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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6 사생아의 비밀


한겨레 어딘가(이코노미 인사이트 같은데...)의 부탁으로 자기 서평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부쳐야할지 몰라 기억 속의 기자에게 보냈더니 거기가 아니랍니다. 그 후에도 독촉이 없어서 그냥 허공에 떠버린 글입니다. 이번에 나온 책,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제가 정한 제목이 아니라 길고 어렵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생아 같다”

 


책이 도착했다. 연구원들의 축하말에 섞여든 내 혼잣말이다. 

작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연구원으로 출판사(상상너머)에서 찾아왔다. 분량이 꽤 되는 교정지를 들고서. 아뿔싸, 프레시안 사회교양원에서 한 강연을 책 한권 분량의 원고로 만들었단다.

프레시안의 강연을 책으로 만들어도 되느냐는 질문에 선뜻 응한 건 그 이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강연이 한 데 묶인 “80이 20에 지배당하는 사회”(철수와 영희)라든가 “자존심”(한겨레출판사), “거꾸로 희망이다”(시사인) 등이 그런 책이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 사이에 한 꼭지 들어가는 건 자체로 영광이기도 하고, 동시에 출판사나 독자에 대한 내 책임은 바닷가 모래알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두 번에 걸친 네 시간의 강연 가지고 책 한권이 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어쩌랴. 승낙을 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즉흥이 반 이상이었던 강연을 정리한 출판사의 노고를 어떻게 한마디로 물거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강연록의 한 꼭지, 공저의 논문 하나로 내 이름이 책에 나온 적은 꽤 있지만 표지에 홀로 등장하기는 처음이다. 

경제학자 스라파가 100쪽 밖에 안되는 책 딱 한권(“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만 남겼다는 신화는 20대 얼뜨기 경제학도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그런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으니 남의 논문이나 책에 얼마나 가혹했겠는가? 서정주 식으로 말하자면 8할이 질투였을 그런 객기 탓에 난 마감이 없는 글은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박사 학위마저 그랬으니(석사학위도 7년만에 지도교수의 강권 덕에 냈다) 내 이름으로 된 단행본이 나올 리 없다.

선인세를 3년 전에 받고도 아직 시작도 못한 “딸과 함께 쓴 경제학”도 마찬가지다(출판사 “레디앙”에 정말, 정말 미안하다). 해서 “사생아 같다”는 말이 흘러 나왔을게다.

“세박자 경제론”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심상정 의원은 “세박자 경제론”이라는 걸 내 놓았다.

현실의 경제는 시장경제, 공공경제(public economy), 사회경제(social economy, 당시에는 풀뿌리 경제라고 불렀다)의 세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장경제는 경쟁(또는 등가교환)을 통해 효율성을 주 목표로 하고 공공경제는 재분배를 통해 평등을 달성해야 하고 사회경제는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바탕으로 연대(solidarity)를 이뤄내야 한다. 

각각 시장-국가-시민사회라는 3분론에 들어 맞고 프랑스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에 해당되니 꽤 그럴 듯 보이지 않는가? 

또 당시에는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지만 폴라니의 세가지 인간의 교류양식(교환, 재분배, 선물)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사회경제라는 개념은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도 않았고, 9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논의가 됐지만 엄밀한 이론적 정의에 합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스스로 그 이론적 근거를 찾아야 했는데 1년여 고투한 결과가 ‘사회경제론’(“리얼진보”, 2010)이었다. 엉성하기 그지 없지만 아마도 세계 최초로(^^) 사회경제의 근거를 “신뢰와 협력”이라는 인간 본성에서 찾은 글일 것이다. 

사회경제라는 역사적 실체의 이론적 근거, 80년대 이래의 대규모실업과 복지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사용되어 온 그 개념의 근거를 진화생물학/심리학,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의 최근 논의에서 찾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수준이었고, 최정규교수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에서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논문을 읽었지만한달에도 수백, 수천건 논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논의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신뢰와 협동”이 불가결한 것도 또한 엄연한 사실이고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생협과 사회적 기업, 그리고 공동체운동이 활성화되었다. 

또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복지가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내 단 하나의 글을 본 관련 단체들이 강연을 요청했고 이제 이 주제로 강연을 한 것만도 수백회에 이를 것이다.

사회적 딜레마와 협동

인간의 본성이라니, 자기 내면만 들여다 보면 되니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지만 동서고금에 걸쳐 온갖 이론이 다 등장할 정도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주제다. 

예컨대 “인간은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쉽게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행히 게임이론, 특히 사회딜레마 게임(social dilemma game,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게임, 치킨게임 세 개가 있다)은 직관적으로 문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짧은 강연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집중하는 데 그만이었다.

사회딜레마란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바꿔 말해서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한다.

이는 인간이 자기 이익만 추구할 때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아담스미스의 직관, “보이지 않는 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한 만능의 시장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사회딜레마이다. 현재의 세계금융위기, 그리고 곧 닥쳐올 생태위기도 물론 이 딜레마에 해당한다.

 
이 분야의 연구는 일천하지만 어쨌든 답은 협동(cooperation)으로 결론 났고 어떤 조건에서 협동이 가능한가를 밝히는 것이 현재의 핵심 과제이다. 

노박(Nowak)의 수학에 의한 논리적 결론이든, 아니면 전 세계 공유지의 역사를 천착한 오스트롬의 결론이든 마찬가지다. 

한참 공부하고 나서야 인류가 여태 멸망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한 비결은 협동이었고 그것은 또한 선현들의 지혜에 다름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답은 뻔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딜레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이다. 경제침체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 나라들이 제 시간 안에 기후 변화문제의 해법에 동의할 것 같지도 않다. 

해서 “위기의 해법으로서의 협동”은 적어도 10-20년간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이 책에 장점이 있다면 바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밖에 없을 것이다. 

 
내 혼잣말을 들은 한 연구원이 위로(?)를 했다. 

 
“그런 애가 효도하는 법이에요”. 

정말 그렇게 돼서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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