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 (1)

 

정태인(경제평론가)

 

지지난 달에 예고한대로 이번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 얘길 하겠습니다. 7월 25일 아침에 이 곳으로 떠나서 8월 2일 아침에 돌아 왔으니 날짜로는 꽤 되는 것 같지만 왕복 이틀 빼고 다들 노는 토요일엔 관광을 했으니 겨우 닷새 동안 돌아본 셈입니다.

 

연초에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저를 찾아 왔습니다.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을 맞아 유러피안 드림이라는 주제로 유럽의 선진적 제도나 문화를 돌아보는 데 조언을 구했습니다. 제가 곧바로 추천한 곳이 에밀리아 로마냐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소기업 위주의 협동의 경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곳이니까요. 그 덕에 저도 이번 여행에 동행하게 된 겁니다. 한 달에 한번 나오는 작은 책을 기다리기 지루한 분은 오마이뉴스의 연재를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분들의 시각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은 이탈리아 20개 주(우리로 치면 도) 중 하나로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곳입니다. 면적이 약 22만Km2, 인구는 430만명 정도이고 1인당 GDP는 2008년 기준으로 22,000유로입니다. 유럽의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유로가 평가절하돼서 지금은 약 3만 3천 달러지만 예년에는 약 4만 달러 정도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실감이 나지 않을테니 우리의 경기도와 비교한 표를 붙입니다.

 

경기도

에밀리아 로마냐

비고

주도

수원

볼로냐

경기도가 에밀리아 로마냐의

면적

10,184Km2

22,124Km2

약 1/2배

인구

1154만명(2007)

429만 3천명

약 2.7배

1인당 GDP

15,400달러

22,358유로(2008)

약 0.4배

<표> 경기도와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교

 

1950년대 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제일 못 사는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제일 잘 사는 지방에 속합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에밀리아 로마냐의 무차렐리(Muzzareli) 경제부 장관의 첫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에는 9명당 한 개 꼴로 기업이 있다”. 즉 40만개가 넘는 기업이 있다는 얘기고 그러니 거의 모두 중소기업입니다. 이 중 8,000개 가량, 그리고 대기업의 절반 가량은 협동조합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수출은 대기업이 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이 지역에서는 중소기업이 수출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제조업 비중이 다른 지방보다 높은 에밀리아 로마냐의 고용율은 70%를 넘고 특히 여성 고용율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보다 10% 포인트 정도 높습니다. 영유아 교육으로 유명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물론 50% 정도의 소득세를 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가 있으니 인구도 증가하는 곳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는 9개의 현(province, 이탈리아의 지방은 주(state)-현(province)-시(municipality) 3단계로 구성된다)이 있는데 카르피현은 서유 및 의류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 모데나현과 레지오 에밀리아현은 세라믹 및 농기계 산업지구, 라베나현은 신발산업지구, 리미니현은 목재생산기계산업지구, 폴리-세세나현은 실내장식,가구산업지구, 파르마현은 식료품산업지구, 페라라현은 바이오메디칼산업지구, 주도(州都)가 있는 볼로냐현은 포장기계산업지구로 유명합니다. 즉 우리로 치면 도를 이루는 각 시/군이 각각 서로 다른 산업에 특화되어 있는 거죠.

 

이 지역은 피렌체와 더불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세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성균관 대학교 최우수 졸업생은 퇴계 이황”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만 볼로냐 대학에서는 단테와 코페르니쿠스가 단연 돋보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지금도 교수를 하고 있죠.

 

제가 처음 이 지방의 이름을 들은 것은 1990년대 초, 박사과정에 몸담고 있을 때였습니다. 피오르와 사베르(Piore and Sabel), 그리고 자이틀린(Zeitlin) 등의 학자들이 “제3 이탤리(3rd Italy)”, “유연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등의 개념으로 이 지방을 소개했는데 10인 이하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수요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전문화‘)는 것이죠. 두 번째는 비서관 시절 중소기업 정책을 연구하면서 에밀리아 모델(1982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Brusco)가 케임브리지 경제학 저널에 논문을 쓰면서 사용한 용어입니다)을 들여다 봤고, 요 몇 년 동안 사회경제(social economy)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지역에서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재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지방 선거 때는 이 지역의 여러 제도를 응용해서 경기도의 정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경기도에 각종 협동조합이 생길 뻔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따져 보고 정책의 이상적 모델로 삼았던 곳이니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겠지요.

 

협력의 조건이 모두 관찰되는 곳

 

여기서 잠깐 작은책의 지난 호를 되짚어 볼까요? 최정규교수의 책, 그리고 노박교수의 짧은 논문을 인용해서 “인간은 언제 협력할까? 라는 아주 오래된, 그러나 지금도 정답을 찾아 헤매는 주제를 다뤘었는데 그 내용을 다시 떠 올려 봅시다.

 

노박이 말한 다섯가지 규칙이란 피가 많이 섞일수록(혈연선택),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직접 상호성),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져 있을수록(간접 상호성),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적을수록(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의 구성원이 적어서 협력자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을수록(집단선택) 그 사회는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단 닷새 돌아 본 사람의 억지 춘향일지 모르지만 이 조건들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모두 충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산업지구라는 말을 썼는데 이 용어는 이탈리아 학계의 독특한 사고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이론적 기초로 삼으면서 유명해진 클러스터라는 개념은 기업, 연구소, 학교의 네트워크라는 경제/기술적 의미가 강한 반면, 산업지구는 이런 경제 네트워크가 배태되어 있는(embedded) 사람들의 공동체/문화를 동시에 강조합니다. 경제적 네트워크는 동시에 그 지역에 독특한 문화와 가치를 재생산해야 한다는 거죠. 말하자면 학술용어부터 사람과 공동체의 냄새가 짙습니다.

 

나쁘게 보면 지역색이 강한 건데 이런 성향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켜 줍니다. 좁은 지역에서 장기거래를 하다 보니 모든 기업과 사람의 평판이 잘 알려져 있고(세번째 조건) 오랜 역사의 강한 네트워크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조건을 충족시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 지역에 꽃핀 시민정신(civic humanism), 그리고 협동조합의 전통은 협력과 연대(cooperation, solidarity)를 이 지방의 가치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지방의 사회 규범(social norm), 정체성(identity)이 곧 바로 협력인 셈입니다. 공식적/비공식적 제도가 이 가치에 맞춰서 형성된 거죠.

 

뭔가 베낄 것을 찾는 저에게 툭하면 돌아온 답, “그건 여기 문화야, 우린 원래 그래”는 그래서 절망적이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단번에 이식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물론 공동체의 이런 성격은 폐쇄적인 문화, 기술적으로 보면 잠김효과(lock-in effect, 특정 기술이나 제도에 고착되는 것)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개략적인 윤곽만 그렸는데 이미 허용된 매수를 넘긴 것 같네요. 다음 달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제도와 문화를 통해 이 지방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2) - 중소기업 경쟁력의 원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에밀리아 로마냐의 사회 분위기를 느끼려면 조반니노 꽈레스키의 시리즈 소설, 그리고 테렌스 힐이 주연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The Little World of Don Camilo)을 떠올리면 된다. 영화의 배경인 브레첼로시 (Brescello commune) 는 에밀리아 로마냐 주의 레지오 에밀리아현에 있다.

 

신부인 돈 까밀로와 기계수리공인 뻬뽀네시장은 사사건건, 때로는 치졸하게 다툰다. 하지만 둘 다 파시스트와의 싸움에서 열렬한 빨치산이었다는 점, 그리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공산당원 뻬뽀네는 공식적으로는 카톨릭을 부정하지만 자기 아들의 세례를 받으려 하고 돈 까밀로는 동네 유지들로부터 “볼셰비키 사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영화와 소설에서 묘사되는 바, 종교나 정파와 관계없는 끈끈한 공동체의식이야말로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이다. 우리가 인터뷰에서 항상 들은 곤혹스러운 답변, “우리는 원래 그래(협동을 잘해)”, “우리 문화가 원래 그래”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들은 르네상스 시대 중심지역에 찬란하게 빛난 인문주의, 그리고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빨치산의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친일 인사의 명단 공개와 같은 단순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도 대통령 직속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각 지역에 있는 민중의 집에서 빨치산 할아버지들이 사례를 수집해서 분석하고 손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민중의 집(1층에는 예외없이 술집이나 까페(bar)가 들어서 있다^^)이나 노동자평의회 같은 제도는 지역에서 일상적 민주주의가 생활 속에서 뿌리내리게 만드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인문주의나 숙의 민주주의/ 결사체 민주주의가 경제적 성공까지 보장한다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의 경제학

 

흥미로운 건 에밀리아 로마냐, 더 일반적으로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를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에도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학원 시절에 그야말로 산업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공부했다. 전문화된 중소기업이 유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네트워크이다. 1980년대에 이미 한계를 맞은 대량생산의 포디즘을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모델로 대두되었다(Piore & Sabel의 유연전문화론 등 포스트포디즘이론).

 

“에밀리아 모델”이라는 말을 만든 브루스코나 “산업지구론”을 정초한 베카티니(Becattini)는 마셜의 산업지구론을 차용해서 이탈리아의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설명한다.

 

이들은 산업지구를 “기업들의 공동체”와 “주민들의 공동체”가 결합한 이중의 공동체로 정의한다. 단순히 성공한 클러스터의 배경에 네트워크 외부성(외부경제)과 신뢰라는 가치가 있는 것, 즉 플러스 알파의 요인이 아니라 신뢰에 기초한 사회적 응집(social cohesion)은 산업지구의 필수 요소 자체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주민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응집 없이는 기업들의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사회적 응집이란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평등과 연대, 또는 그를 넘어서는 어떤 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주민들의 동의, 즉 민주주의를 담고 있다.

 

따라서 산업지구가 발전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물질적 성장이 아니라 그 지역의 가치와 문화 역시 같이 고양되어야 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 사회와 경제의 분리라는 경제학의 세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그 사회 안에 단단히 뿌리박은(embedded) 상태, 또는 상호성(reciprocity)의 원리가 경쟁의 원리를 제약하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산업지구 내의 중소기업들은 협력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인간공동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가격경쟁보다는 제품차별화경쟁을 택한다.

 

예컨대 세라믹산업으로 유명한 사수올로(Sassuolo) 산업지구에는 에나멜과 페인트, 풀, 포장, 전문화된 기술 상담 서비스, 그래픽과 디자인, 보관과 수송, 법률과 보험 서비스 등 세라믹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공하는 소기업들로 우글거린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로 아름답고 내구성이 좋은 고품질의 타일이다. 이런 네트워크는 수요의 변화나 외부의 충격에 아주 유연하게 대응한다. 물론 대기업이 이런 기능들을 부서의 형태로 모두 갖출 수 있지만 기업의 위계질서로 인해 각 부서가 최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가령 사수올로에서처럼 여러 소기업이 경쟁하면서 새로운 경지의 에나멜이나 풀을 만들어내도록 대기업 내부를 설계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자본과 기업가 정신

 

이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외부성, 또는 산업지구의 외부경제는 지역 내의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낸다. 각 기업의 기술과 노우하우는 흘러 넘쳐서(spillover effect) 지역 공동의 지식과 제도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장기 반복 거래와 평판 효과(reputation effect)로 쌓인 신뢰는 각종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공식적 계약이나 제도보다는 비공식적 관계에 의해 공유 자산이 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요, 그 지역의 규범(norm)이다. 만일 이런 규범을 어긴다면 그는 지역사회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다. 지역 고유의 문화와 역사가 지역의 정체성(identity)을 낳게 된다. 규범과 정체성은 또 다시 상호성을 강화하여 협력을 촉진한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은 이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 하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분위기(industrial atmosphere)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좌파 노동조합이 가장 강한 지역이지만 공산당(현재의 민주당)에는 사장과 노동자가 같이 가입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기만 한다면 지역의 공유자산을 이용하여 언제든 기업을 창립할 수 있으니 노동자와 기업가라는 계급적 차이는 절대적이지 않다. 기술변화, 또는 구조조정에 노동조합은 아주 유연하게 대응한다.

 

이것이 에밀리아 로나먀의 비밀이다. 물론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규모가 적기 때문에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정보기술혁명 같이 외부에서 밀려오는 쓰나미에 휩쓸릴 수 있다. 이 지역이 어떻게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지 다음 달에 계속하자.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 -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의 천국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사회가 움직이는 모든 원리는 믿음(confidence)에 있다. 그건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믿음이 가져다 주는 모든 것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무시된다. 세상이 실패할 때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믿음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마셜, "산업과 무역")

 

지금까지 연재를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에밀리아 로마냐가 “참 괜찮은 동네”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문화역사적으로 우리와는 너무나 달라서 흉내도 낼 수 없는 곳이라고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태까지의 연재는 명품을 생산하는 소기업, 그리고 먹을거리와 집 등 생활필수품을 제공하는 협동조합이 어우러진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그러나 에밀리아 로마냐의 생산물의 반 이상이 수출된다. 수치만 보면 우리와 비슷한 것이다. 전통적 제품(의류나 가죽 등)을 생산하기에 특히 중국 등 이른바 BRICs와의 경쟁도 치열할 수 밖에 없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에밀리아 로마냐의 특수성은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에 밀려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분명 경쟁의 힘은 이 지역을 세차게 뒤흔들고 있지만 아직도(!) 에밀리아 모델은 건재하다. 도대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제3이탤리 ; 바그나스코, 21개 주 중 8개 - 에밀리아 로마냐, 롬바르디아, 베네토, 투스카나, 피데몬테, 마르차니세, 아브루치,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조반니노 꽈레스키의 시리즈 소설, 그리고 테렌스 힐이 주연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을 보신 분은 그 풍경을 떠올리면 된다. 영화의 배경인 브레첼로시 (Brescello commune) 는 에밀리아 로마냐 주의 레지오 에밀리아현(바로 우리가 찾아간 농업협동조합이 있는 현)에 있다. 맨 처음 원작 소설에서는 폰테라토시(Ponteratto commune)가 배경인데 이 역시 레지오 에밀리아현에 있다. 우리가 볼로냐에서 북서쪽으로 수많은 라운드어바웃을 거쳐 통과한 곳이 바로 이 영화의 고장인 것이다.

 

픽션이지만 영화,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The Little World of Don Camilo)은 이 지역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부인 돈 까밀로와 기계수리공인 뻬뽀네시장은 사사건건, 때로는 치졸하게 다툰다. 하지만 둘 다 파시스트와의 싸움에서 열렬한 빨치산이었다는 점, 그리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뻬뽀네는 공식적으로는 카톨릭을 부정하지만 자기 아들의 세례를 받으려 하고 돈 까밀로는 동네 유지들로부터 “볼셰비키 사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영화와 소설에서 묘사되는 바, 종교나 정파와 관계없는 끈끈한 공동체의식이야말로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이다. 우리가 인터뷰에서 항상 들은 곤혹스러운 답변, “우리는 원래 그래(협동을 잘해)”, “우리 문화가 원래 그래”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내 기억에 새롭게 살아 난 것은 돈 까밀로가, 이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는 헤라클레스 상을 돌려 놓고 뻬뽀네는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는 일화이다. 제멋대로 상상한다면 그건 아마도 르네상스에 대한 가톨릭과 공산당의 입장이 아니었을까?(그런 해석이 있는지 영화평론가들은 금방 알 수 있을테지만)

 

또 하나, 눈여겨 봐야 하는 건 “민중의 집”을 둘러싼 두 사람의 갈등이다. 민중의 집은 사실 파시스트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고 전후 이 지역의 숙의 민주주의/결사체 민주주의(deliberative/associative democracy) 토대이다..

 

실제로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들은 르네상스 시대 중심지역에 찬란하게 빛난 인문주의, 그리고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빨치산의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친일 인사의 명단 공개와 같은 단순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도 대통령 직속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각 지역에 있는 민중의 집에서 빨치산 할아버지들이 사례를 수집해서 분석하고 손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민중의 집(1층에는 예외없이 술집이나 까페(bar)가 들어서 있다^^)이나 노동자평의회 같은 제도는 지역에서 일상적 민주주의가 생활 속에서 뿌리내리게 만드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경제성장과는 대척점에 서 있을 것 같은 인문주의나 숙의 민주주의/ 결사체 민주주의가 경제적 성공까지 보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라는 철학

 

흥미로운 건 에밀리아 로마냐, 더 일반적으로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를 정의하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에도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학원 시절에 그야말로 산업 네트워크(훗날 포터에 의해서 클러스터라는 개념으로 정리되었지만)로 이 지역을 공부했다. 전문화된 중소기업이 유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네트워크. 이미 한계를 맞은 대량생산의 포디즘을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모델로 대두되었다(Piore & Sabel의 유연전문화론 등 포스트포디즘이론).

 

그러나 이번에 확인한 것은 그 중소기업 안에는 협동조합이 다수 있었고, 더구나 이탈리아의 “산업지구”이론 자체가 훗날의 클러스터이론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에밀리아 모델이라는 말을 만든 브루스코나 “산업지구론”을 정초한 베카티니(Becattini)는 마셜의 산업지구론을 차용해서 이탈리아의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특수성은 이들의 이론을 마셜의 그것과 구분하도록 만든다.

 

이들은 산업지구를 “기업들의 공동체”, 그리고 “주민들의 공동체”가 결합한 이중의 공동체로 정의한다. 단순히 성공한 클러스터의 배경에 네트워크 외부성(외부경제) 외에 신뢰라는 가치가 있는 것, 즉 플러스 알파의 요인이 아니라 신뢰에 기초한 사회적 응집(social cohesion)은 산업지구의 양 대 필수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주민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응집 없이는 기업들의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사회적 응집이란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평등과 연대, 또는 그를 넘어서는 어떤 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주민들의 동의, 즉 민주주의를 담고 있다.

 

따라서 산업지구가 발전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물질적 성장이 아니라 그 지역의 가치와 문화 역시 같이 고양되어야 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 사회와 경제의 분리라는 경제학의 세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그 사회 안에 단단히 뿌리박은(embedded) 상태, 또는 상호성(reciprocity)의 원리가 경쟁의 원리를 제약하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산업지구 내의 중소기업들은 협력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인간공동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가격경쟁보다는 제품차별화경쟁을 택한다.

 

“중소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정보, 장비, 사람, 그리고 주문을 공유하면서 상호작용한다. 적은 수의 사업 서비스 기업(시장조사, 기술 훈련, 인력 관리, 수송, 연구개발 등)과 금융 서비스 기업이 이들을 돕는다. 물론 장비, 에너지, 소모품 등과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생산자들이 스스로 마케팅과 유통을 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아주 적은 유통업자들이 담당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소규모네트워크기업(Small-Firm Networks, SNF)은 생산물 대부분을 수출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특히 두드러진다. 소기업들은 자신의 생존과 네트워크 규모의 경제를 위해 필수적인 하부구조 위에 서 있다. 시와 주정부는 도로, 값싼 땅, 교육서비스, 그리고 금융까지 제공한다. 기업연합회(trade associations)는 정보, 훈련, 금융 그리고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과 노동조합은 불공정한 거래와 노사 관계를 감시한다.”(Perrow, C. Small-Firm network, Networks and Organizations, Havard Business School Press, 1992. Grando, A., Bruno, M., Vasconcellos, E., Baglieri, V., Technology innovation and business Organization in the Italian industrial districts, RAI, 2008에서 재인용)

 

아주 작은 전문화된 소기업들이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세라믹산업으로 유명한 사수올로(Sassuolo) 산업지구에는 에나멜과 페인트, 풀, 포장, 전문화된 기술 상담 서비스, 그래픽과 디자인, 보관과 수송, 법률과 보험 서비스 등 세라믹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공하는 소기업들로 우글거린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로 아름답고 내구성이 좋은 고품질의 타일이다. 물론 대기업이 이런 기능들을 부서의 형태로 모두 갖출 수 있지만 기업의 위계질서로 인해 각 부서가 최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가령 사수올로에서처럼 여러 소기업이 경쟁하면서 새로운 경지의 에나멜이나 풀을 만들어내도록 대기업 내부를 설계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외부성, 또는 산업지구의 외부경제는 지역 내의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낸다. 각 기업의 기술과 노우하우는 흘러 넘쳐서(spillover effect) 지역 공동의 지식과 제도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장기 반복 거래와 평판 효과(reputation effect)로 쌓인 신뢰는 각종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공식적 계약이나 제도보다는 비공식적 관계에 의해 공유 자산이 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요, 그 지역의 규범(norm)이다. 만일 이런 규범을 어긴다면 그는 지역사회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다. 지역 고유의 문화와 역사가 지역의 정체성(identity)을 낳게 된다. 규범과 정체성은 또 다시 상호성을 강화하여 협력을 촉진한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은 이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 하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분위기(industrial atmosphere)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의 이론에 바탕해서 기준을 만들어 공식적으로 산업지구 지도를 작성했다. 1991년에 제정된 법(317/91)은 산업지구를 “전문적 소기업이 고도로 집적되고 기업과 지역 주민 간에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곳”이라고 정의한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에밀리아 로마냐에는 13개의 산업지구가 존재한다. (2001년 조사 기준으로 이탈리아 전체에는 156개의 산업지구가 존재한다) 중앙정부의 기준에 따라 지역의 산업지구를 지정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방정부가 고유의 기준에 맞춰 산업지구를 선정하도록 했지만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를 거부했다. 자신의 모델을 일반화한 것이 오히려 역동성이나 창조성을 가로막을 것을 우려한 것이다. 방문 중에 계속 느낀 이 지역의 미묘한 고집이다.

 

잠김효과 - 산업지구 내부의 문제

 

이런 소규모 네트워크에 대한 위협은 보통 외부로부터 온다. 특히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든가 정보기술혁명 같은 거대한 변화에 중소기업이 대응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내부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오히려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네트워크 조직에는 잠김효과(lock-in effect)라는 위험이 뒤따른다. 잠김효과는 산업기술적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역설적으로 산업지구의 성공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자신의 산업조직이나 기술체계에 대한 과신이 이른바 “성공의 근시안(success myopia)”(Alberti, 2004)을 야기하는 것이다. 외부의 커다란 변화를 제 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고 또한 알게 된다 하더라도 수많은 소기업들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기술/조직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과거에 장점이었던 친밀성(proximity)이 지나치면 학습과 혁신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Boschma, 2005).

 

이 때문에 선도기업과 지구그룹(district group) 등 시스템 통합자가 나타나기도 한다(뒤에 기술). 이들 통합자는 브랜드나 마케팅, R&D 등 전략부문에 집중하면서 산업지구 전체의 기술 및 조직 변화를 주도하는데 외부와의 강한 연관 속에서 기존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파괴할 수도 있다. 롬바르디 지방의 코모 산업지구(섬유의류)와 아솔로와 몬테벨루나 산업지구(스포츠 신발)는 각각 실패와 성공을 대표하는 사례이다(Camuffo et, al., 2005).

 

다른 한편 끈끈한 유대는 사회문화적 잠김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에밀리아 로마냐의 강한 인문적 휴머니즘의 전통은 이런 경향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 30만명의 소도시인 볼로냐에서 온갖 인종을 다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작은 증거가 될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사회문화에서도 강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목가적 풍경?

 

여태까지 소개된 기업/협동조합만 본다면(가죽의 명품을 생산하는 테스토니, 와인을 생산하는 리유니테, 노숙자 협동조합) 독자들에게 에밀리아 로마냐는 명품을 생산하는 착한 농업지역으로 비춰질 것이다. 거기다 고풍스러운 도시의 모습이라니... 따라서 우리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현대와는 거리가 먼, 그러나 조상 덕에 몇 개의 명품 기술을 가진 지역,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고집스러운 촌 동네의 이미지일텐데 산업지구의 초기 이론들(브루스코와 베카티니의 이론)을 경제학에서도 낭만적 견해(romantic view)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명명에는 국제화와 정보혁명이 낳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런 풍경이 사라지리라는 예측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횡행하는, 그래서 임금을 억제하고 FTA를 맺어야 한다는 샌드위치론 상황이야말로 에밀리아 로마냐에 딱 들어맞는다. 이른바 “made in Italy" 제품들은 전통적 산업에 속한다. 실리콘 밸리로 상징되는 혁신 지역, 또는 국가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지고 요소 가격 경쟁에서는 중국과 맞바로 경쟁해야 한다. 중화학 대량생산에 특화되어 있는 한국보다 더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실제로 90년대 중반 이후 이탈리아의 성장률 정체는 여기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이탈리아는 1994년에서 2005년까지 매년 평균 노동생산성이 0.5% 증가했을 뿐이고 이 기간동안 세계시장 점유율은 4.5%에서 2.0%로 낮아졌다).

 

기계산업의 발전

 

과연 에밀리아 로마냐는, 더 일반적으로 산업지구는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정보통신혁명의 쓰나미 앞에서 해체되고 말 것인가?

 

우선 에밀리아 로마냐(중북부 이탈리아 전체에도 어느 정도 해당된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적인 최종제품의 생산 기업과 더불어 예외없이 관련 기계제조업이 발전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초고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페라리, 람보르기니나 모터사이클 업체 두카티가 살아 남는 데는 수없이 많은 자동차 부품관련 중소기업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이몰라의 세라믹 산업(주로 타일 생산)의 배후에는 역시 세계 1,2위를 자랑하는 세라믹 기계산업이 발전되어 있다. 농업 산업지구에는 포장기계산업이 발전돼 있고 목재 산업지구에도 관련 기계산업이 존재한다. 이것은 에밀리아 로마냐의 전통 산업이 단순히 가격경쟁을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마찌꼬바“들도 “든든한 백”이 있는 셈이다.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가 있다면 그 주위에 우유 팩을 생산하는 기업(농업의 경우에는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그 팩을 만드는 기계산업이 또 만들어진다. 이런 연쇄는 암묵적 지식이 공유 자산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제도주의/진화주의에 입각한 기술경제학은 기계산업을 암묵적 지식/종합적 지식(tacit/synthetic knowledge)이 중요한 대표적 산업으로 분류한다. 비교하자면 실리콘밸리 유형은 코드/분석적 지식(codified/analytical knowledge)의 응용에서 생명력을 찾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은 암묵적 지식에 있고, 실리콘 밸리가 지식의 내부화와 판매로 기운다면 에밀리아 로마냐는 지식의 외부화와 축적을 이룬다. 이런 지식의 유형과 산업지구라는 경로의존성은 에밀리아 로마냐를 중소기업의 천국으로 만든다(Pini et.al.,The underlying processes of incremental and radical innovation: An empirical analysis of the Reggio Emilia industrial district, 2005).

 

한편 에밀리아 로마냐의 학습은 실행학습(learning by doing), 사용학습(learning by using)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것은 수많은 부수혁신(incremental innovation)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에밀리아 로마냐 산업의 지식과 학습의 성격은 곧 돌파혁신(breaking-through innovation)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 능력을 보충해야 한다. 더 다양하고 탄력있는 산업군을 가지려면 기존 중소기업 네트워크 외부에서, 즉 대학이나 연구소, 정부의 개입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 서비스산업의 발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의 산업지구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은 사업서비스 중소기업의 발전이다. 80년대 이후 에밀리아 로마냐의 고용 증가를 주도한 것은 서비스 산업이다. 그것은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이 지역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앞에서 본 레가코프나 CNA가 회계와 금융 등 일반적인 사업서비스를 제공한다면 80년대에 세워진 리얼서비스센터는 주로 기술 관련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흔히 금융이나 마케팅과 같은 사업서비스는 중소기업의 지속적 발전 앞에 놓여 있는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그러나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이러한 사업서비스 역시 준공유자산으로 발전한다.

 

이몰라 등 세계적인 세라믹 생산업체와 기계 생산(레찌오 에밀리오)

 

피아트의 위기와 튜린/피데몬트의 성공 스토리

 

기업가 정신

 

에밀리아 로마냐 주정부 경제장관은 “9명당 하나의 기업이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지역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어르신과 아이들을 빼면 평균 대여섯명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구)공산당에는 사장과 노동자가 동시에 가입해서 활동한다. 노동조합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하지만 동시에 이들 노동자들은 기업가 정신에도 익숙하다. 사실 노동자라고 시장에 적응할만한 창조성을 가지면 안 될까? 왜 노동자는 새롭게 창조된 가치(V+S)에서 임금 몫을 늘리는 데 온 몸을 다 바쳐야 하는 것일까?(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분석일 뿐이다. 그것도 초기 자본주의 분석이며 인간은 이기적이고 제로섬 게임을 한다고 가정한 점에서는 주류 경제학과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라면 반동적일 이런 의문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당연하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좌파 계열 노동조합도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가장 강한 곳이다.

 

스웨덴이나 네델란드의 역사적 대타협, 사회적 합의가 흔히 거론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그런 합의가 일상에서, 아주 미시적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노사정 합의를 지역적, 산업별 차원에서 미시적 합의를 실천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반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그 요령을 배울 일이다. 민주노총이 스웨덴 LO를 모델로 삼고 있지만(이 모델도 이미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만ㅠㅠ) 에밀리아 로마냐의 CGIL에서 참조할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cf) 이탈리아 공산당이 좌파민주당으로 변신하는 데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일설이 있다.

 

 

소규모를 극복해 주는 네트워크

 

- 공동 브랜드

예) 악타 세라믹 이탈리아 브랜드와 지역 브랜드...

* 에밀리아 로마냐 와이너리 리유니테. 우리가 방문한 리유니테 역시 마찬가지다.

 

- 컨소시엄, 그리고 연합

* CCC 등 컨소시업 (사업 비딩, 공동 구매)

* CNA, 레가코프 등 연합 (각종 사업 서비스, 행정 서비스)

 

- 산업지구와 시스템 서비스 ERVET(기술적 필요)

* * 협동조합이건 일반기업이건 모든 형태의 기업을 지원하는 체계적 기구 발전 - 연구개발, 교육훈련, 마케팅과 유통, 금융, 기술이전, 작업장 안전, 환경규제 등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시스템 발전 - 이 기구를 통해 협동조합의 가치와 경험이 시장경제 전체에 스며들게 됨.

* 초기에 지역개발기구로 설립된 에르벳과 리얼서비스센터의 분화 - 1974년 설립된 에르벳은 1980년대에 에르벳 시스템으로 불리는 9개의 업종별 리얼서비스센터를 통해 사업서비스 제공. 에르벳은 국가로부터 자율적으로 소프트웨어 중심 지역혁신체제 구축에 성공.

* 2002년 ASTER는 지역연구시스템 혁신의 임무를 맡게 되었고 기존 리얼서비스센터도 모두 독립

 

거의 모든 연구자들에게 상찬을 받았지만 친근하고 밀접한 서비스는 제공했지만 기술적으로 혁신적이지는 못했다는 박한 평가를 학자들에게 받았다.

 

- 공산당/지방정부의 역할

 

다른 무엇보다도 공산당/지역정부는 지역사회의 공론을 이끌었다. 그리고 유능했다. 50년대에 공산당은 코민테른/소련의 “반독점 테제”를 뒤따랐다. 어쩌면 행운인 것이 이렇다 할 기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테제는 국유화가 아니라 중소기업 육성으로 실천됐다.

 

* 50년대 산업지구의 인프라 건설과 금융 지원

 

기술은 있지만 돈이 없는 중소기업. 놀고 있는 땅을 개발해서 중소기업에게 시장 가격 이하로 제공했다.

 

* 70년대 에르벳/리얼서비스 센터 등 사업서비스 지원

 

생산기술은 있지만 금융, 회계 등 사업 서비스, 산업별 기술 지식이 없는 중소기업에 품질관리, 품질 인증, 자동화아 R&D를 제공했다. 이들이 없었으면 이 곳이 대학과 교류한다든가 수출이라는 길을 열지는 못했을 것이다.

 

리얼서비스 센터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이들이 80-90년대의 민간 사업서비스 기업의 모델이 된 것은 틀림없다. 센터의 한계가 바로 민간 기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에밀리아 로마냐는 레가코프와 CNA가 제공하는 회계, 금융, 로비 등 일반적 사업서비스, 그리고 리얼서비스센터와 뒤이은 민간 서비스 기업이 제공하는 부문별 기술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훨씬 구체적으로 유용한 사회자본을 갖추게 되었다. 사업가나 기술자, 노동자들 사이의 암묵적 지식(tacit knowldege)과 대학/서비스센터가 제공하는 일반 지식(codified knowledge)이 결합되었다.

 

* 80년대 공동 브랜드 및 수출 촉진 정책

 

 

* 90년대 혁신지구 프로젝트

 

대부분의 지방정부 재정은 의료에 들어가기 때문에 산업정책은 한계가 있다. 90년대 이후 에밀리아 로마냐에 특기할만한 것은 EU의 구조조정 기금을 많이 따냈다는 것이다. 사실 기금의 성격에 비춰 에밀리아 로마냐가 기금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이 지역의 경험을 참고 삼았고 또 최초의 성공 사례가 필요했을 것이기에 그것도 의미가 있다(아시아 펀드를 만들면 초기에는 아마도 한국이 최고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에밀리아 로마냐 정부가 무엇보다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했다는 사실이다. 지속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공산당/좌파 민주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이 가능했을 것이다. 정부의 이런 능력은 지역 내의 주요 제도인 좌파 협동조합(레가), 좌파 노동조합(CGIL)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다. 이것이 정치/민주주의의 본령일 것이다.

 

그러나 이리 저리 사람으로 엮여 있던 관계는 해체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에 찍혀서 취직이 어려운 노동조합 간부를 협동조합이 받아 들이기도 했으며 공산당 간부가 협동조합의 경영진을 맡기도 했으나 이제 그런 일은 거의 없다(미야니).

 

새로운 단계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과거 이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재생산을 보장했던 주요 제도들간의 상호작용이 기능적으로 변한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정치/제도적으로 에밀리아 로마냐에 남겨진 숙제는 그러하다. 현지에서 느낀 바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런 느낌이 한국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한국은 제도가 잘 갖춰진 동네라는 게 국제적 평가지만).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에밀리아 로마냐

 

- 진화의 논리에서 협동하는 인간의 세상에 이기적 인간이 나타나면 무조건 이긴다. 그리고 조만간 그 사회는 무너진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신뢰가 강해서 웬만한 외부 충격은 반자동적으로 흡수하는 적응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 지역이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맞으면 어떻게 될까? 80년대 이래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정보통신혁명, 그리고 중국의 부상은 에밀리아 로마냐의 몰락을 예고하는 핵심 요소였고, 지금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러하다. 70년대 위기를 맞은 이탈리아 산업지구들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특히 에밀리아 로마냐는 고유의 공동체 정신과 유연 전문화로 품질경쟁에 일로매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이나 동유럽이 밑에서부터, 그리고 80년대 외주와 경량(slim)경영을 받아들인 초국적 대기업이 위에서부터 압박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더 높은 수준의 학습과 혁신이 필요해졌다.

 

-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기술혁명, 특히 중국의 부상이 이탈리아 산업에 미치는 영향

* 거래비용이론이 적용되지 않다. 자산특수성과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으면 수직 통합을 하게 된다는 이론.. 또한 이 이론은 거꾸로 90년대부터 벌어진 수직적분산(vertical disintegration), 즉 외주(outsourcing)과 해외이전(delocation 또는 offshoring)에도 논리를 제공했다. 수송과 정보혁명으로 거래비용이 급속하게 낮아진 결과, 글로벌 가치 연쇄(global value chain, 또는 global production system)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유럽 통합으로 인한 무관세화 역시 이탈리아의 중소기업에는 타격이 될 수 있다. 또한 통화 통합(Euro의 채택)은 수출을 위한 환율정책(평가절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변화, 그리고 경제학의 이론에 비춰보면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기업들은 수직통합되거나 아니면 하청기업으로 전락하거나 해외이전하게 되거나, 몇가지 중 하나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섬유의류, 가죽, 세라믹 등 이 지역의 전통적인 산업들은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급속하게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실제로 이탈리아 전체를 놓고 보자면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빗나갔다. 단순히 가격경쟁을 하는 하청기업으로의 전락하지도 않았고 또한 이 곳의 기업들이 대규모로 해외 이전하지도 않았다. 계량 경제학으로 분석해도 거래비용이론이 유의미하게 설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물론 거래비용이론은 시장과 기업의 중간에 네트워크를 설정하고 있는데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을 이 논리로 설명하는 것도 유의미하지 않다. 참고문헌)

 

다면 그건 협동조합의 도소매 네트워크나 농업 네트워크...

 

* 물론 중규모 기업이 늘어나고 이들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마이크로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만 두세명을 고용했던 기업이 평균 10명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국제 경쟁 속에서 선도기업(leading firm)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에밀리아 로마냐의 핵심 산업지구에서는 지구그룹(district group)이라고 부를만한 그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닐곱개의 관련 중소기업(모터 엔지니어링의 경우 평균 7.3개), 그리고 흔히 부동산이나 금융기업이 법적 독립성을 유지한 채 주식의 교차소유에 의해서 집단을 이루었다. 과거의 비공식적 관계가 더 공식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으며 선도기업이 지휘통제 역할을 강화했다. (Brioshi et.al., From Industrial District to the District Group. An Insight into the Evolution of Local Capitalism in Italy, 2001). 브리오시 등의 조사에 따르면 모데나와 레찌오 에밀리아의 경우 절반 이상의 기업이 그룹에 속해 있다. 선도기업은 그룹 내의 소기업이 담당하기 어려운 마케팅, 금융, 신기술 개발(R&D 투자) 등 전략 분야를 담당한다. 고용 규모가 클수록,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는 기업일수록 그룹화의 경향은 강하다. 따라서 일부 학자는 그룹화가 산업지구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주장한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한국의 재벌이나 일본의 게이레츠 같은 대규모 그룹의 폐쇄적 네트워크로 볼 수는 없다. 제품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수평적 네트워크와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직적 네트워크도 강화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의 불확실성 속에서 기존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대기업에 흡수되었다기 보다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업지구와 비산업지구를 비교해 볼 때 산업지구에서 그룹이 더 많이 발견되고 전문화와 지역적 집중이 더 강하다는 것은 이런 결론을 뒷받침한다(Cainelli et.al., Spatial agglomeration and business group:new evidence from industrial districts, 2001). 또한 인수를 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합병하기보다 기존의 브랜드와 시설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소유지분으로 통합한다.

 

즉 생산 및 서비스 거래를 내부화한다는 거래비용이론의 수직통합의 원리보다는 금융과 행정기능을 집중한 것이며 이는 산업지구의 중소기업형 조직 논리가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역 시스템의 유연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산 시스템의 조직적 능력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Bardi and Garibaldo, The economic and social impact of mergers and acquisitions in local productive system:the automotive cluster in the Emilia Romagna region, 2002).

 

분명 90년대 이후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선도기업과 그룹화, 주식의 교차소유, 공식화한 네트워크화가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Rinaldi, 2009).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과연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인 신뢰와 사회적 응집, 민주주의에 뿌리내린 경제라는 관념, 또는 이상은 해체될 것인가?

 

과연 이들 그룹이 거래 비용이론이 예측하는대로 거래를 내부화하는 폐쇄 네트워크로 발전할 지는 의문이다. 이들 그룹의 발전과 더불어 외부경제라는 공유자산이 줄어드는지 여부를 실증해야 할텐데 아직 그런 연구는 보이지 않으며 실제 인터뷰에서 기업가들은 여전히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주) 그러나 미국 투자자들이 이 지역 자동차산업의 선도기업을 인수합병해서 고급차회사인 크발(Qvale)을 설립한 것은 이런 경향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두카티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의 1차 하청의 역할을 하는 라이센싱 기업이 2,3차 하청기업을 관리하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과거의 공급망이 상당 부분 재구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가 지역생산체제에 어떤 변화를 줄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 글로벌가치연쇄 속에서 시장경쟁의 한 축이 됨으로써 에밀리아 모델은 붕괴할 것. 특히 인간 공동체, 가치공동체 쪽이 붕괴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글로벌 가치 연쇄 속에서 기존의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지위 상승하는 하청기업군이 많고 선도기업이나 기술혁신기업은 이들 네트워크를 대표하여 디자인, 마케팅, 기술혁신 등 소기업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대행하는 선도기업, 또는 초점기업이 시스템 통합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지만 이들이 위계를 강화하여 과거의 장점을 무력화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여러 산업지구는 다양한 위기를 맞고 또 여러 가지로 대응하여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실제로 에밀리아 로마냐는 아니지만 롬바르디의 유명한 실크 산업지구인 코모에서는 고도의 수직통합기업이 나타나고 몇 몇기업의 경우 외부 기업들과의 연계를 더 강화했으며 수많은 중소기업이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Alberti, F., The crisis of th industrial district of Como:A longitudinal analysis, 2004). 이 지역 내 기업들간에 협력 관계가 현저히 약해진 것은 산업지구의 구조적 쇠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과 같은 하청단가의 수시 인하는 불가능하며 여전히 산업지구 전체의 재생산에 필요한 임금 수준이나 노동조건이 관철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 강력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존재

 

* 노동조합이 존재하면 기술혁신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란 가정도 통용되지 않는다. 노조의 경영 참여가 보장되는 경우 오히려 기술혁신에 적극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흥미로운 것은 청소 등 부차적 과정을 외주하는 경우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 노동조합과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 다국적기업 - 다국적기업은 하청을 중국으로 돌릴까? 품질에 차이가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결국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기업들은 초국적 생산 네트워크에 편입되었지만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부품공급자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보완적인 글로벌 부품공급자가 되었다(Gunta et al., Subcontracting in the Italian Economy, Labor Division, Firm Growth and the North-South Divide, MPRA, 2009). 재벌을 통해 종속적 부품공급자가 되어 끊임없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소멸의 운명을 걷고 있는 한국 중소기업들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에밀리아 로마냐에 관철되는 정신은 하이로드(죄수의 딜레마에서 협력해)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하청관계는 전형적인 로우로드(죄수의 딜레마에서 경쟁해)를 채택하고 있다. 하청 단가 인하와 장시간-저임금 노동으로 중국과 경쟁하는 것이 어떤 결말을 낳을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생산요소의 가격경쟁이라면 땅의 넓이와 사람의 수가 승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청기업의 흡수능력

 

한편 해외자본투자(FDI)는 제한적이었다. 해외자본이 넘침 효과를 통해 지역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오직 그 이전에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을 때라는 최근 연구(Propris & Driffield, The Importance of Clusters for Spillovers from FDI and Technology Sourcing, Cambridge Economic Journal, 2006)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국내 기업의 네트워크가 집단으로 해외자본과 거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독점의 상황도 아니고 폐쇄적 네트워크도 아닌 것이다.

 

외국자본에만 특혜를 주는 경제자유구역으로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정책은 이 때문에 부동산투기만 일으키고 실패할 수 밖에 없다.

 

 

- 선도기업과 네트워크의 출현

 

* 글로벌 경쟁은 브랜드, 마케팅, 그리고 혁신을 핵심 경쟁요소로 만든다. 너덧명이 운영하는 기업이 한국이나 중국에 마케팅을 할 수는 없다. 이제 지역 내 서비스 센터도 한계에 부딪히고 레가코프나 CNA는 발걸음이 더디다. 자연스레 선도 기업(leading firm)이 생겨난다.

 

가상 기업은 에밀리아 로마냐에 익숙한 현상이다. 네트워크 자체가 기업의 일정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수한 타일 생산업체를 대표해서 .... 라는 이탈리아 지역 상표를 만드는 식이다. 공동 브랜드를 만들면 언제나 무임승차할 유인이 생겨나지만 공동체 의식, 평판에 기초한 간접 상호성은 그런 기회주의를 아예 막아 버린다.

 

라코(LACO) 이야기 by Hancock

실린더 처럼 생긴 건 모두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가 있다. 그가 독립해서 IMA라는 회사를 차린다. 이 기업은 자신의 기술로 우유 팩을 만드는 포장회사이다. 옆 동네 제약회사의 알약 병을 만들다 IMA로부터 독립해서 포장(packaging) 기계 회사를 만든다. 그는 IMA의 경쟁회사에도 자신의 기계를 판다. 이 동네에서 이런 행태는 전혀 비난 받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격려를 받는다. 그리고 이 회사는 Deco 서비스라는 글로벌 마케팅회사 소속이다. 공유재에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기업은 여전히 실린더처럼 생긴 물건은 모두 만든다. 주위에 다양한 업종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암묵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계 산업이 에밀리아 로마냐의 건강, 국제경쟁력을 지탱한다. 최종기업이 시키는대로, 폐쇄 네트워크 속에서 단지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는 역할만 하는 한국의 중소하청기업으로선 꿈도 꾸지 못하는 세계일지 모른다.

 

- 사회적 자본과 금융

 

* 에밀리아 로마냐의 유연전문화도 80년대 이래의 정보통신혁명이라는 파도를 맞는다. 포드주의는 FMS나 CNC와 같은 기술로 무장했고 금융기법의 발달에 힘입어 이들 중소기업을 집어삼켰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금융과 기술, 그리고 기업가 정신의 회오리 바람이었다.

 

에밀리아 로마냐도 신기술을 받아 들여야 했다. 이제 상호부조의 금융으로는 어림도 없고 은행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역설적으로 담보대출이 아닌 신용대출이라는 신금융의 바람직한 목표는 이 지역에서 달성됐다. 간접상호성, 평판이라는 암묵적 지식은 은행의 대출을 용이하게 해줬고 레가코프나 CNA, 그리고 지방 정부가 보증을 해 주었다. 또 다시 도덕적 해이. 즉 사후 기회주의가 문제가 되겠지만 이 지역은 신뢰의 사회이다. 90년대의 경제학 발전에 따라 유인체계(incentive system)가 정교해질수록 기회비용은 늘어나지만(그리고 그런 유인체계가 여지없이 실패한다는 건 작금의 세계금융위기가 증명했다) 이 지역에서는 그런 유인체계가 별로 필요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금융시장이 작동했다. 그래서 위기라는 바다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섬(차기 볼로냐 시장으로 유력한 ... 의 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위기인가, 진화인가?

 

 

여러 가지 실험

 

 

분명한 건 산업지구가 더 구조적이고 공식적인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산업지구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산업지구에서 기술지구로(technology district) - 에밀리아 로마냐의 아스터와 기계기술

 

지방정부의 합의된 계획 (negotiated planning, pact district)

 

cf)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 생산행위원회의 3개년 계획(1999-2001) (Bardi and Garibaldo, 2002)

 

농촌지역 개발계획

 

정부의 기술지구 정책과 아스터 - 에밀리아 로마냐 고유의 끈끈한 네트워크에 클러스터 이론이나 지역혁신체제이론에서 도출된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실험. 내가 아는 한 최신의 산업경제이론이 모두 결합된 계획. 물론 성공 여부는 계획에 달려있지 않다. 국가균형위의 사업도 그럴듯한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어서 각국 비교 문헌에서 보면 가장 우수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고 실패 요인도 명확했다. 단기간에 위에서부터 똑같은 클러스터를 전국에 동시에 만든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 결국 핵심은 두가지이다. 외부와의 네트워크 강화, 그리고 혁신 네트워크로의 전환이다. 여기서 금융과 정부의 역할은 강조될 수 밖에 없다. 과연 지난 20년간 경제학자들이 예언한 몰락을 훌륭하게 극복해 온 에밀리아 로마냐가 이번의 실험에도 성공할 것인가?

 

많은 학자들이 강조하는 바, 공식적이고 구조적인 네트워크로의 전환에 과연 성공할까? 아니 오히려 과거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훼손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회주의가 만연하는 이스라엘 유치원의 사례가 재현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물음에는 시간이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 1) 컨소시엄과 연합회의 활동 2) 대표기업의 성장 3) 중규모 기업의 혁신적 역할 4) 정부-기업-연구소의 혁신지구 사업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 모두 외부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내외의 기술을 도입하여 혁신을 촉진하는 데 맞춰져 있다.

 

- 신생 기술의 경우

 

아직 결과를 말하기에 이르다. 연구도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고 영어로 된 문헌은 더더구나 없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플라스틱부문을 연구한 파트루코교수는 산업의 동학(암묵적 지시의 축적과 전파, 지역 내의 스핀오프, 하청업체와 모기업 간의 기술 교류 등), 기관의 R&D 그리고 기술적 연관 간에 벌어지는 공간적, 역사적 상호작용이야말로 지역의 기술 지식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축적하며 배분하는 결정요소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기술체계 자체의 기원이며 발전이 된다고...

 

Emilian technological system in the plastics sector shows that the synchronic and diachronic localised interactions among industrial dynamics, institutional R&D efforts and technological interrelatedness are the determinants of the systematic production, accumulation and distribution of localised technological knowledge, in turn explaining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technology system itself.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문화가 원래 그러니까... 신뢰의 사회가 못할 게 없는가? 과연 대기업 위주로 산업지구가 개편되었을 때, 하청 단가 인하와 이에 대응하는 최저의 노력 지출이라는 기회주의가 여기서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까? 그걸 막는 끈끈한 네트워크가 이번에도 작동할 수 있을까?

 

이른바 “성공의 실패”라는 저주가 이번에도 신과 좌파의 연합 앞에서 무릎을 꿇을까?

 

* 삼중의 나선 (Triple Helix) - 대학, 연구소, 기업의 연계 강화

 

E. Rullani 1) 장기 진화 경로는 첫째 지역생산체인은 여러 지역과 연계된 다지역 네트워크로 발전할 것이다. 생활의 질, 풀 서비스 유연성, 문화적 모델, 감정적 경험이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가치 생산이 될 것이다.

 

- 진화/제도경제학의 답 - 관련된 분야의 다양성(related variety)을 북돋는 기술 도입과 전파

 

cf) 중소기업일반과 협동조합

* 레카코프와 CNA

* 일반적인 풍토

* 사회적 경제의 존재와 시장경제, 네트워크 경제 : 플러스 알파? 또는 가치와 규범의 구현자, 나아가서 본질, 변화의 동력

 

-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대기업의 1/3을 협동조합이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소비자협동조합의 성원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는 일반 자본주의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만난 정치가, 학자, 나아가서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에게 협동조합과 일반 기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예컨대 CNA와 레가코프는 협동조합형 중소기업에 대해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둘은 경쟁관계(담당자의 말)이다.

 

- 좌우파의 비판이 모두 가능하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맑스주의 비판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구글로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 하비(Harvey)와 같은 논지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축적 방식도 결국 자본주의 축적 양식의 한 변형이며 지역간 경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착취 강화)이 드러나도록 할 수 밖에 없다고... 또는 자기착취의 강화라고...

 

-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 재정은 대부분 의료에 들어간다. 우리가 주택 건설조합에서 보았듯이 필수재는 협동조합이 담당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80년대 이래의 풍조였던 민영화, 또는 민관합작(public private partnership)을 협동조합이 담당했다. 볼로냐 민영화의 2/3를 협동조합이 담당했을 정도이다. 사회서비스 협동조합의 네트워크도 눈여겨 볼 만하다.

 

 

에밀리아 모델의 한국 적용?

 

여러 면에서 우리와는 정반대

 

그러나 더디더라도 하나 하나 쌓아 나가야 한다.

 

동질적이라는 면에서 신뢰의 문화 구축 가능하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몇 안되는 나라이다. 평등의식도 강력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장만능의 논리와 각개약진이 시작되면서 급격하게 출혈경쟁으로 접어들었지만 이제 더 이상 로우로드를 채택해서는 살아갈 길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대한 요구, 뉴타운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등이 그 시초이다.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전략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다. 밑에서부터 쌓아나가지 않고 몇가기 성공한 클러스터의 요소를 도입한다고 해서 사회자본이 축적되지는 않는다. 다행히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도시들의 땅값도 떨어질 것이다.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중소기업에게 제공하면서 산업지구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하드웨어 면에서 공동 시설을 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는 폐허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중소기업의 천국을 만들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단 하나도 불가능한 실리콘밸리를 전국에 만들겠다는 욕망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에밀리아 로마냐처럼 중소기업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쪽이 훨씬 바람직하다. 동시에 온 나라를 클러스터 열풍에 휩싸이게 하기 보다는 지방정부가 기존 산업단지 등의 재활을 꾀하는 것이 낫다. 아마도 지금 평가하면 지역의 농업에 특화한 곳이 짭잘한 이익 속에서 클러스터의 꼴을 갖췄을 것이다. 중앙정부가 할 일은 하청단가 인하 등 불공정거래를 막고 터무니없이 부풀어 오른 땅 값을 낮추는 일이다.

 

더 구체적으로 여전히 제조업과 농업이 중요하다는 걸 에밀리아 로마냐는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소기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사업서비스이다. 미국의 컨설팅이나 금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중소기업에 꼭 필요한 말 그대로의 “리얼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이 무섭다면 더욱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배울 일이다. 미국을 흉내낸다고 중국을 뿌리칠 수 있을까? 미국에서도 실패한 일이 한국에서는 가능하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연전에 내가 쓴 “사회적 경제”의 논리가 실현되고 있는 곳이 에밀리아 로마냐이다. 내가 심취하고 있는 협력의 조건을 갖춘 곳이 또한 여기다. 인간답게 살면서, 동시에 적어도 자본주의적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곳을 찾는다면 에밀리아 로마냐를 볼 일이다.

 

<참고문헌>

 

에밀리아 로마냐 모델에 관한 핸콕 인터뷰. fttp://dept.kent.edu/oeoc/OEOCLibrary/

hancockinterviewmarch2006.

 

Alberti, F., The crisis of th industrial district of Como:A longitudinal analysis, 2004

 

Boschma, R. (2005), Proximity and innovation:A critical assessment, Regional Policies 39.

 

Brioshi et.al., From Industrial District to the District Group. An Insight into the Evolution of Local Capitalism in Italy, 2001

 

Cainelli et.al., Spatial agglomeration and business group:new evidence from industrial districts, 2001)

 

Camufo, A., Furlan, A., Grandinett, ㄲ.(2005) Knowledge and capabilities in subcontractor's evolution : the Italian case, MIT IPC working paper series.

 

Grando, A., Bruno, M., Vasconcellos, E., Baglieri, V., Technology innovation and business Organization in the Italian industrial districts, RAI, 2008

 

Gunta et al., Subcontracting in the Italian Economy, Labor Division, Firm Growth and the North-South Divide, MPRA, 2009

 

Perrow, C. Small-Firm network, Networks and Organizations, Havard Business School Press, 1992.

 

Pini et.al.,The underlying processes of incremental and radical innovation: An empirical analysis of the Reggio Emilia industrial district, 2005

 

Propris & Driffield, The Importance of Clusters for Spillovers from FDI and Technology Sourcing, Cambridge Economic Journal, 2006

 

Rinaldi, A.(2009) The rise of a district lead firm: the case of Wam(1968-2003), RECent working paper series.

 

Warthne, K., Heide, J., Opportunism in Interfirm Relationships:Forms, Outcomes, and Solutions, Journal of Marketing, 2000.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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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ms sale 2013.03.31 0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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