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란 무엇인가?

 

1. 부활하는 ‘사회’

 

21세기 들어 ‘사회’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사회적 기업’ 등, 경제 용어에 사회라는 수식어가 나붙고 경향과 한겨레신문 등 진보언론에서 이들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촛불집회 최대의 수혜자는 생협(생활협동조합)이라는 말도 돌고 있듯이 한국에서는 싹이 말라버리다시피 했던 협동조합운동도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사한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다. 80년대 신자유주의 이래 사회적 양극화가 급진전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최근의 세계금융위기는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social economy)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등 협동조합이 활발한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경제위기 시에 협동조합의 숫자나 규모가 증가했던 것이 사실이다.

 

EU가 90년대부터 사회경제에 관심을 집중한 직접적 이유는 복지국가의 한계에 있다. 즉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따른 압력과 경제의 서비스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그리고 출산율 저하와 노인 인구의 증가로 인한 고령화, 이 모든 현실의 귀결로서의 전후 사회시스템의 위기는 사회/사회경제/사회경제론의 ‘부활’(또는 재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첫째로 가난과 사회적 배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둘째로 시장과 국가가 아닌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경제는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은 실업과 재정적자라는 면에서는 서구보다 낫지만 기본적인 복지도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양극화가 극단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처지에 놓여 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활발해진 시민주도운동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공동체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문화 및 지역공동체운동을 이끄는 다양한 결사체가 국가 및 시장에 새로운 관계 정립을 요구했다. 밑으로부터의 자조적(bottom-up, self-help) 발전이 새롭게 추구되었다(chantlier, 2005 참조).

 

특히 최근의 금융위기는 폴라니의 진단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장만능의 정책으로 사회가 분열되면 이에 대응하는 운동이 발생한다. 결국 21세기 들어 더욱 활발해진 사회경제(운동)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완전한 파괴”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진보운동에 대한 반성이 일고 특히 “지역공동체”라든가 “생활정치”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면서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에 대해서도 일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로 사회경제는 진보정당이 의회와 입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차원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돌이켜 보면 촛불시민은 그들을 대변할 정당만 가지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구 운동권’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그리고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민주의 정당)이 시장경제 내에 뿌리박은 조직이라면, 촛불로 대변되는 새로운 운동이 거처할 경제적 토대는 무엇일까? 시민사회라는 사회정치적 ‘목소리’는 '사회경제'라는 풀뿌리 조직과 결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운동차원에서 공히 교착상태에 빠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협력하여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경제를 형성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와 민생을 동시에 도모할 가능성이 사회경제에 있는 것은 아닐까?

 

2. 사회경제라는 개념

 

1) “사회경제”라는 개념의 역사

 

유럽에서 1970년대 중반 “사회경제”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앙리 드로쉬와 클로드 비네가 오랜 전통의 협동조합, 상호회사와 결사체들의 공통점을 “이론화”하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Laville et. al., 2004). 사회경제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대단히 다양한 모습을 띄었기 때문에 이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핵심 요소인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역사가 깊다. 맑스, 레닌, 그람시 등 좌파 이론가들은 전통적으로 협동조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엥겔스는(따라서 맑스도)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의의와 역할을 명시적으로 부정했지만 맑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협동조합을 유력한 이행 대안 중 하나로 상정했다. 레닌도 신경제정책 이후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람시는 협동조합이 강한 이탈리아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 진지전의 유력한 물적 토대로 협동조합을 상정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길드 사회주의 등의 영향을 받은 존스튜어트 밀, 그리고 개혁적 케인즈주의자 미드 등은 물론 한계혁명의 왈라스까지도 협동조합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예컨대 밀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협동조합에 대한 당시 경제학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협동조합 등;역자) 결사체 형태(the form of association)는, 인류가 계속 발전시킨다면 결국 세상을 지배할 것임에 틀림없다...노동자 자신의 결사체가 평등, 자본의 집단적 소유를 기초로, 스스로 선출하고 또한 바꿀 수 있는 경영자와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형태이다.”(Mill, 1871, Meade,1989, p ix에서 재인용)

 

따라서 사회경제라는 개념을 어떤 이데올로기적 전통과 곧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멜니크는 협동조합의 자유민주주의 전통, 맑스주의 전통, 사회주의 전통, 공동체주의 전통을 모두 찾아냈다. 국제협동조합(ICA)는 어떤 정치적 성향도 거부했었고 한국의 생협운동 또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이런 측면은, 최근 중국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시민사회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되도록 정부나 이데올로기와 부딪히지 않은 채 온건한 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Zhao, 2009). 이것은 협동조합의 배경으로서의 사회경제, 또 시민사회가 대단히 넓은 외연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2년 전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세박자 경제론”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에 명확히 인식하지 못 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폴라니의 시장, 재분배, 호혜라는 세가지 사회통합 양식은 세박자 경제론의 직접적 이론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경제를 세 영역으로 나눠서 보는 관점은 EU나 캐나다의 사회경제 정의에서도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재단이나 자선의 전통이 강한 미국의 샐러먼은 “시민사회”라는 용어로 비영리부문, 또는 제3섹터를 표현한다.

 

<그림1> 세박자 경제론 개요

 

한편 이탈리아에서 주로 쓰는 “시민경제”(civil economy, Zamagni, 2004, 2005, Porta ed, 2004 등 참조)와 프랑스의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 역시 사회경제를 설명하는 데 널리 쓰인다. 이들 이론은 위의 그림처럼 사회경제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시민사회나 시민정신에 의한 전체 사회의 재편이라는 관점을 택하며 별도의 사회경제 전략을 취하는 데 반대한다. 이들 용어는 18-19세기 유럽의 논쟁, 예컨대 프랑스의 공화주의논쟁이나 영국의 시민의식(citizenship) 논쟁을 반영하고 있다. 이 관점을 택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이론)이나 영미형의 사회투자정책(사회투자국가론) 등도 모두 사회 전체의 전체 변화를 표현하는 현상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세 영역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사회경제 영역을 독자적으로 키워서 사회통합과 지역발전을 꾀하려는 정책, 나아가서 이들 영역에 기초한 전체 경제의 민주화를 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의 사회경제 이론가들이 이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 사회경제의 구성

 

사회경제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아주 다양한 모습을 취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원리로 사회가 일원화할 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완전한 파괴’(폴라니)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형성되고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국가부문과 관련해서 사회복지 유형론은 각국이 사회경제와 관련해서 강조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준다.

 

니낙스(Ninacs & Toye, 2002)에 따라서 사회경제의 각 구성요소를 <그림2>와 같이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협동조합이나 상호공제회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비영리단체로 구성된 제3부문을 하나의 실체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자유주의형 사회복지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재단이나 자선단체의 자발적 행위가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의 오른쪽 부분이 영미권의 제3부문, 또는 비영리(NPO)부문에 해당한다. 반면 사회경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유럽, 그리고 캐나다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Laville, et.al, 2004), 특히 사회복지 시스템이 대륙이나 북유럽에 비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는 협동조합과 신용조합, 상호공제회가 최근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흰 부분의 왼쪽이 유럽의 사회경제에 해당한다. 현재의 의미에서 사회경제는 경제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수행하는 모든 조직(그림의 흰 부분)을 포괄한다. 한편 흰 부분의 가운데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협동조합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신사회경제’(new social economy)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림2> 사회경제의 구성

 

Ninacs & Toye 2002에서 작성

신사회경제는 80년대 이래의 유럽의 경제침체, 이에 따른 국가복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로 교육, 보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생겨난 새로운 사회조직(예컨대 이탈리아, 스페인의 “사회적 협동조합”, 포르투갈의 “사회연대 협동조합”, 캐나다의 “연대 협동조합”, 스웨덴의 “보육 협동조합”, 덴마크의 “프로젝트 개발”, 영국과 미국의 “사회적 기업”, “지역개발기업”)들로 과거의 사회경제에 비해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회원, 노동자, 소비자, 지역공동체)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에스핑 앤더슨의 복지유형 구분 상 코포라티스트 국가에서는 복지시스템의 관료화에 반대하여, 또 앵글로색슨형 국가에서는 심각한 양극화에 대응해서 풀뿌리 차원의 신사회운동이 활성화되었는데 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사회가 국가나 시장으로 전일화되는 것에 반대한셈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이탈리아 등 협동조합의 전통이 강한 곳에서 특수 협동조합으로서 법제화한 것이며 사회적 기업은 미국의 상황에서 비영리단체와 협동조합의 장점을 결합해서 주로 주변계급, 장애인, 위기에 처한 공동체 등 약자의 경제활동 참여와 복지 향상을 위해 탄생되었다.

 

‘신사회경제’는 특히 관계재(relational goods), 연대서비스(solidarity service), 친밀서비스(proximity service)로 불리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런 부문에서 사회경제는 시장경제보다 우월하다. 많은 경우 이런 서비스는 수요자가 돈이 부족하거나 공급자의 수익률을 맞추지 못해서(수요곡선에서 균형 가격 아래 오른쪽 부분) 시장경제에서는 아예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데 나는 이를 “시장의 근원적 한계”라고 부른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 관한 각종 통계는 신사회경제가 사회적 서비스(교육, 보육, 의료, 노인 요양), 환경 관련 서비스(재생 에너지, 쓰레기 처리, 조림 등), 문화 서비스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신사회경제는 사회적 목적과 경제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조직으로 규정된다.

 

이상 사회경제의 정의와 구성요소를 종합하여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실용적 정의를 사용할 것이다. “사회경제는 다음과 같은 원칙과 운영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행위와 조직들을 일컫는다. 1) 이윤보다 회원과 공동체를 위한 운영, 2) 국가로부터의 자율성, 3) 민주적 경영(1인 1표) 4) 자본에 대한 개인과 노동의 우위 5) 참여의 원칙과 개인 및 집단의 권력화(empowerment). 따라서 사회경제는 모든 협동조합과 상호부조 움직임과 결사체를 포함한다. 사회경제는 주민과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부문에서 발전할 수 있다.“(퀘벡 사회경제위원회)

 

3. 경제민주주의와 사회경제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할 유력한 주체로 상정되는 노동조합은 시장경제의 영역 안에 속한다. 돌이켜 보면 자본주의 초기부터 폴라니의 ‘대응운동’은 세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YMCA 등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단체나 재단, 자선단체 등의 자발적 운동, 둘째는 노동조합 운동, 그리고 셋째는 협동조합 운동이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 안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직이며, 노동조합의 네트워크(산별 노조, 전국 노조)는, 일부 유럽의 경우 노동자 정당으로 발전해서 국가기구를 장악하여 복지국가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한편 협동조합은 기업 바깥에서 시작되었으며(소비자 협동조합), 그것이 지역에 따라 생산자 조합과 금융부문 조합(협동조합 전문 은행이나 보험 등)으로 퍼져 나갔고 대규모 지역 네트워크(스페인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캐나다의 노바 스코티스 등), 나아가서 전국적 네트워크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각각 시장경제와 사회경제에 존재하는 경제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특히 북부에서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은 전형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했으며 공산당이나 사회당은 지방자치체에서 이 둘의 이해를 정책적으로 잇는 역할을 했다.

 

종업원 지주제(ESOP)은 보통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기업에서 일정 비율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1주 1표의 원리에 따라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 이윤공유 메커니즘이 더해지는 경우 감시비용을 줄이고,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해결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노동자 참여를 통해 기업 민주주의를 촉진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Blinder, et.al. 1989). 그러나 종업원 지주제는 자체로 노동자소유기업은 아니며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수의 지분을 가진다 해도 노동자가 투자자의 관점에서 주식시장의 요구에 따라 운영할 수도 있다. 요컨대 노동자 소유 지분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종업원지주제와 경제민주주의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고리가 된다. 민주적 통제를 달성하는 경우 종업원지주제는 법적 형식을 바꿔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사회경제는 일반적으로 다중의 이해관계자 지배구조(multiple stake-holder governance)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사회적 목적과 경제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사실로부터 행동원리와 목표함수가 복잡해지며 유인과 보상의 문제를 물질적 이해관계와 상호성 양 측면을 결합해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복합성을 반영한다는 면에서는 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우리의 지식과 ‘사회자본’의 수준에서는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만일 해법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곧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가 야기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해당사자사회로 이행하는 실마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사회경제는 말 그대로 거대한 사회혁신(Goldenberg, 2004)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란 나라, 또는 지역마다 상이한 역사와 실천을 포함하고 있지만, 모든 다양성을 뛰어 넘는 공통점은 사회경제가 경제 영역에서 ‘사회적’인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민사회가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시민(특히 풀뿌리 민중)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사회경제의 폭과 깊이에 따라 어떤 지역의 연구자들은 사회경제의 보편성과 시장 및 국가의 제압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사회경제의 독자성을 강조한다. 물론 한국은 후자에 속한다. 세박자경제론도 우선 사회경제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4. 공공경제, 시장경제와의 관계

 

1. 공공경제 및 시장경제와의 관계 - 보완성의 제도화

 

사회경제의 발전에 시장경제 및 공공경제와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회경제는 그 비중이 적으므로 시장가격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비중이 커지는 경우 시장가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는 사회자본을 공급하므로 시장경제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제품의 질을 보장함으로써 소비자 교육과 보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즉 사회경제는 가격이라는 면에서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시장경제에 대해서 대안적 경영의 준거가 될 수 있다.

 

한편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하듯 강력한 이윤동기는 여러 측면의 혁신을 이뤄낸다. 이에 비해 ‘연대동기’는 새로운 수요, 새로운 상품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시장경제에 뒤질 수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 일어난 기술 및 제도혁신을 사회경제로 수용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에밀리아 로마냐나 몬드라곤이 R&D나 교육을 강조하고 네트워크의 핵심조직으로 대학과 연구소를 세우는 것은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즉 사회경제는 시장경제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동행하거나 보완하는 존재이며 시장경제의 양극화 작용을 억제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회경제의 규모와 형태는 나라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공공경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복지 유형에 따라 국가, 또는 공공경제와 사회경제의 관계도 상이하게 나타난다 . 복지시스템과 사회경제의 관계에 관해서는 세가지 가설이 있다(Salamon & Anheier, 2005). 첫째는 이질성이론(heterogeneity theory)인데 시장실패와 국가실패가 동시에 발생한 곳에 비영리부문(사회경제)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국가실패란 다수결 원리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부문에 복지가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질적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복지는 적을 것이고, 동시에 비영리부문은 클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존재에는 대단히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런 추론은 실증적으로 기각된다(Salamon et.al, 2000, Salamon et.al. 2003). 이 주장은 일단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인종문제가 심각한 후진국에는 두가지 실패가 모두 존재하면서도 비영리부문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상호의존론(interdependence theory)은 비영리단체가 국가의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국가보다 속도가 빠르고 국가의 개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발성의 실패”(voluntary failure) 때문에, 즉 동원 가능한 자원의 부족(“자선의 부족” ,phillanthropie insufficiency"이나 “자선의 가부장성”, phillanthropic parochialism) 때문에 비영리 부문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가는 여전히 필요하다. 셋째는 사회적 기원론(social origin theory)이다. 이 가설은 배링턴 무어의 민주주의론, 에스핑 앤더슨의 복지국가 유형론을 전거 삼아서 각국 사회계급과 제도의 역사적 궤적에 따라 국가와 비영리부문 간의 관계를 유형화한다.

 

<표3> 복지국가유형과 비영리부문의 규모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비영리 부분의 규모

적음

많음

낮음

국가주의(statist)

일본, 중남미국가

자유주의(liberalist)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미형 국가

높음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tic)

핀란드 오스트리아

조합주의(corporatist)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Salamon, Sokolowsky,Anheier, 2000, p15(표3)와 p18(그림7)에서 재구성

 

대체로 유럽국가들은 사회경제의 전통이 강해서 국가의 사회복지 전달체계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역사적 이유), 사회복지 지출이 많아도 소득수준이 높아서 사회경제의 재원조달이 일정 규모를 유지할 수 있으며(경제적 이유) 종교와 시민정신에 따라 자선 등이 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사회적 이유). 사회민주주의 모델보다 조합주의 모델의 비영리부문이 더 큰 것은 20세기 초중반에 노동계급 정당에 의해 철저한 복지개혁이 이뤄지기 보다 각 계급의 타협에 따라 전통적 사회경제(구사회경제)가 ‘잔존’해서 복지의 전달체계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모형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최소로 억제한 가운데, 개인의 자발성에 의해 사회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하는 경우로 사회복지와 비영리부문이 일정 정도 대체관계를 보인다.

 

물론 한국은 국가주의유형에 속한다. 1960-80년대 중반의 개발 동안에 국가는 경제발전에 재원을 집중했고 사회복지를 공동체(60년대)와 가족(70-80년대)이 떠맡은 결과 지역공동체가 붕괴 상태에 이르렀고,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다다른 후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여전히 사회복지가 최소한으로 제약되는 동시에 사회경제 역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다. 나는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 한국의 자생적 사회경제를 완전히 뿌리뽑았다고 생각한다. 일제 시대인 1920-30년대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 내의 각종 협동조합, 상호공제회, 두레 등이 총독부와 관제 협동조합에 의해 해산당했고 1960년대에 부활한 민간 협동조합(신협, 소비조합) 운동은 새마을운동(새마을금고 포함)에 의해 사실상 제거되었다.

 

한편 한국의 교육이나 의료복지의 확대는 공적 보조금을 받아 시장경제가 전달하는 경로를 따랐다. 1990년대 중반 이래의 ‘시장화’ 기조 속에서 병원이나 학교 등 사적 조달의 주체들은 스스로의 이익 추구를 위해 미국식 제도를 요구하면서도 국가의 보조는 지속되거나 확대되기를 원하는 일견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대 진영은 공교육, 공공 의료기관의 확대와 함께 학부모나 환자 등 수요자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만일 사적 방식이 사회경제의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면(또는 사회경제의 비중이 높아진다면) 공공성과 수요자의 참여를 동시에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유형과 조합주의 유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취약한 사회경제는 기능적으로 공공경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한전이 재생에너지 사회적기업의 전기를 사들이는 것, 건강보험시스템이 인두당 수가제를 도입하여 의료생협의 수입을 보조하는 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공경제와 사회경제는 상생의 보완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공공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적기관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서비스 분야(의료나 보육, 교육)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공공부문 민영화의 일종이었던 PPP(Private Public Partnership)을 다른 의미의 PPP(People Public Partnership), 또는 CPP(Citizen Public Partnership)으로 바꿔낼 수 있다. 또한 독일의 2차 노동시장의 역할이 그렇듯, “사회경제영역의 잠재적 고용 능력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주요 주체”(Birkholzer, 2005)이다. 사회경제는 정의상 일자리의 창출에 적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도설계를 잘 하면 공동체, 시장, 그리고 국가는 서로 대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Bowles & Gintis, 2002)” 따라서 사회경제의 제도화(예컨대 한국의 협동조합법 제정)는 두 영역과의 보완성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5. 공동체와 사회경제-캐나다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 이하 CED)과 사회경제

세계화와 기술혁신은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도시와 농촌의 지역공동체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EU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는 지역 공동체 차원의 발전 전략이 모색되었다. 예컨대 앞에서 본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은 1990년대부터 3년 단위의 주민 참여 “협상 경제계획”(negotiated economic planning)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역사가 깊은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의식적으로 공동체 발전의 일환으로 사회경제를 발전시킨 캐나다 퀘벡지역, 그리고 이후 퀘벡을 모델로 한 캐나다 각지의 경험이 한국에 더 유용할 것이다.

 

캐나다의 실험은 공동체경제발전운동(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 CED)과 사회경제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CED의 초기에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CED는 별도의 조직으로(예를 들어 CDC와 같은 비영리기업을 만들어서) 다양한 성격의 사업을 해 나간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캐나다 전역의 CED를 연결한 CCEDnet를 결성했다. CED의 다양한 조직들, 여러 종류의 협동조합, 사회경제 조직들이 캐나다의 지역공동체를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Fairbairn, 2008).

 

“CED는 명시적으로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을 결합하는, 공동체 기초, 공동체 주도 전략이다. CED는 공동체의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그리고 문화적 복지를 지향한다. CED는 전통적인 경제발전 전략의 대안으로 탄생했다. CED는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 실업, 가난, 일자리 상실, 환경 파괴, 공동체 자치의 상실 등을 총체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CCEDNet)

 

CED는 개념 자체가 공동체 참여라는 전략을 표현하는 동시에 경제와 정치/사회를 구분하는 기존 발전 전략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사회경제와 친화적이다(Laville et.al.,2005). 한편 퀘벡지역은 1999년 “사회경제위원회”(Chantier de leconomie sociale)라는,정부가 포함된 사회경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구성했다(Fairbairn, 2008). 지방정부와 사회경제의 연합체(federation)가 체계적으로 사회경제를 발전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2004년 자유주의 정당 수상 폴 마틴은 “사회경제를 캐나다의 사회정책 수단의 핵심 부분으로 삼겠다...기업가가 강한 경제에 필수적이듯 사회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여 사회경제를 중앙정부 차원의 핵심 정책수단으로 삼았다. 이후 CCEDnet와 캐나다 협동조합연합(CCA)은 사회경제를 대표하는 두 조직이 되었다. 가히 “CCEDnet와 CCA의 연합은 캐나다 사회경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2007년에 퀘벡우파행동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선 뒤에도 사회경제의 지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Fairbairn, 2008).

 

CED와 사회경제의 결합은 결코 단선적인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수많은 작은 실험이 복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의 발전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의 유형은 공동체 수준에서 재현되는 과거의 경제성장전략이며 한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채택하고 있는 전략이다. 두 번째 유형은 한국에도 소개됐고 서울에서 일부 시행중인 사회투자국가론이 제시한 개인의 자산/능력형성 전략과 맞닿아 있는 패러다임이다. 세 번째 유형은 현재 캐나다가 도달한 사회경제와 공동체 중심의 발전 전략이다. 물론 현재의 CED에서는 세 유형의 발전 전략이 한 프로젝트 내에서도 동시에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처럼 사회경제의 형성이 미흡한 곳에서 세 번째 유형을 전격적으로 실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 발전의 원천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을 내부에서 찾아내서 공동체성원의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관점은 미국에서 “필요에 기초한 공동체 발전”에서 “자산에 기초한 공동체 발전”(Kretzman & McKnight, 1993)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사실을 거의 정확하게 반영하며

 

<표> CED의 세가지 발전 패러다임

 

발전 과정

외생적 <--------------------------------------------------> 내생적

 

 

 

경제시스템의 개혁에 초점

(I 유형)

 

개인의 경제적 능력 계발에 초점 (II유형)

그룹의 경제적 능력계발에 초점(III 유형)

CED는 경제성장의 수단

CED는 가난한 사람의 능력을 계발하여 자율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

CED는 개인과 집단이 권한을 강화하여 지역의 자원을 통제하도록 만드는 수단

공동체는 명확하게 행정구역으로 정의됨

 

공동체는 인구학적 차원을 포함하는 경향 - 누가 경제적으로 주변화했는가에 초점을 맞춤

공동체는 스스로 정의됨 -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

 

자원의 사유화

 

금융시스템 개혁

 

외부 투자 유치

확장된 서비스(extension service)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업가정신의 개발

 

공동체에 기초한 자원관리

 

마을은행, 신용조합, 저축신용협동조합

 

협동조합, 공동체기업

 

Mathie & Cunningham, 2002.

 

사회경제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사회경제와 공동체발전전략의 결합이란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의 구성요소들이 스스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공동체가 스스로 자산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캐나다에서도 각 공동체와 구성요소들은 크고 작은 기금을 형성하고 있으며 정부는 기본 기금을 형성하거나 매칭펀드를 부여하고, 또는 세제나 금융을 이용하여 공동체 자산 형성을 돕고 있다. 캐나다 퀘벡주의 노조 연대기금, 1억 달러 규모의 인내자본형성기금(patient capital fund), 공동체 대출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공동체의 자산 축적을 자본증식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유럽 전체의 현상이다(Laville et.al.,2004). 여기서 사회경제의 금융부문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에밀리아 로마냐 성공의 열쇠는 우니폴이라고 하는 거대한 보험회사와 조합기금(Coop Fund)라고 하는 대규모 투자기금이다”(ontario coops, 2008).

 

사회경제는 금융자본의 형성과 지역 재투자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경제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지역 공동체에 속해 있으므로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또한 신용조합 등 사회경제를 상대로 한 전문적 대출기관이 발전한다면 자연스럽게 사회경제는 지역재투자법의 역할을 한다. 사회경제의 이런 역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일부에선 지역화폐를 사용하기도 한다.

 

CCEDnet의 정의에도 나타나듯 공동체 발전 전략에서 생태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공동체 발전“(Sustainable Community Development, SCD)에는 로컬 푸드 운동과 지역 음식점, 소비자협동조합이 연계되어 있다(Soots & Gismondi, 2008). 퀘벡지역의 식품/에너지 협동조합, 시카고의 협동조합 시장, 디트로이트의 카스 코리도 협동조합 등은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지역의 자영업자, 소매상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저소득 계층의 소비자 선택권을 지키고 값싼 제품 공급을 가능하게 하였다(Zeuli & Radel, 2005, Wall et.al. 2004) 이들 협동조합은 지역공동체의 각종 발전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자 역할도 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종종 위기 때 최종 구매자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의 농업과 영세 제조업자들을 살려내기도 한다. 이런 결과는 공동체 정신이 발현된 것일 뿐 아니라 이들의 장기적 생존이 공동체의 발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사회경제는 풀뿔리 민주주의와 직결돼 있다. 결사체 민주주의(associative democracy)론의 핵심 이론가인 코헨이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는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Smith, 2005). 풀뿌리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가 사회경제인 동시에 사회경제는 민주주의의 학교이다. 공동체 발전계획을 주민 스스로 세우고 공동체 내의 자원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지역을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고 사회경제의 운영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사회경제는 민주주의의 미시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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