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경제 평론가)


3) 이론부재의 위기


현재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여기 소개한 것들은 단지 몇 가지의 단편일 뿐이다.



앞의 두 절에서 잠깐씩 소개가 됐지만 다양한 수준과 영역에서 이론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자신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무런 문제없을 것이라고 강변했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자 수많은 시장주의자들이 지금 입을 다물고 있지만, 특히 시스템을 개혁하는 정책이 구체적으로 제기되자 이들은 반대 논거를 제출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효율적 자본시장이론이나 금융시장 자유화/개방론, 글로벌 불균형 불가피론 등에 관한 주류경제학의 연구는 도서관 몇 개를 채울 정도로 쌓여 있다.



(참고)


* 글로벌 불균형이 점점 더 커지면 언젠가는 각국이 달러를 내다 팔 위험(1971년 닉슨 쇼크는 바로 금-달러 본위제 하에서 이 문제가 터진 데 대한 대응이었다)에 대해서 퍼거슨, 쿠퍼 등은 차이메리카(chimerica)론(양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공동 이익이다), 경로의존성(달러를 보유하는 관행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대안부재론(유로도 달러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등을 만들어 이러한 불균형이 지속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이러한 연구들이 버블의 존재를 부정하고 규제완화의 문제를 호도했다. 예컨대 그린스펀은 부채와 투기의 증가는 금융시장 혁신의 결과일 뿐이며 혁명적인 위험관리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속가능한 구조적 변화라고 주장했다.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만 그것은 과거의 눈(경제학)으로 보기 때문이며 새로운 구조(신경제) 하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오히려 미국경제가 강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런 류의 주장은 글로벌 불균형에 대해서도 쿠퍼 등에 의해 여러 형태로 변주됐다.

 

2009년 미국은 7-80년대에 오랜 앙숙이던 통화주의와 케인즈주의의 두 위기 처방책을 모두 강력하게 시행했다.



2008년 9월 이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정책은 기실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대공황 연구에 나온 처방전, 그리고 버냉키가 대공황 당시 Fed의 오류를 프리드먼에게 사과하고 “이제 우리는 당신(프리드먼) 덕분에 더 이상 그런 위기를 맞지 않게 됐다”고 상찬한 그 처방전을 그대로 따랐다.


 

故 밀턴 프리드먼 전 시카고 대학 교수 (AP연합뉴스 제공)




(참고로
위 연설은 프리드먼 90세 생일 축하연에서 한 것이다. 한편 현대 통화주의의 핵심은 통화정책은 강력하므로 정부의 자의가 아니라 준칙에 따라 공급해야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의 분석을 그대로 따르면 대공황은 순수하게 금융 현상이었고 따라서 이에 대한 처방은 강력한 통화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버냉키 역시 이 이론을 정확히 따르고 있는데 정작 이들을 좌절시킨 것은 미국경제가 이미 케인즈가 70여년 전에 갈파한 것처럼 ‘축장성향’(propensity to hoard)의 급등에 따른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동성의 무한한 공급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오바마는 무려 8500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지출을 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의 처방전이다.



그러나 2010년 현재 이들 정책은 패닉을 막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경제를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전 세계적 재정정책에도 불구하고 투자승수는 작동하지 않았고 금융완화정책은 환율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가장 분명한 것은 국내 금융제도 뿐 아니라 국제금융시스템을 만들 때 금과옥조로 삼았던 효율적 자본시장 이론, 그리고 자본시장 개방의 논리가 파산했다는 사실이다.



자본시장의 각종 변수, 환율이나 금리가 재빨리 오르내려서 균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주기적 금융위기라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낳았고 그 결과 세계적 불평등이 초래되었다. IMF는 효율적 자본시장의 논리에 따라 위기를 맞은 나라에게 오히려 자본시장개방과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이 위기를 맞자 이들은 정반대의 처방을 했다. 자국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이론의 파산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효율적 자본시장이론으로 무장한 주주자본주의는 극히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장기의 체제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뻔히 눈에 보이는 버블 자체나 글로벌 불균형을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자신 있게 부정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적 자본시장 이론이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바벨탑이 뒤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더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강구하기 위한 이론도 뚜렷하지 않다.

 

금융위기가 어떻게 실물위기로 전이되느냐, 즉 민스키가 제기한 금융불안정성이 불황으로 발전할 조건에 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예컨대 부채-불황(debt deflation)의 전형이랄 수 있는 일본식 장기복합불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에 관해서도 뚜렷한 답이 없는 상태이다. 부채불황은 어빙 피셔가 대공황기에 이름 지은 것으로, 과다 부채가 디플레이션을 낳고 자산 가격이 떨어짐에 따라 실질부채가 커져서(빚을 갚기 위해 팔아야 할 자산의 양이 많아진다) 다시 경기침체를 악화시키는 상황을 말한다.

 

심지어 버냉키는 버블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며 따라서 “자산 가격을 잡기 위해 통화정책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2006년에도 버냉키는 전반적으로 주택가격의 상승은 경제 펀더멘털이 좋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반면 스티글리츠는 Fed가 통화가치의 안정이라는 좁은 목표를 넘어서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제금융(bail out)의 방식을 놓고 벌어진 논쟁은 결국 위기의 공포에 밀려 (부분)국유화로 정리됐다. 탈레브 분포(taleb distribution)와 시가평가(mark to market accounting)가 겹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대형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 탈레브분포는 높은 확률로 약간의 이익을 보는 반면 낮은 확률로 거대한 손실을 보는 상황이어서 기대이익이 작은 음수(예컨대 -0.2)인 분포를 말한다. 거대한 손실에 직접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 ‘약간의 이익’을 보기 위해 위험한 행동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펀드 매니저가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는 무수한 거래를 통해 수수료를 챙기고 엄청난 사건이 터질 때는 다만 사직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하는 현재 상황도 이런 분포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금융제도가 이런 분포를 취한다면 금융위기는 언제나 재발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블랙숄즈 공식으로 유명한 숄즈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갓길 운행 등 교통위반으로 조금 더 빨리 가는 사소한 이익을 보는 데 익숙해진 운전자가 결국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헤지 펀드 등의 사업방식은 대규모 금융 사고를 일으키도록 되어 있다.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했지만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이런 오류를 내장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시정할 것인가는 답이 없다.

 

이론적 문제는 사실 미시경제학의 기본 가정에까지 이른다.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가, 적어도 장기적인 이해득실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느냐 등 행동경제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사실 미시경제학의 기초를 허물어뜨렸다.



글로벌 불균형 문제처럼 너무 방대하고 정치적인 문제라서 경제학이 정확한 답을 내 놓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경제학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말하자면 쿤이 이야기한 정상과학으로서 경제학은 생명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이 밝힌 여러 문제를 상기하라. 현재 번역된 책으로는 <승자의 저주>(이음)가 많은 역설적 현상을 담고 있으며 더 원리적인 것으로는 <상식 밖의 경제학>(청림출판)이 참조할 만하다.)


* 세카이지(2009.4, 790호 별책) 게재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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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ke air max 90 2013.03.24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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