개념에 의해 논리적으로(물론 상쇄력이 언제나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적 경향’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폴라니가 역사의 관찰 속에서 직관적으로 관찰한 대로 파국이 올 수 밖에 없다.
거칠게 얘기한다면 시장의 경쟁이 낳는 효율화는 언제나 자원을 절약한다. 그러나 그렇게 절약된 자원(노동, 자본)이 다른 곳에 고용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불균형에 빠지고 결국 폭발하게 될 것이다(시장은 극단적 가격변화에 의해 균형을 회복할 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더 심각하고(사회의 양극화와 불신의 고조), 이전의 경제학자들이 거의 고려하지 못했던 생태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마르크스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뿐 아니라 생산력과 자연의 모순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3) 시장의 한계

물론 경제학자들도 시장이 그리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재화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아무도 시장에서 가격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완전경쟁을 가정하는 경제학원론의 전반부까지 이재용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아예 공급조차 되지 않거나(공공재) 너무 많은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외부성이 존재한다고 표현한다)도 비일비재하다.

공공재하면 국방을 떠올리면 된다. 휴전선을 지키는 군대가 나만 빼 놓고 지킬 수 없으며(비배제성), 내가 군대를 믿고 편한 잠을 잔다고 해서 남들이 잠을 못자는 것도 아니다(비경합성). 경제학은 우리에게 사회 전체를 위한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럼 군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난 군대가 필요없다. 그러므로 돈을 낼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다. 아무도 군대라는 서비스를 사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무임승차) 이 서비스는 시장에서 공급되지 않는다. 치안도 마찬가지이고, 동네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공공재는 국가가 공급하는 게 합리화된다. 그러나 시장만능론자들은 공공재도 부정하기 일쑤다. 부자들은 사설경호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감옥도 민간이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한국에서도 일으키려 애쓰고 있는 민영화 열풍은 경제학의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외부성의 외부란 시장의 바깥을 말한다. 사과꽃 향기는 모든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냄새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사과를 먹고 심하게 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빼고). 그러나 사과꽃 향기에 대해서 아무도 돈을 내지 않는다. 만일 사과꽃 향기의 시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꽤 많은 사람이 값을 치렀을 것이고 과수원 주인은 사과를 더 심었을 것이다. 즉 외부선(external good, 외부경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의 경우는 현재의 시장에 맡겨 놓았을 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적게 생산된다(뒤집어 말하면 사적 비용이 사회적 비용보다 큰 경우이다). (퀴즈. 잘 생각해 보면 사과꽃 향기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녔다. 값을 치르라고 하면 누구나 "난 사과꽃 향기가 싫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면 공해물질을 배출하는 볼펜 공장은 외부악(external bad, 외부불경제라고도 한다)을 생산한다. 공해는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볼펜의 값에는 그게 반영되지 않는다. 즉 외부악이란 시장에 맡겨 놓았을 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많이 생산되는 경우이다(이 경우에는 사회적 비용이 사적 비용보다 크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교정할까? 과수원 주인에게 보조금을 주거나 볼펜공장에 벌금을 물리면 된다(피구 해법). 이것이 정통적인 해법이고 많은 나라들이 애용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즈는 머리를 외로 꼰다. 볼펜공장 주위 사람들의 소유권이 확실하고 피해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면 볼펜공장 주인과 주민들이 협상으로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계산과 협상의 비용이 없으며 원활하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정(거래비용이 없다)이 붙어 있다. 사과꽃 향기나 공해 시장을 만들거나, 주위 땅을 다 사들이면(내부화)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실 코즈가 주목한 것은 공해배출량 만큼 벌금을 물린다면 당연히 기업은 볼펜을 덜 생산하는 편을 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볼펜이 덜 생산되어서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비효용과 공해가 없어져서 우리가 누리는 효용을 비교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볼펜공장 주인이나 주민 누가 계산해도 가장 바람직한 점은 찾아질텐데 그것은 원래의 생산량과 벌금을 물렸을 때의 생산량 사이의 어떤 점일 것이다. 이 점을 찾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코즈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킨 경제학자들은 이 모두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얘기라며 코즈해법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코즈는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기본적으로 거래비용이란 게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과 같은 조직이 생겨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한발 더 나아간다. 세상은 외부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유사외부성) 시장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정보의 불완전성). 이 세상에 맛과 모양, 당도가 똑같은 사과가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의 사과마다 하나의 시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어떠한 내용이든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시장에 국가나 공동체가 세심하게 개입하지 않으면 안된다(스티글리츠 해법).

이외에 독점도 문제가 된다. 만일 이재용씨 혼자 볼펜을 생산한다면 그는 한국 볼펜시장의 수요곡선을 알 수 있게 된다. 완전경쟁이란 어느 볼펜업자도 수요곡선을 알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완전정보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저 시장에서 가격을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가격수용자). 그러나 독점이 되면 그는 가격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적은 양이 높은 가격에 공급된다. 이것도 대표적인 시장 실패의 사례인데 우리의 현실은 크고 작은 독점으로 가득차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정보의 독점이다. 인류 역사 상 어떤 사회에서도 완전정보의 사회란 없었고 민주주의가 시대의 가치가 된 이후에도 정보는 은밀하게 독점됐다. 시장이 중요한 조정 메커니즘이 된 이후 정보는 더욱 중요해졌다(과거와 달리 확실한, 그러나 남들이 모르는 정보는 손쉽게 부를 쌓는 수단이 되었다). 시장이 정교해질수록 정보의 조작 가능성도 높아졌다. 정보와 행복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나아졌다고 볼 근거는 찾을 수 없다.

(4) 시장의 근본적 한계

경제학이 얘기하지 않는 더 중요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수요(demand)곡선에 돈 없는 사람들이 필요(needs)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지금 가장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는 북한이나 아프리카 어느 나라일 것이다.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음식쓰레기가 넘쳐 날 정도인데 수요와 공급을 맞춰주는 보이지 않는 손, 시장은 결코 남은 식량을 이들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그들은 돈이 없다. 에이즈 약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해도, 전체 에이즈 환자의 절반이 넘게 사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로는 결코 전달되지 않는다. 시장은, 필요가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높은 가격을 제시할 것이며 그 때 비로소 식량과 약이 전달되게 하는 장치인데,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존재자체를 부정 당하는 것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100% 우연으로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 또는 100% 우연으로 돈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데 있다. 식량과 약이 전달되지 않으면 용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생산능력을 제대로 갖출 수 없다. 또 다시 돈을 벌지 못한다. 그 아이들은 더 굶주리고 병에 더 많이 걸린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초에 얼마나 돈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가 인생을 거의 다 결정한다면 그게 어찌 살만한 세상일 것인가? 경제학자들 말에 따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면 만들수록 이런 불합리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교육을 시장에 맡기고 건강보험을 민간보험으로 대체하면 양극화는 극단으로 진행될 것이다.

남들과 함께 더불어 잘사는 원리는 무엇일까? 그것을 가르치는 경제학은 없을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즉 현재의 경제학은 극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적어도 출발선에서는 똑같아야 한다. 나아가서 애초에 체력이 떨어진다거나 뜀뛰기에 좋지 않은 신체를 타고 태어난 사람은 남들보다 더 몇발자국 앞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 의료, 주거, 식량, 환경은 모두에게 골고루 제공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사회의 공공성을 이룬다. 얼마의 양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지를 따져서 사회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자들이 할 일이다. 만일 우리가 여기에 합의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결국 갈갈이 찢어지게 되고 시장만능론자들이 목청껏 외치는 국가경쟁력도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

한 때 유토피아라고 불렸던 그 사회의 원리를 찾아내서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한다.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5) 국가의 한계

시장이론의 탄생과 더불어 사회주의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영글었다. 맑스는 시장의 무정부성을 통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맞을 수 밖에 없고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낭비(자본의 폐기와 실업)가 뒤따른다. 만일 이러한 낭비를 줄이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생산과 소비, 인간의 욕구와 충족 정도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즉각 가능하다는, 사회주의의 전제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시장이론에서는 각 개인이 즉각 그러한 계산을 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한다. 사회주의에서는 국가가 그런 계산을 해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시장으로 이르는 길”(원제는 “사회주의는 어디로(Whither the Socialism?))에서 예리하게 집어냈듯이 시장만능론과 국가만능론은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보이다. 내가 나의 욕구를 잘 모른다면 시장이론은 그 자체로 한계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는 셈인데 그러한 욕구의 합을 계산해내서 사회 전체의 욕구와 생산능력을 국가가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1917년부터 시작되어 1989년에 막을 내린 ‘국가사회주의’는 이른바 사회주의 계산문제와 유인의 문제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흥미롭게도 모든 사회주의 혁명은 약 30-40년간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소련이나 중국, 북한 모두 1950-60년대까지 높은 경제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다. 소련의 경우 미국의 포드주의 생산체제를 거의 그대로 이식했는데 노동자들은 혁명의 열기 속에서 열심히 일했으니 미국보다 생산성이 높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가 식고 인간의 본성 중 일부인 이기심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체제는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중앙계획국(소련의 경우 GOSPLAN)이 당신의 욕구에 관해 질문하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신은 1년에 구두 두켤레가 꼭 필요한데 과거에 가죽의 부족으로 또는 정전 사태로 불가피하게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필요의 1/2만, 즉 당신의 경우에는 한 켤레만 공급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네 켤레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이건 특별히 당신이 사악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그렇게 행동할 것이 뻔한데 나만 두켤레라고 솔직해 대답해서 맨발로 지낼 수야 없지 않은가?

생산능력에 관한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까? 우리 공장의 생산능력은 1년에 최대 1천켤레이다. 그러나 원자재의 공급에 문제가 생기거나 노동자들이 게으름을 피우면 700켤레밖에 생산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300켤레의 부족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만일을 대비해서 700켤레가 내 최대생산량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즉 소비에 관해서는 과장보고를, 그리고 생산능력에 관해서는 과소보고를 할 유인이 있는 것이다. 체계적인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고 자원의 배분은 잘못된다.

노동자로서도 마찬가지다. 10명이 집단농장에서 공동으로 밀을 10톤 생산해서 똑같이 1톤씩 나눠가지는 경제에서 이기적 인간은 완전히 노는 선택을 할 수 있다. 9톤이 생산되어 0.9톤을 배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 9명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 역시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 사회주의에서는 웬만하면 기업이 도산하지 않는다. 관료는 기업을 도산시켜서 책임을 지는 쪽보다 보조금을 줘서 살리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비효율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물론 이 모든 경우에 조사와 감시를 통해 이런 왜곡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행정 및 통제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말하자면 국가의 실패, 또는 정부 실패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회가 가능한 것일까?

2. 사회적 딜레마와 그 해법 - 인간이 협력할 조건

(1) 사회적 딜레마

우리는 위에서 경제학자들이 외부성과 공공재, 독점 등을 시장실패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았고 스티글리츠는 이 세상은 ‘유사 외부성’으로 가득차 있으므로 시장은 원천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이기적 인간이 자신의 목적(수요곡선을 이루는 효용극대화, 공급곡선을 이루는 이윤극대화)을 추구하기만 하면 바람직한 사회적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통찰(위에서 본 바대로 그림은 아주 간단하고 그 의미는 강력하다)에 맞서 역시 단순한 하나의 게임이 위 가정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로 알려진 존 내쉬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의 해법을 제시하고 이것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열등한 해가 된다고 갈파한 것이다. 이 죄수의 딜레마는 “공유지의 비극”, “집단행동의 문제”, 즉 사회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기본 원리가 된다.

이런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은 협력이다. 생물계와 인간 사회에서도 협력은 광범하게, 또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어떤 경우에 협력은 일어나는가?

(2) 협력 진화의 다섯가지 규칙

하버드대의 생물학 및 수학과 교수인 노박(Nowak, 'Five Rules for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Science", 2007, V314)은 협력이 진화할 수 있는 5가지 규칙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머니의 가이 없는 사랑’에서 찾았던 “혈연 선택”입니다. 꿀벌이나 흰개미,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광범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협력, 그것도 자신을 희생하는 협력의 많은 부분은 핏줄 때문이라는 거죠. 전설적인 생물학자 할데인은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면 1/2의 확률로 자신의 유전자를 살리는 것이고 조카를 구하면 1/8의 확률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직관적으로 금방 이해되는 주장입니다. 유명한 해밀턴의 규칙, b/c > 1/r가 적용됩니다. b는 협력이 가져오는 이익, c는 협력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 그리고 여기서 1/r은 우리 말로 치면 촌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입니다. 촌수가 가까울수록, 그리고 비용이 적고 이익이 클수록 협력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은 거죠. 그러나 현실에서 아주 친한 친구라도 촌수는 무한대일 겁니다. 그래도 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이 그렇게 반갑고 동향이라고 서로 돕는 건 혈연선택의 위력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둘째는 ‘직접 상호성’(direct reciprocity)입니다. 이 얘기는 우리가 단골의 예에서 찾은 겁니다. 앞으로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치면(무임승차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손해라는 얘기죠. 이미 이 책에서도 몇번 소개한 죄수의 딜레마를 잠깐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상대방이 자백을 하건, 아니면 비밀을 지키건 나는 자백을 하는 게 유리합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게 되니 둘 다 자백을 하게 되고 결국 협력의 이익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사교육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협력(우리 모두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얼마나 행복해질까요?)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을 무한히 반복한다면(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 협력하는 게 유리합니다. 즉 맞대면하는 관계에서는 다시 만날 확률(게임이 반복될 확률=w)이 협력을 결정합니다. 즉 b/c > 1/w라는 관계가 성립합니다. 역시 협력의 이익이 크고 비용이 적다면, 그리고 게임이 반복될 확률이 충분히 크면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협력을 하는 게 유리합니다. 즉 이기적이기 때문에 협력을 하는 셈입니다. 트리버스라는 유명한 생물학자는 이런 관계를 ‘상호적 이타성’이라고 불렀죠. 부품 업체와 장기 거래를 하고 경기가 나쁘다고 바로 해고를 하지 않는 과거의 일본 기업가가 대충 여기에 해당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 가장 적합한 전략은 전에 소개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TFT)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모두 협력을 하는 관계가 되면 그 다음은 그냥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요? 만일 집단 안에서 이기주의자가 생기거나(돌연변이) 밖에서 들어온다면(침입)? 이번 달의 첫 번째 문제입니다.

셋째는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입니다. 사실 우리가 두 번 이상 만나는 사람이 도대체 몇명이나 될까요? 그렇다면 직접 상호성에 의해서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협력을 설명하는 건 아주 제한적입니다. 항상 남을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도움을 주고 싶을 겁니다. 또 어떤 이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곧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겠죠(안 그러면? 나쁜 놈이죠) 이런 협력이 일어난다면 그건 평판, 명성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간접 상호성은 주로 평판에 의해 유지된다는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눈도 늘 의식하고 우리가 술자리에서 하는 ‘뒷담화’(gossip)는 곧잘 어떤 사람에 대한 태도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평판을 좋게 유지하는 게 유리합니다. 말하자면 쓰리쿠션으로 협력을 자아낸다고나 할까요? 이 경우도 역시 자신의 장기 이익과 관련되어 있는 셈입니다. 간접 상호성이 협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b/c > 1/q (q는 상대의 평판을 정확히 알 수 있는 확률)를 만족해야 합니다. 결국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정확히 알려져 있는 사회에서 협력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누굴 만나건 늘 협력을 하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이타적인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평판은 어떨까요? 물론 좋겠죠. 그러나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숨쉴 공간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무임승차자에 대해선 TFT 전략대로 무임승차로 응징하는 게 올바른 행동일까요? 그런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또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아무런 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얘긴 모든 사람은 나머지 모든 사람과 같은 확률로 만나서 협력을 할 것인지, 무임승차(배반)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실험들도 역시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채 만납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듯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지지 정당이 확연히 다릅니다(다행히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만). 이제 이렇게 사람들이 끼리 끼리 모여 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집단 차원의 선택이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게 오늘 할 얘기입니다.

네 번째 규칙은 네트워크 상호성(network reciprocity)입니다. 최근 최정규교수의 논문에서는 ‘국지적 상호작용’이라고 옮겨 놓았습니다(최정규, 양재석, 조항현(2006), “구별짓기와 협조적 공진화”, 제1회 복잡계 컨퍼런스.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는 충분히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유유상종”이 유사한 현상입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 처럼 협력자와 무임승차자가 골고루 섞여있는 사회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다면 무조건 무임승차자가 이깁니다. 그러나 현실의 공간 구조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정상입니다.

이런 공간구조의 분석은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지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분석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간단한 몇가지 가정을 한 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네트워크 외부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고루 섞인 상태에서는 완전히 소멸할 수 밖에 없었던 협력자들이 네트워크 클러스터를 형성해서 살아남고 그 클러스터의 힘을 바탕으로 무임승차자들의 영역을 정복해 나갑니다. 협력자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당연히 이익이 크고 남한테 당하는 착취는 없을테니까요.

여기서 관찰되는 규칙은 또 다시 b/c>k (k는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평균)입니다(수학적으로는 모집단이 크고 약한 선택이 일어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즉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을수록 협력은 촉진됩니다. 조금 이상한 얘길 수 있지만 거꾸로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모든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곧 골고루 섞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니까요.

제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지 못하고 이 쪽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그렇지만 이 네트워크 상호성은 일반적인 산업 클러스터 이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하려 한다든가,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 이미 형성된 공동체에 들어 간다든가 몇 명이 같이 움직인다든가 하는 것이 아마도 여기에 해당될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어쩌면 미국보다도 더 무임승차자로 가득찬 사회인데 이 곳을 떠나서 어디 괜찮은 사람끼리 모여 살 수 없을까, 가끔 꿈구는 것도 이 네 번째 협력 규칙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섯번째입니다. 집단 선택이라는 겁니다. 골고루 섞여 있는 한 집단 내에서 협력자들은 소멸합니다. 또는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무임승차자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협력자들로 이뤄진 집단이 있다면 이 집단은 무임승차자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적합도(fitness)가 높을 겁니다(요즘 용어로 경쟁력이 높을 겁니다). 예를 들어 희생정신이 강한 투사들이 모인 스파르타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즉 여기서는 두 차원의 선택이 일어나는 겁니다. 집단 내 선택(저차원)에서는 무임승차자가 생존하지만 집단 간 선택(고차원)에서는 협력자들이 유리합니다. 만일 집단 내에서는 협력자가 지지만 협력적 집단이 승리한다면 전체적으로 협력자들이 더 많은 사회가 될 수도 있겠죠. 이론 모형에서는 빠르게 성장한 집단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분화하고 뒤쳐진 집단이 소멸하는 걸로 설정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대 사회처럼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없애는 경우도 상정할 수도 있고, 현대의 상황이라면 어떤 집단이 협력자 집단을 흉내낼 수도 있겠죠. 현실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끼리 끼리 모여 살 수 있다면(assortation, 최정규교수는 유유상종으로 번역) 집단 선택은 현실에서도 관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약한선택과 희소한 집단 분화를 가정하면 또 다시 앞에 나온 네 공식과 유사한 b/c > 1+(n/m) (n은 집단의 최대 크기, m은 집단의 수)이 성립합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한 집단의 평균 인구가 적을수록 협력이 잘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것도 거꾸로 유추하면 이해됩니다. 한 집단의 평균 인구가 제일 큰 경우는 모두가 한 집단인데 이건 협력자가 소멸하는 상황과 똑같으니까요.

(3) 정리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서 인간이 협력할 조건을 임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든 규칙의 좌변에 나온 b/c부터 보면 당연히 b가 클수록, 또 c가 적을수록 협력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집니다. 즉 협력자로부터 여러 사람이 얻는 이익이 클수록, 그리고 협력자가 치르는 희생이 적을수록 협력 행위가 많아지는 거죠.

다음 우변을 보면 차례로 피가 많이 섞일수록(싸이나 블로그의 촌수도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게임이 반복될 확률이 높을수록),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져 있을수록(만날 사람이 협력자인지 무임승차자인지 잘 알 수 있을수록),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집단의 구성원이 적어서 협력자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을수록 그 사회는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또 하나, 이런 논리적 추론에 따르면 완벽하게 협력자들로만 이뤄진 아름다운 세상은 또한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사회에 돌연변이나 이주(migration)에 의해서 무임승차자가 나타나는 순간 또 다시 세상은 이기적 인간으로 가득찬 무한 경쟁의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위의 규칙과 다른 여러 특성을 반영해서 사회의 규범, 법률, 제도가 잘 만들어진다면 협력적인 사회가 꽤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도 있을 겁니다. 다음 달에는 협동조합 중소기업 위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 관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의 경제학’(이 말 자체가 이 지역인 볼로냐 대학의 자마니 교수가 쓴 용어입니다)이 이뤄진 사회라고나 할까요?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은 무궁무진합니다. 만일 그 답이 있다면 신학과 철학은 이미 없어졌겠지요^^. 사실 우리가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더라도 어찌 인간과 역사를 꿰뚫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무지,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이 출발점입니다.

3. 시장과 국가의 한계를 넘어선 정책 대안 - 세박자 경제론

(1) 세박자 경제론

유럽에서 1970년대 중반 “사회경제”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앙리 드로쉬와 클로드 비네가 오랜 전통의 협동조합, 상호회사와 결사체들의 공통점을 “이론화”하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Laville et. al., 2004). 사회경제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대단히 다양한 모습을 띄었기 때문에 이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핵심 요소인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역사가 깊다. 맑스, 레닌, 그람시 등 좌파 이론가들은 전통적으로 협동조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엥겔스는(따라서 맑스도)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의의와 역할을 명시적으로 부정했지만 맑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협동조합을 유력한 이행 대안 중 하나로 상정했다. 레닌도 신경제정책 이후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람시는 협동조합이 강한 이탈리아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 진지전의 유력한 물적 토대로 협동조합을 상정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길드 사회주의 등의 영향을 받은 존스튜어트 밀, 그리고 개혁적 케인즈주의자 미드 등은 물론 한계혁명의 왈라스까지도 협동조합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예컨대 밀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협동조합에 대한 당시 경제학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협동조합 등;역자) 결사체 형태(the form of association)는, 인류가 계속 발전시킨다면 결국 세상을 지배할 것임에 틀림없다...노동자 자신의 결사체가 평등, 자본의 집단적 소유를 기초로, 스스로 선출하고 또한 바꿀 수 있는 경영자와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형태이다.”(Mill, 1871, Meade,1989, p ix에서 재인용)

따라서 사회경제라는 개념을 어떤 이데올로기적 전통과 곧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멜니크는 협동조합의 자유민주주의 전통, 맑스주의 전통, 사회주의 전통, 공동체주의 전통을 모두 찾아냈다. 국제협동조합(ICA)는 어떤 정치적 성향도 거부했었고 한국의 생협운동 또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이런 측면은, 최근 중국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시민사회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되도록 정부나 이데올로기와 부딪히지 않은 채 온건한 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Zhao, 2009). 이것은 협동조합의 배경으로서의 사회경제, 또 시민사회가 대단히 넓은 외연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2년 전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세박자 경제론”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에 명확히 인식하지 못 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폴라니의 시장, 재분배, 호혜라는 세가지 사회통합 양식은 세박자 경제론의 직접적 이론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경제를 세 영역으로 나눠서 보는 관점은 EU나 캐나다의 사회경제 정의에서도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재단이나 자선의 전통이 강한 미국의 샐러먼은 “시민사회”라는 용어로 비영리부문, 또는 제3섹터를 표현한다.

<그림1> 세박자 경제론 개요

한편 이탈리아에서 주로 쓰는 “시민경제”(civil economy, Zamagni, 2004, 2005, Porta ed, 2004 등 참조)와 프랑스의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 역시 사회경제를 설명하는 데 널리 쓰인다. 이들 이론은 위의 그림처럼 사회경제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시민사회나 시민정신에 의한 전체 사회의 재편이라는 관점을 택하며 별도의 사회경제 전략을 취하는 데 반대한다. 이들 용어는 18-19세기 유럽의 논쟁, 예컨대 프랑스의 공화주의논쟁이나 영국의 시민의식(citizenship) 논쟁을 반영하고 있다. 이 관점을 택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이론)이나 영미형의 사회투자정책(사회투자국가론) 등도 모두 사회 전체의 전체 변화를 표현하는 현상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세 영역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사회경제 영역을 독자적으로 키워서 사회통합과 지역발전을 꾀하려는 정책, 나아가서 이들 영역에 기초한 전체 경제의 민주화를 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의 사회경제 이론가들이 이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 사회경제의 미시적 기초

위의 그림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는 주류경제학에서 경쟁(또 그에 따른 등가교환)에 의한 효율성의 달성이라는 일반균형이론으로 정식화됐다. 또한 국가부문 역시 재분배의 이론으로 ‘사회적 선택 이론’이나 케인스주의 정책에서 주로 다뤄졌다. 아주 거칠게 얘기한다면 국가사회주의는 국가 부문의 원리에 의한 사회의 전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시장부문의 원리에 의한 전일화를 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경제의 독자적 원리는 어떻게 상정할 수 있을까? 사회경제론, 시민경제론, 연대경제론 모두 인간 행동의 원리로 ‘상호성’(reciprocity)을 거론하고, 사회경제가 지향하는 가치로 ‘연대’(solidarity)를 꼽는 것은 흥미롭다. 이런 사고는 폴라니에게서도 찾을 수 있지만 체계적인 논리연관은 명확하지 않다.

최근의 이론가들 중 일부는 실험경제학/진화경제학에서 요즘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상호성’을 사회경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보울스 등 이 진영의 선구자들이 스스로의 상호성이론을 사회경제와 직접 연관시킨 바는 없으나 이미 그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자본’이나 ‘네트워크 외부성’을 논리적으로 연관시킨다면 사회경제의 미시적 기초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상호성 및 사회자본 이론이 지금 한창 발전하고 있는 이론이므로 그럴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Fong et.al. 참조).

인간이 과연 경제학이 상정하는 것처럼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행동하는가(남에게 전혀 관심이 없이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가)에 관한 최후통첩게임, 독재자게임, 공공재 게임 등의 실험은 회의적인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대로 ‘사회적 동물’이어서 자신에게 대가가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남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하며(상호성) 상대가 도를 지나치다고 판단할 때는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응징을 한다(강한 상호성). 비약을 무릅쓴다면 인간은 적절한 환경 하에서 서로를 위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며 국가가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모두를 위한 공공재를 스스로 제공할지도 모른다. 프랑스혁명의 3대 정신 중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취급된 연대의 근거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200여년에 걸쳐 호모 에코노미쿠스 가정에 맞춰 형성된 사회제도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최근에 다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협동조합이 이런 연대의 경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는 인간이 사적 이익이 아닌 공적 이익을 위해서도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는 점만 짚어 두고 넘어간다. 최소한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일 수 있다.

상호성은 공공재게임에서 암시하듯 사회자본(퍼트넘)을 형성하는 원리일 수 있다. 또한 이 상호성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externality), 즉 시장이 공급하지 못하는 바깥 부분을 메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사회자본이란 네트워크 외부성의 결과인데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의 요소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규범적으로 외부성, 또는 흘러넘침효과(spill over effect)를 추구한다. 예컨대 협동조합의 원칙 중 하나인 교육은 고용인 뿐 아니라 사용자, 그리고 공동체 성원까지도 포괄하며 협동조합의 네트워크화 역시 기업 능력의 외부화에 기여한다.

물론 네트워크화한 시장경제, 예컨대 자본주의기업으로 구성된 클러스터에서도 이런 흘러넘침은 발생한다. 도식화하자면 시장경제에서는 인간자본과 금융자본의 축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효과가 발생하며 시장경제의 경쟁 논리는 의도적으로 외부효과를 내부화하거나 밖으로 흘러넘치지 않도록 단속하는 반면 사회경제는 신뢰와 규범, 시민의식과 리더십 등 사회자본을 축적함으로써 더 포괄적이고 직접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한다. 이러한 사회자본은 집합행동의 거래비용을 낮춤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한다.(Zeuli & Radel, 2005, Putnum, 2000 참조) 사회자본은 사회적 승수효과(social multiplier effect, Glaeser et.al. 2002)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킨다. 구체적으로 사회경제는 실업이나 자연파괴 등의 사회적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복지를 증진시킴으로써 장기의 저축을 증가시킨다(Chantier, 2005) .

다윈이 지적했듯이 연대와 협동은 경쟁보다 우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회경제는 상호성에 입각해서 연대라는 가치를 추구한다. 이는 현재 전 세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사회 통합, 그리고 고용을 동반하는 성장에 사회경제가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의 상호 관계

1. 공공경제 및 시장경제와의 관계 - 보완성의 제도화

사회경제의 발전에 시장경제 및 공공경제와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회경제는 그 비중이 적으므로 시장가격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비중이 커지는 경우 시장가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는 사회자본을 공급하므로 시장경제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제품의 질을 보장함으로써 소비자 교육과 보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즉 사회경제는 가격이라는 면에서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시장경제에 대해서 대안적 경영의 준거가 될 수 있다.

한편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하듯 강력한 이윤동기는 여러 측면의 혁신을 이뤄낸다. 이에 비해 ‘연대동기’는 새로운 수요, 새로운 상품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시장경제에 뒤질 수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 일어난 기술 및 제도혁신을 사회경제로 수용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에밀리아 로마냐나 몬드라곤이 R&D나 교육을 강조하고 네트워크의 핵심조직으로 대학과 연구소를 세우는 것은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즉 사회경제는 시장경제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동행하거나 보완하는 존재이며 시장경제의 양극화 작용을 억제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회경제의 규모와 형태는 나라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공공경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복지 유형에 따라 국가, 또는 공공경제와 사회경제의 관계도 상이하게 나타난다 . 복지시스템과 사회경제의 관계에 관해서는 세가지 가설이 있다(Salamon & Anheier, 2005). 첫째는 이질성이론(heterogeneity theory)인데 시장실패와 국가실패가 동시에 발생한 곳에 비영리부문(사회경제)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국가실패란 다수결 원리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부문에 복지가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질적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복지는 적을 것이고, 동시에 비영리부문은 클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존재에는 대단히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런 추론은 실증적으로 기각된다(Salamon et.al, 2000, Salamon et.al. 2003). 이 주장은 일단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인종문제가 심각한 후진국에는 두가지 실패가 모두 존재하면서도 비영리부문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상호의존론(interdependence theory)은 비영리단체가 국가의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국가보다 속도가 빠르고 국가의 개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발성의 실패”(voluntary failure) 때문에, 즉 동원 가능한 자원의 부족(“자선의 부족” ,phillanthropie insufficiency"이나 “자선의 가부장성”, phillanthropic parochialism) 때문에 비영리 부문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가는 여전히 필요하다. 셋째는 사회적 기원론(social origin theory)이다. 이 가설은 배링턴 무어의 민주주의론, 에스핑 앤더슨의 복지국가 유형론을 전거 삼아서 각국 사회계급과 제도의 역사적 궤적에 따라 국가와 비영리부문 간의 관계를 유형화한다.

<표3> 복지국가유형과 비영리부문의 규모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비영리 부분의 규모

적음

많음

낮음

국가주의(statist)

일본, 중남미국가

자유주의(liberalist)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미형 국가

높음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tic)

핀란드 오스트리아

조합주의(corporatist)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Salamon, Sokolowsky,Anheier, 2000, p15(표3)와 p18(그림7)에서 재구성

대체로 유럽국가들은 사회경제의 전통이 강해서 국가의 사회복지 전달체계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역사적 이유), 사회복지 지출이 많아도 소득수준이 높아서 사회경제의 재원조달이 일정 규모를 유지할 수 있으며(경제적 이유) 종교와 시민정신에 따라 자선 등이 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사회적 이유). 사회민주주의 모델보다 조합주의 모델의 비영리부문이 더 큰 것은 20세기 초중반에 노동계급 정당에 의해 철저한 복지개혁이 이뤄지기 보다 각 계급의 타협에 따라 전통적 사회경제(구사회경제)가 ‘잔존’해서 복지의 전달체계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모형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최소로 억제한 가운데, 개인의 자발성에 의해 사회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하는 경우로 사회복지와 비영리부문이 일정 정도 대체관계를 보인다.

물론 한국은 국가주의유형에 속한다. 1960-80년대 중반의 개발 동안에 국가는 경제발전에 재원을 집중했고 사회복지를 공동체(60년대)와 가족(70-80년대)이 떠맡은 결과 지역공동체가 붕괴 상태에 이르렀고,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다다른 후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여전히 사회복지가 최소한으로 제약되는 동시에 사회경제 역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다. 나는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 한국의 자생적 사회경제를 완전히 뿌리뽑았다고 생각한다. 일제 시대인 1920-30년대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 내의 각종 협동조합, 상호공제회, 두레 등이 총독부와 관제 협동조합에 의해 해산당했고 1960년대에 부활한 민간 협동조합(신협, 소비조합) 운동은 새마을운동(새마을금고 포함)에 의해 사실상 제거되었다.

한편 한국의 교육이나 의료복지의 확대는 공적 보조금을 받아 시장경제가 전달하는 경로를 따랐다. 1990년대 중반 이래의 ‘시장화’ 기조 속에서 병원이나 학교 등 사적 조달의 주체들은 스스로의 이익 추구를 위해 미국식 제도를 요구하면서도 국가의 보조는 지속되거나 확대되기를 원하는 일견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대 진영은 공교육, 공공 의료기관의 확대와 함께 학부모나 환자 등 수요자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만일 사적 방식이 사회경제의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면(또는 사회경제의 비중이 높아진다면) 공공성과 수요자의 참여를 동시에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유형과 조합주의 유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취약한 사회경제는 기능적으로 공공경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한전이 재생에너지 사회적기업의 전기를 사들이는 것, 건강보험시스템이 인두당 수가제를 도입하여 의료생협의 수입을 보조하는 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공경제와 사회경제는 상생의 보완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공공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적기관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서비스 분야(의료나 보육, 교육)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공공부문 민영화의 일종이었던 PPP(Private Public Partnership)을 다른 의미의 PPP(People Public Partnership), 또는 CPP(Citizen Public Partnership)으로 바꿔낼 수 있다. 또한 독일의 2차 노동시장의 역할이 그렇듯, “사회경제영역의 잠재적 고용 능력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주요 주체”(Birkholzer, 2005)이다. 사회경제는 정의상 일자리의 창출에 적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도설계를 잘 하면 공동체, 시장, 그리고 국가는 서로 대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Bowles & Gintis, 2002)” 따라서 사회경제의 제도화(예컨대 한국의 협동조합법 제정)는 두 영역과의 보완성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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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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