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경제 평론가)



2) 이명박식 성장주의의의 귀결 - 공공성의 파괴와 생명의 위협


수도권 규제완화, 재건축 규제완화, 부실 건설사들에 대한 9조원 이상의 지원, 5+2 정책(광역 클러스터 정책), SOC 건설, '4대강 정비사업'은 모두 ‘전국의 삽질’ 정책이다. 이는 정확히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기 정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요는 이미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중산층이 이런 투기수요 유발 정책에 넘어가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성공하는 경우 우리는 미증유의 거품폭발을 거쳐 2010~11년경 -5% 이하의 성장이라는 대위기를 맞을 수 있고, 다행히 중산층이 말려 들어가지 않는 경우 약간의 거품을 거친 후 3년 이상 지속되는 0~-2%의 장기침체를 맞을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말 현재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모두 332조 8000억원. 올들어서만 19조 4000억원이 늘었다. 이 정도라면 우리 국민들의 낙천성도 놀랄만 하다.) 더 큰 거품으로 거품을 덮는다는 이명박 정부의 발상은 결국 그 폭발과 더불어 한국발 금융위기, 나아가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폭탄을 끌어안고 있다. 바다를 건너 튄 불똥은 한국 안의 폭탄에 옮겨 붙었다. 부동산과 자장면이 똑같다면서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한 노무현 정권이 불러온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은 1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짐작된다. 짓기만 하면 돈벼락을 맞는다던 주상복합 건설 사업에 저축은행(12조 2천억원), 은행(47조 9천억원+매입약정 10조원), 그리고 제2금융권이 파악도 되지 않는 돈을 쏟아 부었다. 도처에 널린 황량한 겨울 공사장은 아무 상관도 없는 국민에게 곧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내라고 강요할 것이다. 아주 낙관적으로 20%만 망한다 해도 무려 20조원이 넘는다.

 

헛된 욕망은 일반 국민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빚을 내서라도 집을 못사면 평생 이사만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리라는 초조함에 서민들까지 열심히 은행을 찾았고 위험한 기업대출보다는 안전한 고리대를 챙기자는 금융기관들은 그 욕망을 부추겼다. 한국은행의 2008년 9월 발표로도 가계 빚이 660조 3000여억원이고 이 중 부동산 대출을 약 30%로 치면 200조원 가량 될 것이다. 더구나 은행은 넘쳐나는 유동성을 부동산 담보 대출로만 풀고 있다. 만일 현재의 투기정책이 실물경기의 침체와 맞물려 결국 부동산 값의 폭락을 가져 온다면 곧 대규모 실업과 임금삭감이 닥칠텐데 제대로 원리금 상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출과 부동산으로 불만 지피면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자동적으로 우리 경제를 선진화할 것이라는 주문 역시 이미 실천되고 있다. 특히 공기업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구미에 딱 맞는 정책이다. 첫째 국민들은 공기업에 대한 불만이 많다. 우리의 공공서비스가 국제 수준과 비교할 때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에 관한 객관적 평가와는 무관하게, 공기업은 비효율적이며 ‘철밥통’이라는 예단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20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그랬듯 '개혁'의 이름으로 공공성 파괴가 자행되는 것이다. 둘째, 공기업 민영화는 단숨에 엄청난 수입을 보장한다. 철도나 우체국과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자산은 천문학적이다. 경기를 살리겠다고 약속한 임기 내 70조원 규모의 소득세 인하, 법인세 인하 등 감세정책과 최근 편성한 대규모 건설투자가 초래할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셋째, 이런 어마어마한 기업을 인수할 능력은 재벌만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일일이 폐해를 거론할 것도 없이 이러한 민영화/규제완화는 현재 제공되는 최소한의 필수적 공공서비스도 무너뜨릴 것이다. 예컨대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건강보험(정보의 비대칭성), 교육(외부성이나 평등 지향) 등 가치재 산업을 민영화하면 고급 서비스 시장이 발전하는 대신 공교육이나 공공의료에 투입되는 자원과 인력이 줄어들어 사실상 공공성이 무너지게 된다. 일반 국민은 그 동안 누리던 공공서비스 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전기, 철도, 개스, 수도, 우편 등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에는 자연독점과 교차보조의 필요성 때문에 공기업이 담당해 왔다. 이런 산업을 민영화하면 일반적으로 공공요금이 상승하는 가운데, 특히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공급되는 서비스 가격은 급등하거나 서비스 자체가 끊어질 수 밖에 없다. 어떠한 민간기업도 교차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이런 서비스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촛불의 기세에 눌려 건강보험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보험업법을 개정해서 민간의보를 확대하고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병원당연지정제의 폐지로 이어져 곧 건강보험을 붕괴시킬 것이다. 공정택씨가 서울 교육감에 당선되자 마자 일사천리로 국제중학교를 세우는 것은 공교육 붕괴의 신호탄이다.

 

더구나 이제 비준만 남겨 놓은 한미 FTA는 한번 민영화되거나 규제가 완화된 분야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라도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 서비스 분야 현재 유보에 적용되는 래칫 조항(역진불가능 조항)이나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은 재국유화라든가 공적 규제의 강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건강과 생명이라는 생활 상의 원초적 요구는 신자유주의의 통상원리와 정면으로 맞부딪힌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환경과 건강 정책은 사전예방의 원칙을 최우선의 원리로 삼는다. 문제는 이 원칙이 미국 고유의 통상 논리에 의해서 원천적으로 부정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쇠고기 수입의 예를 들자면 미국은 한국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려면 그 과학적 증거를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주장은 '필요불가결 증명'(necessity test=미국 통상의 원리)의 응용이다. 즉 30개월을 기준으로 수입규제를 하려면 그 규제가 필요불가결함을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사후예방의 원칙에 대비해서 '사전증명의 원칙'이라고 부를 만하다. 쉽게 말해서 사전예방의 원칙이란 아직 확증할 수는 없지만 생명이나 자연에 치명적일 위험이 존재한다면 우선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인 반면, 사전증명의 원칙은 그 위험을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즉 생명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기업 이윤을 먼저 보호할 것인가의 대립인 것이다.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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