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경제평론가)


중국의 세대 교체


참여정부 초기 2년간 대통령의 “동북아 비서관”이었던 나는 중국을 자주 들락거렸다. 공식 대화 상대인 중앙부처의 차관급들은 의외로 젊었다.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나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당시에도 환율이 문제였는데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이들은 조목 조목 미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약간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자신감 뒤에 비웃음마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능히 알아챘을 것이다.

“참 대담한 생각인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 내가 비공식 자리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구상을 설명할 때 마다 장관급 인사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60대인 이들에게 “도광양회”는 애써서 실천해야 할 지침이 아니었다. “어찌 이렇게 다를까?” 이 수수께끼는 나중에 중국 정보기관 관계자를 만났을 때 풀렸다. 젊은 그들은 엘리트 중 엘리트 코스를 밟는 이른바 ‘태자당’ 출신일 것이며 40대에 차관이 되지 못하면 끝이라고 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이들이 57세의 시진핑부주석과 함께 2012년부터 중국을 이끌 것이다. 과연 새로운 국제질서가 순조롭게 자리잡도록 이들이 “화평굴기”를 이뤄 낼 수 있을까, 아니면 70년 전 처럼 세계를 격렬한 갈등 속으로 몰아 넣는 패권 대결로 치달을까? 당시나 지금이나 배경은 똑같이 세계금융위기이다. 그리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환율전쟁이 불붙고 있다.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와 중국 때리기


80년대 미국의 길거리에는 일본 자동차가 놓여 있었고 지나가는 시민이 1달러를 내고 자동차를 패는 놀이가 유행했다. 일본 때리기이다. 무역과 재정의 쌍둥이 적자가 일본의 환율 조작 때문이라는 광신이 전염병처럼 번졌을 때의 일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종교에 따르면 경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깎아야 하며 80년대의 소련이든 아니면 90년대 이후의 테러리스트든 자유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세력은 무력으로 제압해야 한다. 그 결과 재정적자가 쌓이면 채권을 많이 발행할 수 밖에 없고 이자율은 높아진다. 미국 내에서 채권이 소화되지 않는 정도에 이르면 외국 돈이 들어와야 한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많이지고 달러화는 절상된다. 미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무역적자가 커지면 그 보전을 위해서 다시 해외자본이 유입되어야 하고(미국에 투자를 하건, 미국은행에 저축을 하건, 아니면 미국의 채권을 사건) 미국 달러화는 또 다시 강해진다. 이렇듯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는 이자율과 환율을 매개로 서로 물고 물리면서 동반 상승했다.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와 전쟁을 신봉한 공화당 정부 때 줄곧 벌어진 일이다.


1985년 미국은 일본과 플라자협정을 맺었다. 엔화를 극적으로 절상시켜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금리도 낮춰서 미국으로 자금이 흐르는 상황은 유지되도록 했다. 그 효과가 나타난 것이 클린턴 8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오바마정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그림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미국은 중국 때리기를 시작했다.



MaKinnon, Schnabl, The Case for Stabilizing China's Excange Rate, China and World Economy, 2009에서 재인용

<그림> 중국과 일본의 대미국 무역수지



매키넌과 슈나블은 21세기 들어서 중국 때리기가 시작됐다고 보는데 글 첫머리의 일화가 바로 그 상황이었던 것이다. 85년의 플라자협정과 더불어 일본의 흑자는 10년 뒤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맞춰 중국의 무역흑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제 중국 때리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중국의 인민폐(위앤화)는 1994년까지 호환성이 없었고 94년부터 2003년까지는 달러에 연동한 고정환율제(달러페그제)였다. 그리고 2004년부터 매년 6% 정도씩 일정한 속도로 절상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중국의 무역흑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현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미국 내 중국 수입품들의 가격탄력성이 낮아서(즉 중국 수입품의 값이 올라도 그래도 싸기 때문에, 또는 워낙 제품이 좋아서 미국인들은 계속 중국 물건을 산다) 오히려 중국의 흑자가 늘어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버그스텐의 주장대로 아직 절상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며, 중국 기업이 매년 6%의 절상분을 생산성 향상이나 이윤축소로 계속 흡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인민폐를 ‘인위적으로’ 절상해야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된다고 주장할 강력한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버그스텐의 주장을 따른다 하더라도, 100% 이상 엔화 절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일본에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으며(<그림> 참조) 중국의 수출 감소를 다른 나라, 예컨대 베트남이나 멕시코의 제품이 메꿔서 미국의 적자는 변함이 없을 가능성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의 환율이 조작의 결과라고 말할 이론적 근거도 좀처럼 제시하기 힘들다. 어느 나라든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다른 나라는 괜찮고 유독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만 환율조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학계나 국제기관이 계산한 각종 균형 환율을 기준으로 삼아 인민폐를 20%-40% 절상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적자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자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절상해야 한다는 어거지가 아니라면 미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단지 이 모든 문제를 일으켰을 법한 마녀를 찾았고 유럽 등을 대상으로 사냥을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서 전 세계 통화를 모두 절상시키는 미국의 달러 증발은 왜 환율조작이 아닌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시행할 미국의 통화증발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대내적 정책이라고 주장한다면 중국의 환율정책 역시 대내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2003년까지 중국의 달러화 페그는 물가안정정책에 가까웠으며 그 이후에는 자국에 쌓여 있는 어마어마한 달러화 자산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누구에게나 위앤화 절상이 뻔하다면 외국으로부터 자본이 몰려 들어오고 중국의 민간 은행 역시 달러를 기피할 것이다. 인민폐가치가 치솟고 외환시장의 자기충족적 성격 때문에 “이건 아무래도 너무해”라는 선에 다다를 때까지 오버슈팅이 일어날 것이다. 또 어느 순간에는 썰물처럼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가 서 민간의 달러표시 부채가 많은 나라의 경우 이번에는 외환위기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는 인민폐가 국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겪는 현상으로 한국 등 흑자국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에 외환보유고를 한없이 쌓아둘 수 밖에 없다.



문제의 장기적인, 그러나 올바른 해결책



근본적으로 미국의 경상적자가 쌓이는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 더 쓰기 때문이고 이 돈을 아시아의 흑자국들이 미국 재무성 증권을 사거나 미국에 투자하는 형태로 보전해 줬다. 결국 미국의 순저축(저축-투자)이 마이너스인 것이 문제이고 반대로 중국 등 아시아의 순저축은 플러스인 것이 불균형의 원인인 셈이다. 또 하나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IMF 굴욕’을 방지하려는 강한 유인을 가지고 있다. 만일 아시아의 흑자국들이 자국 통화를 국제거래에 사용할 수 있다면 현재와 같이 거대한 외환보유고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수익성 있는 투자기회를 마다하고 이자가 없거나 낮은 달러 또는 재무성 증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 손해이기 때문이다.


정의 상 제로섬 게임인 환율전쟁에서는 어느 나라의 굴복 외에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므로(치킨게임의 균형이 그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국 내부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쪽이 올바른 길이다. 중국의 가계소비는 GDP의 35%에 불과하며 미국의 민간소비는 GDP의 70%에 이른다. 무역과 소득에 관한 항등식은 순저축의 차이가 곧바로 무역 적자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최근 중국의 전인대회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듯 하다. 다만 1인당 소득 4000달러에서 한국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처럼 중국의 복지를 대폭 확장하는 정책을 제시해서 다른 나라들을 확신시켜야 할 것이다. 만일 미래의 불안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면 중국민이 지금처럼 저축율 50%를 상회할만큼 내핍 생활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시아의 수출지상주의는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고 장기적으로 유지불가능하다. 외환보유고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 만큼 본원통화(M1)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통화승수만큼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꿈틀거릴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불태화정책을 쓴다면(즉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서 통화를 환수하면) 수출부문에는 돈이 많고 일반의 돈은 줄어드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한다. 과잉생산능력이 우려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남아도는 돈은 부동산이나 증시로 몰려갈 것이다. 자산 버블은 일반 국민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저축을 늘릴 것이다. 다시 무역흑자는 확대된다. 국내의 자산 버블을 제거하는 자산재분배정책, 그리고 의료보장성을 확충하는 등 복지의 확대는 빈부격차의 해소를 넘어서 현재의 통상마찰을 해결하는 올바른 길이다.


한편 아시아국가들이 외환보유고에 집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통화불일치의 문제 때문이다. 만일 기축통화가 미국의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면, 또한 투기적 자본이동을 규제할 수 있다면 통화불일치에 따른 환리스크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수출 증대 유인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지금 새로운 국제통화체제 구상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이다. 중국의 저우샤오찬 인민은행 총재가 작년에 제의한 SDR 기축통화론이나 스티글리츠가 완화된 형태로 제의한 케인즈의 국제통화 구상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케인즈의 국제청산동맹안이 당시 거대 적자국이었던 영국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흑자국과 적자국이 동시에 책임을 지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야말로 미국이 스스로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패권국가가 치러야 할 비용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는 방안이다. 또한 국제금융, 그리고 국제통화의 모든 문제가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부터 버려야 미국이 살아날 길이 열린다. 한마디로 금융자본의 이익에 의존하는 경제란 이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신세대 중국 관료들은 “도광양회”에 익숙한 중국 정치가나 친미 일본 관료들과 전혀 다르다. 이들은 미국 경제학의 허점을 훤히 꿰뚫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압력으로 플라자협정과 같은 일시적 미봉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헛된 꿈을 하루 빨리 버리고 장기적으로 올바른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국내외 금융자본의 이동속도를 늦추는 금융거래세, 그리고 새로운 기축통화에 기초한 국제통화체제가 그것이다.


(시사인 게재)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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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ms sale 2013.04.16 0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거아니,Topics related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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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너밖에없어서,Topics related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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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사랑하는게아니라,널사랑하니까,Topics related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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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너밖에없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