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정리하기 위해 내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한글파일로 저장돼 있는 글들을 순서대로... 처음엔 요약하다가 나중엔 부분 부분 복사해서 옮겼는데 한글로 무려 21쪽이나 되는군요. 신문 등에 기고한 60편이 넘으니 월 5편 이상 쓴 셈이네요. 너무 길어서 파일로 첨부합니다.


경제분야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실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13년 정태인 경제시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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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시간제 근로자를 두고 한바탕 논쟁이다. 한마디 거든다.

유럽에서 파트 타임을 둘러싸고 서로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고 있을 때, 독일의 Gerhart Bosch라는 유명한 학자가 한 말이 있다. 파트 타임이 무슨 "비정상적인 노동"인 것 처럼 전제하고 얘기하는데, 여성 노동자 절반 이상이 파트 타임 일을 하는 세상에서 하루 꼬박 꼬박 8시간씩 일하는 전일제 노동자가 비정상 아니냐고 따졌다. 네델란드를 두고 한 말이다. 세계 최초로 이른바 "파트 타임 국가", 네델란드다.

자발적 파트타임 근로자인 에바 파스코빈스가 암스테르담의 직장에서 컴퓨터로 해상화물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한국에서 고용율을 70%로 올리려면, 여성 고용율을 그 정도 수준으로 올려야 할텐데, 이런 점에서 보자면, 네델란드가 교과서다. 1995년 쯤에 50%을 약간 넘어서던 고용율을 2011년에는 딱 70%로 만들었다. 파트 타임이 꾸준히 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60% 이상의 여성 노동자가 파트 타임을 한다. 사실 이 추세는 80년대부터 지속된 것이다. 1990년대 이후로 상승세를 탄 거다. 이런 게 가능하려면, 물론 "인식"의 전환이 있었겠다. 파트 타임도 좋은 일자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겠다.


한때 파트 타임의 지평을 연 것으로 자부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유럽 연합 국가에서는 한때 파트 타임의 쌍두마차였다. 1995년 경에 이미 여성노동자의 40% 이상이 파트 타임이었다. 여성 고용율도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그 이후 15년 동안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영국에서는 파트 타임이 거의 늘지 않았다. 오히려 줄었다. 여성 고용율이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 미미해서, 이제 네델란드에 "통한의 역전"을 허용했다. 어이 된 것인가? 영국에서는 "인식의 대전환"에서 실패한 것일까?




해답은 파트 타임 일자리의 질에 있다. 다 제쳐두고, 임금만 보자. 네델란드의 경우 풀타임과 파트타임의 시간당 임금을 비교해 보면, 약 10% 차이가 난다. 교육수준이나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하면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영국의 경우는? 약 30% 차이가 난다. 대놓고, 파트타임을 차별한다는 거다. 하지만, 네델란드에서는 파트 타임에 대한 차별을 강하게 규제한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네델란드에서는 풀타임 노동자가 필요하면 파트 타임으로 전환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노동법적 권리다. 그래서 지난 15년 동안 파트 타임도 늘고 풀타임도 늘었다. 풀타임이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전일제로 일하다가 육아 등의 필요가 있으면 파트 타임도 일하다가 다시 풀타임으로 복귀할 수 있다. 고용 보장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파트 타임과 풀타임 선택의 문제는,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 다양한 고용형태를 조합해 갈건가 하는, 일종의 인생 설계의 문제다.


물론 영국에서 이런 제도가 있다. 한데, 영국식으로다가 매우 애매하다. 노동자가 파트 타임 전환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사용주가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국의 전통적인 "자발주의 (voluntarism)"이다. 여성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파트 타임이 늘어나고, 이에 대한 요구도 늘어나서 "대세"가 된다면, 그 옛날의 진부한 인식에서 벗어나는 게 맞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인식의 전환은 기업에도 적용된다. 사실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파트 타임이 단지 노동비용 절감 수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다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이런 대전제가 이루어지게 하는 게 정책이고 법률적 제도 정비겠다. 그래서 정부의 "인식" 전환이 두번째다. 그러면, 시민과 노동자의 "인식"은 쉽게 바뀐다. 차별없이 유연하게 일하고 먹고 살 만큼 버는 건, 이미 노동사회가 수세기 동안 원해 온 거다. 


괜히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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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내가 생각하는 인도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민주적인 정치제도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정치분야로 들어서지 않으려는 경향입니다. 그들은 정치를 떳떳하지 못한 직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떤 범위에서는 변하고 있지만 훨씬 더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인도에서 민주주의의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참여가 요구됩니다"

샤이크 엮음, 김병철 옮김, "역사로서의 현재", p37

그런 지식인으로 누가 떠 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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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 이 요약은 새사연 세미나 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센은 제가 존경하는 경제학자 중 한명입니다. 주가 복사되지 않아서 한글파일, 그리고 논문 원본, 센의 스승인 애로우의 평가 논문도 첨부합니다.





사회적 선택의 가능성

 

Sen,1999,The Possibility of Social Choice, American Economic Review, 89.

 

2011.4.18

 

o 사회적 선택의 문제

- 사회에 관한 일관된 총합 판단(aggregate judgement)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 “사회복지”, “공익”, “총 빈곤” 등에 관해 “사회는 이 정책보다 저 정책을 선호한다”, “사회가 저쪽보다 이쪽을 택해야 한다” “이게 사회적으로 올바른가?” “사람 수 만큼 많은 선호를 대표하는 사회적 선택이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

* 사회 내 개인의 다양한 선호, 관심, 곤경이 총합 판단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 즉 사회적 판단과 그룹 결정을, 개인의 견해와 이익에 연결시키는 문제

 

cf. 사회딜레마 - 명시적으로 개별 이익과 전체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사회적 선택 - 충돌 이전에 개별 이익을 집계(aggregation)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I. 사회적 선택 이론

 

- 학설(decipline)로서의 사회적 선택이론에 대한 일반적이고 근본적 문제 검토

* 애로우(1951)의 공식화 - 여러 사회적 가능성에 대한 평가와 선택에 관한 일반 접근

* 이 중 언제 다수결이 단일하고 일관된 결정을 만들어내는가?

* 다양한 구성원의 분산된 이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우리는 전체로서의 사회가 잘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가?

*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곤경과 불행에 비춰 볼 때 총빈곤(aggregate poverty)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를 적절히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 자연환경이나 질병으로부터의 안전과 같은 공공재의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 그 자체로 사회적 선택 이론의 일부는 아니지만 집단결정(기아와 배고픔의 원인과 예방, 성 불평등의 형태와 결과 등)에 관한 연구

 

II. 사회적 선택 이론의 기원과 건설적 비관론

 

o 사회적 선택이론의 역사

 

- 아리스토텔레스와 카우틸라(인도), 각각 “정치와 경제”라는 제목의 책에서 사회적 선택의 건설적 가능성 탐구

 

- 프랑스 혁명 시기의 보르다와 콩도르세, 투표와 관련 과정에 관한 사회적 선택을 수학적 방식으로 정식화 - “사회적 질서의 이성적 구성”

* 초기 이론은 사회적 선택의 불안정성과 자의성을 극복하는 데 초점 - 모든 구성원의 선호와 이해를 반영하는, 집단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결정의 체계

* 그러나 비관적 결론 도출. 대표적인 예가 콩도르세의 역설

 

- 근대 사회적 선택 이론

* 유럽의 많은 지성들, 예컨대 루이스 캐롤 등이 이 문제에 지속적 관심

* 애로우(1951) 역시 집단 결정의 어려움과 비일관성에 몰두.

: 불가능성 정리(1950, 51. 63, 공식적으로는 “일반적 가능성 정리”) - “가장 온건한 그럴듯한(reasonable) 조건조차 동시에 만족시키는 사회적선택과정은 불가능하다”. 오직 독재만 비일관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데 그것은 1) 정치에서는 참여적 결정의 극단적 희생, 2) 후생경제학에서는 다양한 모집단의 이질적 이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총체적으로(aggregately) 무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

* 결국 사회적 평가, 후생경제학의 계산, 검증의 통계학이 자의적이거나 치유불가능한 독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

 

- 이후 광범하고 강렬한 관심은 애로우의 불가능성정리가 건설적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반증

 

결국 우리가 무엇을 민심으로, 또는 올바른 것으로 삼을 것인가의 기준 문제 : 현재의 경제학 체계로는 해답이 없을 수 밖에 없고 기타의 학문, 또는 운동으로는 자의적일 수 밖에 없는... -> 애로우의 크나큰 업적은 사회적 선택(직접적으로는 투표 방식)의 여러 대안을 동시에 비교하고 검토할 수 있는 일반 틀을 만들었다는 것... 그런데 그런 상식적인 기준도 충족할 수 없다는 것(개별과 전체에 관한 존재와 인식에 걸친 철학적 문제였기 때문에...)

 

III.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과 부고(訃告)

 

o 불가능성정리와 후생경제학

 

- 보몰, 후생경제학의 주요성에 대한 언급은 부고와 유사하다고 단언

* 애로우의 비관론은 이론으로서의 후생경제학에 파멸적 영향을 미쳤을까?

 

- 후생경제학은 에지워스, 마샬, 피구와 같은 공리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정립

* 보르다나 콩도르세보다 벤담의 영향, 따라서 애로우의 투표와 관련된 사회적 선택이론과는 다른 경로를 밟음.

* 벤담의 관심은 사회 전체의 총효용. 즉 분배에는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윤리적, 정치적 중요성에 대한 정보 결여. cf. 후생경제학 제1,2명제가 이런 사고방식을 합리화하는 정식

* 그러나 이들이 상이한 사람들의 이익과 손실을 비교한다는 관점 자체는 중요

* 1930년대 공리주의가 분배문제를 경시한다는 비판이 일었으나 로빈스(논리 실증주의)의 “효용의 개인간 비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감정의 공약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박으로 논쟁 끝. 이 사고는 현재의 주류경제학에서도 강력한 영향. 효용이론 내에서는 서수적 효용론으로 귀결.

: 이렇게 공리주의적 후생경제학의 인식론적 기초는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후생경제학은 “사회적 상태에 대한 각자의 상이한 순서매김(ordering, 서수적 효용)에 기초” -> 사회적 선택이 의존할 수 있는 정보적 기초는 더욱 협애화

* 그런데 이런 방식(개인간 비교 없이 각자의 서수적 효용에 의존)은 콩도르세가 지적한 투표의 문제(콩도르세 패러독스)와 분석적으로 유사

* 1940년대 이후 “신후생경제학”은 “파레토 비교”라는 하나의 기준만을 사용 -> 대부분의 후생경제학은 “파레토 효율성”만 사회적 선택의 판단 기준으로 사용(모든 표준 경제학교과서를 보라)

 

o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

- 사회적 선택이론 : 사회적 후생의 판단에는 더 나아간 판단 기준이 필요. 여기서 애로우의 사회적 선택이론 정식화 출발 : 개인의 선호 집합을 사회적 선호로 바꾸는 원리(=사회적 후생함수)

- 애로우의 온건한 조건(=공리, axiom)과 불가능성 정리

* 1) 파레토 효율성 2) 비독재 3) 독립성(무관한 변수에 의해 선호가 바뀌지 않는다, 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IIA) 4) 무제한 영역(unresticted domain, 사회적 선호는 완전한 순서매김이어야 하며 이행성을 가져야 한다)

* 이 네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 보통 증명은 독재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으나 그 나름의 새로운 문제 발생

-> 비관론의 유포

 

IV. 형식적(formal, 수학적) 방법의 상보성(complementarity)와 비형식적 추론

 

- 사회적 선택이론에서 사용하는 수학적(형식적) 기법이 현실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

* 다양한 선호를 집계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므로 수학을 쓰지 않으면 심각한 추론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

*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이 영역의 ‘전거(典據, locus classicus)'이며 상식이나 비형식적 추론으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

-> “비형식적 직관은 중요하지만 형식적 연구를 대체할 수 없다”(=직관과 수학의 상보성)

 

- 이런 주장이 사회적 선택이론의 (올바른) 사용에 광범한 공공의 의사소통(public communication, 하버마스의 공공성)이 필수적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

* 형식적 분석과 비형식적 분석을 연결하는 것, 그리고 투명한 검증은 사회적 선택이론에 사활적으로 중요

* 나에게 이런 결합(정보 확장’, ‘부분 비교’, ‘부분 서열’과 같은 형식적 과제와 현실적 관심의 결합)은 평생의 작업. 이것이 센(과 애로우, 그리고 스티글리츠)의 다른 경제학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

 

V.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근접성

 

- 불가능성 정리의 성격과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성과 불가능성 간의 일반적 관계에 관심을 가져야 함.

* 사회적 선택과 관련된 하나의 공리(公理) 집합이 충족된다면 몇 개의 가능한 선택과정(예컨대 선거방식, 사회적 후생함수)이 존재할 것.

* 이 중 하나의 과정만을 남기기 위해서는 추가 공리를 도입해야 할 것. 즉 우리는 불가능성을 향해서 대안의 가능성들을 줄여 나가다가 모든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기 직전, 오로지 하나의 선택만 남았을 때 멈춰야 함.

 

- 따라서 사회적 선택의 특정 방식에 대한 완전한 공리적 결정은 불가능성의 바로 이웃에 위치할 것.

* 따라서 불가능성이라는 결과는 공리적 추론에 의한 사회적 선택이론에 도달하는 (유일하게) 건설적인 길이고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 결과도 그러했음.

* 따라서 초점을 맞추어야 할 문제는 사용할 공리의 범위와 그럴듯함(reasonableness)임.

 

VI. 다수결과 일관성

 

- 애로우의 “무제한 영역”조건은 사회적 선택과정이 모든 가능한 개인 선호 클러스터에 대해 유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 그러나 어떤 선호 프로필들은 사회적 결정의 비일관성과 비응집성을 나타내고 다른 프로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명백

* 애로우는 (그런 사회적 선택과정의 하나인) 다수결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제한을 탐구 -> 일관성 있는 다수결의 필요충분조건은 실제로 확인되었고(Sen & Pattanaik, 1969) 이후 더 완화된 조건들을 찾았지만 이런 조건들은 현실 상황에서 쉽게 위반되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 필요

 

- 사회적 선택 문제의 유형에 걸맞은 사회적 선택 방식이 존재할 것

* 분배문제가 핵심이고 사람들이 자기 몫을 극대화할 때 다수결은 완전히 비일관적

* 그러나 나라 전체의 분노를 야기한 문제(예컨대 인재로서의 기아)에 관해서는 다수결이 상당히 이성적이고 완전히 일관될 것(따라서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에서는 기아가 발생하지 않음)

* 사람들이 복합적인 의제와 소통(의제의 교환, 형평이나 정의에 대한 태도를 포함한)을 가진 정당에 모일 때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인 비일관성 때문에라도 더 일관된 결정 방식을 찾을 필요 즉 사회적 선택이론의 발전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 (후생경제학의 중심과제인 분배문제 해결에 비일관성을 보이고 있지만) 투표규칙(voting rule)은 후생경제학 영역의 사회적 선택 문제를 다룰 때 그럴듯한 접근방법인가? 엉뚱한 데서 헤매는 건 아닐까? 어쨌든 지금 우리는 복지라는 중요한 분배문제를 선거로 해결하려 하고 있음. 이런 접근에 대해 기존 이론의 결론을 살펴 볼 필요!!

 

VII. 정보의 확장과 후생경제학

 

o 투표규칙 연구의 한계

 

- 투표에 기초한 결정과정은 선거, 국민투표, 위원회 결정 같은 사회적 선택문제에는 확실히 유효

cf) 그러나 투표와 실제 선호가 일치하는가는 심각한 문제 (Dutta, 1997)

 

- 투표가 유효하지 않은 다른 사회적 선택에서는 사회적 후생의 집계 지표가 필요

* 투표는 적극적 참여를 필요로 하지만(흑인들의 선거 참여율이 낮으면 그들의 선호는 반영되지 않지만) 합리적인 사회 후생 판단에는 주장이 강하지 않은 이들의 이해가 무시되어서는 안됨.

* 투표에 참여하더라도 후생경제학적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중요한 정보 필요. 즉 분배문제, 바로 상이한 사람들의 웰빙의 비교를 위해서는 투표규칙을 넘어선 연구 필요

* 애로우는 40년대 경제학의 합의에 따라 개인간 비교를 배제(“개인간 효용 비교는 무의미하다”1951). 애로우는 사회선택과정을 투표규칙으로 한정했고 불가능성이라는 결과는 이런 종류의 규칙에 관계되어 있음.

 

o 개인간 비교

 

- 건설적 사회적 선택이론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 개인간 비교를 원한다면 두 중요한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함

1) 수많은 사람이 관여된 개인간 비교와 같은 복잡한 과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혹시 혼란만 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분석적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

2) 분석의 결과와 실천적 이용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실천적일 뿐 아니라 인식론적 문제.

 

- 부분 비교

* 첫 번째 문제란 개인간 비교의 정보 기초(즉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기준과 자료)를 재검토하는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질적인 대응 필요

* 다양한 유형의 개인간 비교는 완전히 공리화할 수 있으며 사회적 선택 과정에 정확히 통합할 수 있음(일반화된 체계 안에서 “불변 조건”을 사용함으로써, 수학적으로는 “사회후생 functional”을 구축함으로써).

* 더구나 개인간 비교는 전부 또는 전무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느 정도(모든 비교, 모든 유형의 비교, 엄청난 정확성 없이)의 비교만 필요로 함. ex) 로마 화재를 즐긴 네로의 효용과 로마시민의 상실된 효용을 비교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효용을 엄밀하게 1:1로 비교할 필요는 없다. -> “부분 비교”만 필요하며 부분비교의 상이한 범위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형태를 취할 수 있음(부정확성의 정확한 범위를 확정).

* 특정한 사회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세련된 개인간 비교를 할 필요는 일반적으로 없음. 사회적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제한적 수준의 부분비교가 적절한 경우가 매우 많음.

 

- 커다란 분석적 질문 : 개인간 비교를 체계적으로 사용하면 사회적 선택의 가능성이 얼마나 커질 것인가?

* 예컨대 애로우의 불가능성은 없어지는가? yes 추가적인 정보의 사용으로 불가능성을 벗어나기에 충분한 차별이 가능해짐.

* 서수적 효용의 개인 비교만 가능해도 불가능성 정리에서 벗어남. 즉 x 상태의 A가 y 상태의 B보다 불행하다면 우리는 x를 선택해야 함(Arrow, 1999)

* 때로 특정 유형의 개인비교에는 기수적 효용이 필요하지만 훨씬 약한 형태의 비교가능성도 애로우의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일관된 사회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며 뿐만 아니라 분배이슈에 민감하게 만들 수 있음.

 

- 분배 이슈와 불평등

* 분배 이슈를 다루려면 투표규칙의 연구범위를 넘어서야 하며 공리주의는 아주 중요한 의미에서 분배에 무차별적임.

* 개인간 비교는 공공 의사결정이 효율성 뿐 아니라 웰빙과 기회의 불평등에도 민감하게 만들 수 있음=social welfare functional의 사용

* 개인간 비교를 가로막아 온 인공적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규범적 계량의 영역(센의 연구영역인 빈곤, 분배를 고려한 국민소득, 환경영향평가 등)과 사회후생분석의 공리적 접근을 결합한 연구가 가능해짐.

 

VIII. 개인간 비교의 정보 기초(informational basis)

 

o 개인간 비교를 어떻게 하는가

 

- 이제 개인간 비교의 실증적 기준을 확보하고 실제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문제

* 우선 개인간에 무엇을 비교하는가? 사회후생함수의 형식은 효용비교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유형의 개인간 비교도 집어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음

-> 개인의 유불리를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는가(accounting)라는 기본 문제

* 주류경제학은 행복이라는 (주관적) 정신 상태를 기준으로 삼았고 따라서 비교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그러나 이 결론을 정당화 근거는 매우 희박하며 체계적 개인 간 비교에 정밀한 비교가 필요한 것도 아님.

 

- 박탈(deprivation), 결핍(destitution)

* 정신 상태(기쁨이든 욕망이든)의 비교에 초점을 맞출 이유가 없다는 훌륭한 윤리적 근거가 있으며 효용은 지속적 박탈에 대해서 대단히 널럴한(malleable) 반응을 보임

* 완벽한 성불평등 속에서도 행복하다는 여성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태도가 지속적인 박탈을 없애주는 것은 아님. 기쁨이나 욕망은 실질적 박탈을 반영하는 데 매우 부적절한 지표일 수 있음.

 

- 롤스의 기초재와 센의 능력(capability)

* 롤스의 기초재 - 소득, 상품꾸러미, 자원 등의 양을 개인간 비교의 지표로 사용할 수 있으며 롤스의 기초재(primary goods= general-purpose goods) 개념은 여기에 근거

* 능력이론 - 기초재와 자원의 소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이들 자원을 전환하는 능력에 초점. 자기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상대적 능력의 유불리가 개인간 비교의 핵심 - 즉 어떤 결과보다 실질적 자유(sbstantive freedom)가 중요.

* 이런 의미에서 개인간 비교는 부분적일 수 밖에 없지만 부분 비교는 사회적 가치 판단에 (주류경제학의 입장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중요한 차이를 초래.

 

- 그러나 주제의 성격이나 정보의 수집과 평가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하나의 정보 접근 방식(예컨대 센의 능력이론)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 다음과 같은 비교기준도 가능

* 지출 유형 등 다른 웰빙 비교 지표, 설문 조사 등의 연구

* 삶의 조건, 삶의 질에 관한 연구들과 그에 기초한 비교

* “기초 필요”(basic needs)와 상대적 박탈에 관한 연구

-> 이런 연구들에 기초한 정보 확장을 체계적으로 이용한 UNDP 프로그램

 

-> 실천적 후생경제학과 사회적 선택이론의 발전

* 능력에 기초한 부분비교의 우수성(Sen, 1992, "Inequality reexamined")

* 이들 각각에서 문제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들 연구에서 나온 경험적 정보에 대한 관심과 광범한 이용으로, 개인적 유불리와 그 실증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대폭 확장되었음.

* 이런 분석 체계는 애로우 모델보다 훨씬 광범위 -> 그 모델보다 덜 엄격하고 따라서 덜 “불가능함”. 그러나 충분히 일반적이어서 다양한 경험적 해석과 사회적 선택을 위한 대안적 정보기초를 허용할 수 있음.

* 높은 차원의 이론("high theory" 즉 사회적 선택이론)이 “실천 경제학”("practical economics", 예컨대 UNDP의 빈곤 프로그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 -> 불가능성 정리가 암시하는 비관적 전망이 제거되고 있음.

IX. 빈곤과 기근

 

o 빈곤 연구

 

- 흔히 빈곤은 빈곤선 소득 아래 있는 인구수로 정의. head-count measure. 그러나,

1) 저소득이 빈곤인가

2) head-count measure가 사회의 총 빈곤을 가장 잘 반영하는가?

 

1) 저소득이 빈곤인가

 

- “특정한 기초 능력의 심각한 박탈로서의 빈곤”

* 빈곤선 위에 있지만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 박탈은 기회의 결여가 아닐까? 그리고 그 기회란 소득 뿐 아니라 물리적, 환경적 특성, 기타 변수(예컨대 의료 등의 이용가능성과 비용) 등 수많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 소득에 기초한 분석과는 다른 범주의 빈곤 도출

* 소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여러 상황에 따라 그 소득을 최소한의 납득할만한 삶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에 차이 발생

1) 개인적 이질성(예컨대 질병에 대한 취약성)

2) 환경의 다양성(예컨대 폭풍이나 홍수가 잦은 지역)

3) 사회적 환경의 차이(예컨대 범죄율이나 전염병 감염율)

4) 관습적 소비와 관련된 상대적 박탈감의 차이(예컨대 부자 동네에서 사는 중산층)

 

o 사례 : 기근의 문제

 

- “능력 박탈로서의 빈곤” 기준의 정보 이용가능성

* 기근의 연구는 농업생산과 식량공급보다 상이한 집단 간의 소득분배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줌. 즉 농업생산이나 식량공급의 감소 없이도 기근

* 식공급에서 이용가능성(entitlements, 식량공급 뿐 아니라 소득, 상대가격)으로 정보 초점의 이동은 근본적 차이 초래 : 기아는 사람들이 적정량의 식량에 대한 이용가능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때 발생. 식량공급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에 불과

-> 소득에 민감한 이용가능성 접근(income-sensitive entitlement approach)이 현실을 분석하고 대응방향을 정하는 데 더 유효

* 이후 소득을 영향으로 전환하는 요인들 분석 : 신진대사율(metabolic rate), 질병에 대한 취약성, 신체 크기 등

* 이런 분석은 영양실패, 질병율, 사망률 등 더 일반적인 주제의 연구에 매우 중요

 

- 후생경제학, 사회적 선택이론의 실천적 방향

* 사안의 성격 ->분석이 초점을 맞출 특정 “공간” 확인, 주요 지표 확인과 통계 확보

* 그 지표(예컨대 소득)를 능력으로 전환하는 데 관련된 변수 확인, 통계 확보

 

2) head-count measure가 사회의 총 빈곤을 가장 잘 반영하는가?

 

- 머리 수 세기는 중요하지만 한 개인이 빈곤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나아가서 박탈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공유되고 분배되어 있는가도 중요

* 빈곤의 집계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므로 공리(의 합의)가 필요하고 이에 기초해서 사회 데이터가 생성되어야 함.

ex)최근 사회선택이론 문헌에서 몇 개의 분배-민감 빈곤지표(distibution-sensitive poverty measure)가 공리에 의해 도출된 바 있음

 

- 공리에 의해 정확한 빈곤지표를 개발하면, 즉 사회적 판단에 대한 정보가 적절하게 확장되면 우리는 다른 공리적 요구를 추가해서 불가능성 바로 직전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단 하나의 빈곤 지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X. 상대적 박탈과 성 불평등

 

- 성불평등은 정신적 태도의 널럴함이 객관적 상황을 호도하는 좋은 사례

* 여성의 적응성(adaptibility, 가난한 사람도 자신의 삶 속에서 곧잘 즐거움을 찾는다)가 매우 중요. 특히 가정의 응집(cohesion)에서 여성의 태도는 결정적 역할을 하며 가정을 벗어나 부당한 대우에 대결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듬.

* 실제로는 여성이 훨씬 더 아픈 상태임에도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음 = 여성들의 “건강 무관심”

* 의료시설과 학교 교육이 잘 갖춰진 인도의 주에서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높음.

* 이런 유형의 불평등과 박탈은 정신적 불만의 통계로 나타나지 않음. “정신적 반응, 즉 주류의 고전적 효용은 박탈의 분석에 매우 부적절할 수 있다”

 

- 실질적 박탈 연구 필요

* 진찰된 질병율, 관찰된 문자해득률, 기대 이상의 높은 사망율 등 실질적인 박탈의 상황을 연구해야

* 개인간 비교는 빈곤과 성불평등의 연구의 중요한 기초

 

XI. 자유주의 패러독스

 

- 정보의 확장은 사회적 선택의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길

* 지금까지는 개인간 비교를 주로 살펴봤지만 그 외에도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있음

 

- “자유주의 패러독스” 또는 “파레토 자유주의의 불가능성 정리”

* “파레토 효율(<- 무제한 영역)과 결합되는 경우 최소한의 자유를 충족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파레토효율과 자유의 양립불가능성

 

o 자유(liberty)의 두 측면

1) 자유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든 각각의 사적 영역에서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기회 측면”)

2)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든, 못하든 그것을 사적 영역에서 스스로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과정 측면”)

* 기회 측면을 강조하는 사회적 선택 이론은, 파레토 원칙과 자유의 기회 측면은 갈등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지만, 기회측면만 보는 것은 자유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님 - “표준 사회적 선택이론의 기회 중심 정식화(opportunity-centered formulation)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기각되어야 한다”

* 사회적 선택이론은 적절한 (자유의) 성격 재규정을 통해, 특히 실질적 기회에 더해서 적절한 과정을 중시함으로써 자유의 과정 측면을 고려해야 함.

* 그러나 최근 이론가들이 그런 것처럼 과정측면만 중시하는 것도 오류. 과정을 강조한다고 해서 기회의 중요성을 가려서는 안됨.

* 개인의 삶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의 “효과성”(effectiveness)의 중요성은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음. 그러나 결과의 효과성에 대해서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의 기회측면을 무시해서는 안됨.

 

o 파레토 자유주의 패러독스의 해결

 

- 이 패러독스는 개인간 비교로 해소될 수 없음. 자유의 요구나 파레토 효율의 요구 양자 모두 개인간 비교에 크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

* 사적영역에 대한 개인적 권리의 정당성은 선택의 개인적 성격 자체에 있는 것. 다른 사람들이 특정 개인의 사적 삶에 대해 가지는 선호의 상대적 강도와는 무관.

* 파레토 효율성은 상이한 사람들간 선호의 일치 여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이들 선호의 상대적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

 

- 패러독스의 해결

* 상대방의 사적 영역에서의 권리는 개인의 중요성 자체에 의해 보증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개인의 자유들이 서로 잠재적 갈등관계에 들어갈 수 있음. “자유의 패러독스”란 바로 그 잠재적 갈등을 인정하는 것임.

* 이 불가능성을 만족스럽게 해결하려면 개인적 자유와 전반적 욕구 충족 간에 납득할 만한 우선 순위를 매길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들 간의 상쇄관계(trade-offs)를 고려하는 데 필요한 정보에 민감해야 함.

-> 이 역시 (개인의 욕망 뿐 아니라 사람들의 정치적 가치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보의 확장이 필요함. 그러나 이것은 개인간 비교나 모두의 이익(파레토)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XII. 결론

 

-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사회적 선택의 포기(resignation)가 아니라 적극적 추구(실천? engagement)를 요구

 

- 민주적 결정이 비일치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인 한 그것은 객관적 인식의 대상임.

비일관성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런 상황의 차이를 확인하고 합의에 의해서 양립가능한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과정(의 성격)을 찾아야 함.

 

- 불가능성은 불평등의 추정, 빈곤의 평가, 참을 수 없는 독재와 자유 침범의 확인 등을 질서있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일반적 가능성을 부정. 그리고 이런 일관된 프레임워크의 부재는 정치, 사회, 경제적 판단을 심각하게 훼손함. 왜냐하면 그런 틀 없이 부정의와 불공정성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

 

- 그러나 이런 비관적 견해는 사회적 선택의 적절한 체계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투입 요소. 특정한 사회적 선택과정의 공리적 도출은 한편으로 불가능성과, 다른 한편으로 과잉 가능성(수많은 개별적 가능성) 사이에 있을 것이기 때문.

 

- 건설적 후생경제학과 사회적 선택이론의 가능성은 정보 기초의 확장을 요구.

* 웰빙과 개인적 유불리의 개인간 비교는 가장 중요한 요소.

* 후생경제학의 부고(=개인간 비교의 불가능성)의 오류

1) 너무 좁은 정보 기초 = 정신적 상태에 대한 지나친 집착

2) 비교에 대한 지나친 정확성 요구. 부분적 비교만으로도 후생경제학, 사회윤리학, 믿을만한 정치학의 기초를 닦을 수 있다는 사실 무시

 

- 정보의 확장은 사회적 선택 비관론을 극복하는 효과적 방식이며 형식적 추론과 비형식적 추론이 진지하게 종합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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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경제평론가)

지금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요? 2008년말의 패닉 상태에서 벗어난 지금 우리나라에선 1929년의 대공황기와 비교하는 얘긴 듣기 어렵습니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역사가들이 보여주는 장기의 그림이 도움이 됩니다.

첫 번째 그림을 보곤 정말 겁이 났습니다. 대공황에 관한 세계 최고의 역사가 얘기니까 더 실감났었죠.




Eichengree, O'Rouke, A Tale of Two Depressions, 2009. 4.21


1년 뒤까지 연장된 그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듭니다. 자본주의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일제히 금융완화정책과 재정확대정책을 시행한 결과입니다.





Eichengree, O'Rouke, A Tale of Two Depressions, What do the new data tell us. 2010. 3.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유럽 나라들이 재정적자 때문에 팽창정책을 접었고 미국은 여전히 고실업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서울 G20에서 본 것처럼 이제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환율전쟁 등 통상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이번엔 일본은행 총재의 그림입니다.




디플레이션의 위험이란 점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아직도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얘깁니다. 사실 이자율과 양적 완화(즉 통화증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확히 똑같습니다. 

과연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1990년대에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비웃음을 머금고 너도 나도 한수 가르치려던 일들이 새삼 생각나네요^^


Shirakawa, Uniqueness or Similarity? - Japan's Post-Bubble Experience in Monetary Policy Studeis, 2010. 9에서 따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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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경제평론가)


#1 2009년 초 어느 날들

최장집교수가 오바마를 극찬한다. 최교수가 시카고대학 출신이라서 오바마가 빈민운동을 한 시카고 구석 구석의 지도를 그려가며 실감나게 설명한다. 오바마는 운동 속에서 끝없는 대화와 설득의 위력,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미덕을 체득했다. 초기에 의욕이 넘쳐 곤경에 처했던 클린튼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란다.

“선생님, 꼭 아들 자랑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경제는 그렇게 타협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타협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김상조교수가 슬쩍 웃으며 한마디 한다. “노무현하고 똑같아요”

그렇다. 그는 이제부터 최강의 월스트리트와 싸워야 한다. 똑같은 대위기와 싸웠던 루즈벨트보다 훨씬 불리하다. 루즈벨트에겐 일군의 진보파(progressives) 지식인들과 운동이 있었다. 같이 손잡고 금융자본과 맞서 싸울 산업자본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달러 패권이 확립되는 시기의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다(당시에 쓴 긴 글을 첨부했습니다. 참고하세요).

그가 자랑하는 “두명의 밥”(Bob, Robert의 애칭)의 성향을 보면 로버트 라이시(클린튼 행정부 당시 노동부장관)는 왼팔이고 로버트 루빈(재무부 장관)은 오른팔이라고 할 만하다. 오바마는 오른팔을 들었고 나아가서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대신 서머스와 가이트너를 경제사령탑으로 택했다. 불길한 징조는 더욱 뚜렷해졌다.

#2 안정으로 향한 우리의 길을 수출한다(Exporting Our Way to Stability)

오바마가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뉴욕타임즈에 기고를 했다(2010.11.5).
제목은, 내가 번역을 잘못 한 게 아니라면 위에 있는 그대로인데 여기서 ‘우리의 길’이란 곧 수출이다. 특히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아시아에 수출을 두배 이상 늘리겠다는 다짐이다. 물론 모든 나라가 수출을 늘려서 무역수지 흑자를 거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바마의 몰락을 읽는다. 중간선거 패배를 계기로 오바마는 길을 잃었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제조업을 강조했으니 뭐가 그리 잘못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바마는 금융자본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국민들의 눈을 외부로 돌리려고 한다.




US President Barack Obama speaks during a DNC rally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in Los Angeles, California, October 22, 2010. TOPSHOTS AFP PHOTO/Jim WATSON



글로벌 불균형을 수출로 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왜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약해졌는지, 글로벌 불균형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의 재경부 관료들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는 장치)를 없애려고 할 때마다 항상 하던 얘기가 있다. GE같은 제조업체도 GE 캐피털과 같은 금융업을 하며 대부분의 이익은 금융에서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GE의 경쟁력은 형편없어졌다. 손쉬운 자산 투기, 소매금융업의 이익률이 더 높다면 제조업에 힘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보험자본과 대형병원의 힘에 따라 의료를 온통 시장에 내맡긴 결과 GM은 노동자 한명당 연간 천만원이 넘는 의료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여기서 자동차의 경쟁력이 나올리 없다.

내부의 개혁없이 수출을 늘리려면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할 수 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환율 압력이나 한국의 자동차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자신이 비판하던 FTA 비준에 열을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는 덤핑판정과 상계관세 등 공격적 보호주의를 하면서 오히려 상대에게 보호주의의 굴레를 씌워 별 근거없는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경상수지 적자 변화분의 30%는 자산버블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식 가격의 쇼크는 20분기 후에 경상수지 변화의 17.3%, 그리고 부동산 가격 쇼크는 12.4%를 설명하며 환율쇼크는 9.2%를 차지할 뿐이다.
쉽게 얘기해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부자가 된 기분 때문에 소비와 건설투자가 늘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커진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외국에 절상 압력을 가해 봐도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요는 글로벌 불균형을 개선하려면 미국의 금융과 주택 버블부터 잡아서 수입을 줄여야 하고 의료, 교육 등 비효율적인 부문부터 바로 잡아서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최근 경기부양을 위해 대대적으로 착수한 양적 완화(Quantity Easing)는 미국 통화를 증발해서 다른 나라의 통화를 평가절상시키겠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유동성 함정에 빠진 미국 경제는 다시 한번 버블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의료개혁은 중도반단이었다. 내부의 개혁이 좌초할 때마다 미국은 전쟁에 의존했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나 오바마의 통상전쟁이나 무엇이 다를까?

# 로버트 라이시의 “미국의 두 경제, 왜 하나는 회복되는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가?”(America's two Economies, and Why one is Recovering and the Other isn't)

오바마의 버림받은 왼팔, 로버트 라이시는 11월 6일 자신의 블로그에 ‘두개의 미국경제’에 관한 글을 썼다. “큰 손들의 경제”(Big Money Economy)와 “보통 노동자의 경제”(Average Worker Economy)가 그것이다.
큰 손들이란 월스트리트 트레이더, 대규모 투자자, 고급 전문가들, 그리고 기업 경영자들이다. 위에서 말한 양적 완화 덕에 이들의 손에는 다시 돈이 넘쳐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의 경제는 회복됐다. 그러나 보통 노동자들은 여전히 실업의 위험에 시달리고 가계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양적 완화”는 그림의 떡이다.

물론 그래서 수출을 늘려 고용을 회복하자는 것일테지만 미국의 S&P 500대 기업 40%는 자신의 사업 60% 이상을 해외에서 운영한다. 내부 개혁을 하지 않은 채, 무엇보다도 금융개혁을 하지 않은 채 외부에 압력을 가해 봤자 미국이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단지 중국과의 관계만 악화될 것이다. 물론 오바마가 얻는 것도 있다. 그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는 이명박 정부가 있지 않은가? 애구구.. 어째 2년 전에 내가 쓴 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일까?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1980년대 중반의 플라자협정, 그리고 미일반도체협정을 떠올리며 만만한 나라에 비용을 치르게 하는 단기 해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다만 이제 그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고민일 테고 훨씬 만만한 상대로 한국이 자동차 등에서 먼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목숨을 건 환율전쟁, 금리전쟁, 통상마찰., 심지어 군사적 전쟁.. 그 한 복판에 한반도가 있다.” (일본 세카이지, 790호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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