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즈음에 보통 사람들이 토정비결을 보듯 나는 경제전망 통계를 들여다본다. 유엔 경제사회국(UN DES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의 2014년 세계경제 전망치는 작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구매력지수를 사용하는 유엔의 경우 3.0%, 그리고 나머지 둘은 3.6%인데 어느 쪽이든 2013년 전망치(3분기까지의 실적 반영)보다 약 1%포인트 높여 잡았다.

 

세 기관이 보는 2014년 전망을 한마디로 줄이면 모두 “꽤 나아지겠지만 하방 위험은 상존한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확실히 좋아 보이는 지역은 미국이다. 양적완화로 인해 풀린 돈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고 달러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출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셰일가스 특수 또한 확실한 플러스 요인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양적완화 축소는 작년 5~6월 같은 대혼란을 일으키지야 않겠지만, 미국의 내수와 수출 증가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고 공화당은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들이 2012년 말에 전망했던 작년 성장률은 3.5% 언저리였지만 실적치는 2% 후반대에 머물렀다. 바꿔 말하면 이른바 ‘하방 위험’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예측이 빗나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2009년 런던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한목소리를 냈던 금융규제 강화도 거의 진전이 없으니 버블은 또 한번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고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벌써 수명이 다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유럽의 역내 불균형이나 중국의 각종 격차를 해소하는 일도 실로 요원한 일이다.

 

 

(경향DB)

 

만일 세계경제가 3.6% 성장한다면 지난해 12월27일의 정부 발표대로 한국 경제도 3.9%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건 전망이라기보다 차라리 희망이다. 지난 몇 년간 정부의 경제전망이 1% 이상 틀린 것은 투자와 소비, 즉 내수 증가율을 한껏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설비투자 실적은 2012년 마이너스 1.9%, 2013년(3분기까지) 마이너스 1.6%였는데 정부는 금년에 6.2%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2년 12월에 했던 2013년 전망치가 3.5%였으니 이번 수치 역시 미덥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네 번에 걸친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몇 십년 묵은 재벌들의 숙원을 다 들어 주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각종 규제완화, 나아가 지금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산업의 민영화가 그것이다. 해서 이런 수치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으면 정부의 희망은 한낱 꿈으로 판명날 가능성이 높다.

 

투자야 원래 ‘동물적 본능’에 따르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소비는 그다지 크게 출렁거리지 않는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부는 민간소비가 3% 이상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실적은 1%대였다. 정부는 가계흑자율과 고용의 증가를 근거로 댔지만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사교육비, 의료비, 주택 관련 비용이 여전히 ‘등골 브레이커’인 한 다른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또 고용이 증가하곤 있다지만 주로 50대 여성의 재취업이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별다른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는다 해도 세계경제와 우리 경제 성장률은 3% 언저리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도 규제완화에 따른 건설경기의 덕을 톡톡히 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런 총량 수치와 관계없이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더 심각해질 거라는 데 있다. 빈부격차야말로 세계경제가 7년째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이다. 그사이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따라서 세계의 총수요도 증가할 길이 없으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진격의 줄푸세’는 세계에서도 최악이다.

 

지난해 11월의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절반(46.7%)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대답했다. 1988년 처음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나아가 “일생 동안 노력하면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응답한 국민이 57.9%였다. 다음 조사에서 또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일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제발 ‘독재의 추억’을 벗어나 현실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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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국 날씨 같다.” 아내와 함께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내다본 풍경은 스산했다. 우리는 1996~1997년 겨울을 영국에서 보냈다. 외환위기는 외국에 있는 사람에게 훨씬 더 절박하다. 한국에서 똑같은 돈을 부쳐도 파운드화로 바꿀 때마다 형편없이 줄어드는 상황을 매달 겪었다. 소문처럼 모라토리엄이라도 선언하는 날에는 우리 가족은 영락없이 국제 거지가 될 판이었다. 설령 한국에 수십억원의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단 1원도 달러나 파운드로 바꿀 수 없을 테니….

 

물론 지금 한국 경제는 그때보다 낫고 나는 한국에 있다. 하지만 이번엔 세계 전체가 2008년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지난 30년간의 ‘금융화’가 원인이다. 오랫동안 낮은 이자율과 부동산과 금융시장의 버블 속에서 나라, 기업, 가계 모두 빚의 무서움을 잊어버렸다. 미국이 주도해서 전 세계가 빚을 “레버리지”라고 부르면 최신 경영기법쯤으로 여겼다. 다행히 한국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건전성 규제 때문에 조금 낫지만 가계 부채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의 소득은 불투명한데 빚이 많다면 소비를 줄이는 건 당연한 처사다. 기업의 ‘야성적 본능’은 자중할 때라고 소리친다. 2008년 가을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매년 이때쯤이면 국내외의 ‘믿을 만한’ 경제예측기구들이 내년엔 서서히 회복될 거라고 5년이나 외쳤지만 아직 아무도 “이젠 회복 국면”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전 세계적인 ‘양적완화’(주로 중앙은행의 장기 국채와 부실채권의 직접 매입)에 따라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 마치 모르핀처럼 미래의 공포를 누그러뜨리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는 음울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의 3대 천재로 일컬어졌던 로렌스 서머스,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가 11월 들어 일제히 장기침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단순화하자면 이제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이자율을 0으로 만들어도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여 크루그먼은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억지로라도 소비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삭스는 에너지와 생태 인프라, 교육과 보건에 대한 장기투자가 더 낫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결코 삭스의 제안을 실천할 수 없다. 공화당과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당장 빚이 문제니까 정부 빚부터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태에서 정부 지출까지 줄어든다면? 당연히 총수요는 더 줄어들 것이고 양적완화가 계속되더라도 미국은 침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를 또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무릎을 칠 것이다. 아니 한국이 더 맞는 사례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미 박 대통령은 국회가 10개월이나 지난 ‘과거사’에 얽매여서 민생을 살리는 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고 국회에 책임을 돌렸다.

 

 

공약이 어디있지(경향DB)


하지만 한국에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는 바로 대통령 자신이 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던 수출은 세계적 장기침체 상황에서는 미덥지 못한 존재다. 하지만 중산층의 소득은 옆으로 걷고 저소득층의 수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나마 형편이 좋은 상류층의 돈은 또다시 거품을 일으키는 쪽으로 몰리고 있다. 현금을 쟁여 놓은 최상위 재벌들도 세계적 ‘장기침체’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는 없다.

 

결국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정부가 증세를 해서, 서민들의 소비가 늘어나도록 해야 하고 환경과 교육, 보건에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경기침체를 빌미로 지난 대선 때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생애 맞춤형 복지’를 내팽개쳤다. 지금이라도 아래로 돈이 흐르도록 복지 예산을 대폭 늘리고 경제민주화를 약속한다면 한국의 야당은 틀림없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서민들이 지난 6년간의 음울한 날씨를 벗어나 따뜻한 봄을 맞을 때도 이젠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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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을 우리가 지키자”(서울 오류여중), “선생님께 배우고 싶습니다”(서울 송곡여고) “스승을 절대 내 줄 수 없다”(전남 순천 효성고) “우리 사랑으로, 우리 선생님을” “우리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광주 동아여중·고, 충남 도고중, 서울 대림여중, 경북 영천 금호여고, 전남 옥과고, 서울 공항고), “내 선생님을 끝까지 지켜내자”(목포 홍일고), “선생님과 우리는 하나”(온양여고), “선생님 없으면 우린 어떡해요”(대구 성화중) “우리는 참교육을 받고 싶다”(부산 동인고, 광주 송원여고), “학교를 떠나지 마세요”(대전충전실업고), “우리는 선생님을 찾고 싶습니다”(대전 신일여상).

 

1989년 봄에서 가을까지 대한민국은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아이들은 전국에서 해직된 1700여명의 전교조 선생님들을 눈물로 지키려 했다. 이 아이들의 절규가 없었다면, 선생님들은 1999년 전교조가 합법적 노동조합이 되기까지 10년을 견뎌낸 불굴의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 (경향DB)

 

 

그 후 24년, 합법화 14년 만에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최후 통첩을 전교조에 보냈다. 한 달 안에 전교조 규약을 개정해서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에서 빼라는 것이다. 전교조는 총투표로 이를 거부했고 그예 정부는 10월24일, “‘교원노조법상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오후 2시 팩스를 통해 통보했다”.

 

그러나 그 ‘교원 노조법’ 어디에도 정부가 팩스 한 통으로 기존 조합을 불법으로 만들 근거는 없다. 오직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법’의 시행령(제9조 2항)이 있을 뿐이다. 전교조는 모법의 근거도 모호한 시행령 하나 때문에 6만명의 노동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령인 “줄푸세”의 “세”(법을 세운다)가 겨누는 곳이 어딘지를 보여준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전교조 관련 2회, 전공노 관련 1회 등 세 차례나 긴급 개입(urgent intervention)을 했다. 긴급 개입이란, 노동의 기본권 중 기본권인 87호와 98호를 다루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2년이 걸리는 통상의 절차를 밟을 수 없을 만큼 엄중하고 신속한 행동이 필요할 때 사무총장이 직권으로 적용하는 절차이다.

 

 

노동부 장관 퇴진 요구하는 전교조 해직교사들 (경향DB)

 

ILO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이미 전교조 케이스를 검토했고, 강력한 권고안을 내서 노동부 방하남 장관과 교육부 서남수 장관이 애지중지하는 시행령의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전교조에 예의 ‘최후 통첩’을 보내자 이번에 또다시 긴급 개입을 한 것이다. 노동부는 기자 브리핑에서 이 긴급 개입을 “의견 조회”일 뿐이라고 창의적인 해석을 내렸지만 실은 “조속한 정책 변경”을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다.

 

ILO의 조치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방하남 장관조차 장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해고자, 구직자, 실업자의 노동법과 노동관계법상 법적 지위는 국제적인 기준도 있고 외국 사례도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핀란드의 교원 노조는 은퇴자뿐 아니라 예비 교사인 학생까지 조합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이게 노동 후진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ILO 노동 대표의 성명이 언급한 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권 감시까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식에 비춰서 이게 국제 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나는 전교조가 지금 궁지에 몰린 것이 꼭 정부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교조가 현장의 ‘참교육’을 혹여 게을리해서 일반 국민의 눈에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귀족 노조’로, 또는 강퍅한 자기 이념의 추구에 몰두하는 ‘이념 집단’으로 비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전교조가 24년 전, 아이들의 눈물을 기억해 내기 바란다. “선생님 없으면 우린 어떡해요”, “우리는 참교육을 받고 싶다”라는 아이들의 아우성 없이, 부모들의 진심 어린 지지 없이 어떻게 박근혜 정부 5년을 견딜 수 있을까? 참교육 배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던 아이들이 살 길이다. 전교조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부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불평등, 학력 차별, 등수 경쟁, 획일적 교육을 사회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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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달여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일단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아니 ‘서무필’로 끝났다. 19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경기회복에 대한 추가 증거가 확인될 때까지 양적완화를 미룬다고 발표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고용시장이 자신들이 보려 했던 모습과 거리가 멀고 성장 둔화 우려 때문에 현재의 양적완화를 지속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전망치를 끌어 내린 경제지표가 연준의 낙관적 전망을 확인해 준다면 금년 말쯤 다시 시도할 언급도 물론 잊지 않았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부실채권 등 민간 자산을 직접 사들여 은행 대신 자금중개기능을 했다는 점에서 전통적 통화정책과 다르다. 해서 비전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중앙은행이 기존 자산의 보증을 서서 은행의 채권 발행을 도운 유럽의 상황도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비상 조치를 취했는데도 이번에 연준이 밝힌 것처럼 경기는 기대만큼 확실한 회복을 보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책 없이도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지난 5년간 세계가 1930년대처럼 패닉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지 않았을까?

 

어쨌든 세계 경제 사상 최초의 시도인 만큼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곧 임기를 마칠 정통 경제학자 버냉키로서는 하루 빨리 이 불안한 정책을 거둬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벌써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려야 했고 정부의 적자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데 왜 연준은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적어도 연말까지 연기한 걸까? 경제학자들은 실업률 지표의 개선(7.5%)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거나 질 나쁜 임시직에도 취직했기 때문이며 중산층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사실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정부와 의회의 예산안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연준이 앞장서서 양적완화를 축소하기엔 부담이 컸을 것이다. 만일 협상이 결렬된다면 재정마저 막히는데 금융줄을 미리 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고 또 하나의 이유를 꼽으라면 부동산 시장 상황에 주목하겠다. 2013년 미국의 주택가격은 12%나 올랐고 이에 따라 모기지 신청자가 증가해서 연준에 희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은행들은 오히려 모기지 전문가들을 해고하고 있다. 은행들이 더 이상 주택 거래가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증거다. 즉 집값이 꿈틀거리는데도 중산층의 실수요가 따라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경기가 활활 불붙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즉 그 동안 집값이 꽤 내렸지만 소득도 동시에 줄었기 때문에 주택구매라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경향DB)


이런 추론은 한국의 현재 경제상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값을 올리기 위해 가능한 정책을 모두 동원했다. 하지만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특혜에 끌려 부자들이 집을 더 사들인다 해도, 그래서 집값이 꿈틀거린다 해도 실제로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박근혜 정부의 시나리오를 경제이론에서 찾는다면 피구효과, 또는 자산효과일 테다. 즉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부자가 된 기분에 들떠서 소비를 늘리고 이것이 생산과 투자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소비를 더 늘릴 사람들은 누구일까? 부자들은 이미 충분한 소비를 하고 있으므로 돈이 넘쳐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소비를 확대하기 어렵다. 지금 집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중산층은 미래 소득에 자신이 없다면 집을 사지 않을 것이고, 구매한다 하더라도 원리금을 갚기 위해 저축을 늘릴 것이다. 즉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는 자산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경제를 살리려 한다면 더욱 약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상황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외친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그리고 지금 타오르고 있는 협동조합 열풍은 이런 필요를 반영하고 있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불통과 독선의 오류는 머지않아 경제 분야에서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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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을 것 같던 폭염도 한풀 꺾여 자연의 시계바늘은 여전히 째깍거리며 제 갈 길을 가는데 어이할꼬,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로 껑충 역행한 듯하다. 작금의 ‘내란 사태’가 내 머릿속 얄팍한 역사책에서 찾아낸 유사 사례는 선조시대 ‘정여립의 난’ 정도다. 하지만 정국의 반전을 노려 조작된 사건이라는 점만 동일할 뿐, 쿠데타 주역의 능력과 명성은 비교조차 민망하고 그들이 작당해 모의했다는 내용 또한 1950~1960년대 지구의 어느 외진 부족사회에서나 가능할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500여년 전의 역사를 떠올린 건, 국가정보원 불법 사건 ‘물타기’가 끝나면 흐지부지 사라질 이 소동 때문이 아니다. 진흙탕 싸움에 혀를 차며 ‘민생’이 걱정될 때마다 ‘유체이탈 화법’의 어명을 하교하는 대통령 때문이다. 투자자를 업어줘야 한다는 비유를 쓰면 곧바로 일국의 부총리가 그 장면을 연출하고, 이마에 ‘나는 엘리트’라고 써붙인 기획재정부(기재부)의 공무원들이 총출동해서 만든 세법 개정안도 단 하루 만에 수정된다. 이 어찌 어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전·월세 대책을 세우라는 어명이 떨어진 지 열흘째인 8월28일, 정부는 ‘전·월세 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온갖 편의를 다 봐줄 테니 집을 사라”는 것이다. 특히 돈의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가 집을 더 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취득세율을 인하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차등세율을 폐지하고, ‘민간임대주택 공급 활성화’를 이유로 임대사업자들의 금리와 각종 세금을 깎아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초주택구입자에게 1%까지 특혜금리를 제공하겠다는 ‘장기주택 모기지 확대’도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부자들을 위한 대책이긴 마찬가지다. 20년에 걸쳐 마이너스 실질금리로 갚는다 해도 현재의 집값으론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지만, 돈 많은 부잣집 자녀는 시중 이자율과의 차이만큼 땅 짚고 헤엄쳐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빨리 집을 사주라는 얘기다.

 

 

전세대책, 이번엔 잘 될까? (경향DB)

 

 

돈 많은 다주택 소유자들을 움직여 집값이 꿈틀거리게 해서 그예 전세 수요자까지 주택 구매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집 하나 가진 중산층마저 빚을 더 늘려서라도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당장 전·월셋값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서민들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 주겠다는 것도 현재의 전·월셋값 상승을 뒷받침해서 결국 구매로 발길을 돌리게 하겠다는 속셈일 뿐이다.

이런 황당한 정책은 더 큰 어명, ‘증세 없는 복지’ ‘국민이 행복한 나라’와 직결돼 있다. 2008년에 시작된 ‘대침체’를 아직도 깔끔하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최근 터키·인도네시아 등의 금융불안까지 덮쳐서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지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설비투자 증가율은 계속 줄어들고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소비를 늘릴 방법도 없다. 그러니 남은 것은 오로지 건설투자뿐이고, 해서 정부는 집값 상승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집값이 더 올라도 괜찮을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이 최근에 발표한 ‘가계 흑자 주택 구매력 지수’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새사연의 이 지수는 현실의 가계가 쓰고 남은 돈으로 집을 사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를 보여준다. 소득 1분위(소득 순서로 나열했을 때 하위 20% 가구)는 아예 불가능하고 그 다음 2분위는 40년, 3분위 27년, 4분위는 23년이다.

여기서 집값을 더 올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준재벌급 부모의 유산 없이(상위 20%인 5분위마저 18년이 걸린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소득만으로 내집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전·월세 상한제이고 장기적으로는 서서히 집값이 떨어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정부는 정반대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하늘 높은줄 모르는 전세값 (경향DB)

 

혹여 정부의 이 정책이 성공한다 해도 단기간의 거품 이후에는 곧바로 붕괴의 지옥이 입을 벌릴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어명은 내년 4% 경제성장이라는 환상 속에서도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가 살길은 서민들의 임금이 올라가고 복지가 확대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첫째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는 것이 둘째요, 그리고 현재의 협동조합 붐이 제자리를 잡는 데 있다.

 

‘민생’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운 대통령의 어명이 바로 그 민생을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게 뻔한데, 허무맹랑한 내란을 조작해서 정국을 주도한들 그 무슨 소용이랴. 그 앞에는 민심의 진정한 내란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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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을 꽉 메운 인파, 또다시 촛불이 일렁거린다. 연단에 오른 민주당 의원들이 8일 발표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맹공한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대로 “월급쟁이 434만명(전체의 28%에 해당)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 그야말로 오만한 박근혜 정부 아니면 불가능한 세제개편안”이라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이 정도로 세수를 확대해선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맞춤형 복지’를 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27조원가량이 더 필요한데 이번 세법 개정으론 고작 2조4000억원 정도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세법개정안 방향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보편복지를 하려면 언젠가는 중산층의 소득세도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복지는 이른바 ‘공유지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공급 쪽의 무임승차(남들보다 세금을 덜 내야 한다)와 수요 쪽의 무임승차(‘공짜 복지’를 되도록 많이 이용해야 한다) 유혹은 보편복지로 가는 길에 솟아오른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 딜레마는 “모두 내고 모두 누린다”는 보편의 원칙을 공정하게 적용해야만 해결된다. 이번 개정안은 공정성이란 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했지만 보편성이라는 면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을 세금폭탄이라고 폄하하는 대신, 어려운 서민들이 세금을 더 내는데 부자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공정한 게 아니냐고 설득해야 한다.



박대통령 '중산층 증세 원점에서 재검토' (경향DB)



즉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시대’를 열려고 한다면 당장 법인세와 자산세를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되돌리고 경제사정이 나아진다면 ‘부자증세’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유리 지갑을 가진 월급쟁이들도 이번 조치에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연구개발비 세액 공제, 고용창출 투자세액 공제 등 대기업에 주는 4조4000억원의 특혜를 없애기는커녕, 사실상의 재벌 상속인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중과세를 대폭 후퇴시켰다. 기획재정부 김낙회 세제실장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경영 효율화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댔다. 투자자를 업어주는 부총리에 이어 대통령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고위 공무원이 또 하나 탄생했으니 앞으로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앞다퉈 이 모범을 따를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복지’를 사실상 전담할 중산층 사정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장기침체와 저금리로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단기 대책은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현오석 부총리는 “시장 반응을 살펴보면 공급이 줄어 오히려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단기에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은 발생할 수 없다(수직의 공급곡선). 전·월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고 아예 집을 놀리겠다는 다주택 소유자가 얼마나 될까? 물론 장기적으로는 임대 목적의 주택 건설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야말로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패러다임 전환’, 즉 주택 공급의 축소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


(경향DB)



왜 부총리와 장관의 말이 어긋나는 것일까? 주택 공급 축소로 가격이 오를 것이니 중산층에게 빚을 내서라도 지금 집을 사라는 국토부 장관, 그리고 주택공급 축소가 걱정돼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할 수 없다는 부총리의 공통점은 오로지 하나, 부동산부자들과 건설업자의 현재 이익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대통령 취임 6개월이 막 지난 지금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는 확정됐다. 투자수요를 늘리기 위해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의 산지규제 완화 등 ‘푸’(규제를 푼다)는 재벌과 부동산 자산가들에게 베푼다. 이명박 정부가 이미 실천해 버린 ‘줄’(세금을 줄인다) 대신 중산층의 세금을 ‘늘’린다. KTX나 가스공사 민영화(역시 ‘푸’) 역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는 데 사용한다.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불만, 그리고 촛불에 대해서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즉 ‘세’, 법질서를 세운다)하면 된다. 부자들은 ‘줄푸’를 누리고 중산층 이하는 ‘늘세’를 감당하는 것이 우리들의 ‘국민행복시대’다.




정태인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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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9일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이른바 “버냉키 쇼크”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다른 지면에 쓴 대로 다소 뜬금없었던 이 해프닝은 곧 가라앉았다. 지극히 효율적이라는 금융시장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뜯어 보면 별 내용도 없는 정보 하나만으로도 아래 위로 출렁거린다면 그건 효율적이라기보다 믿을 만하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도 지진이 일었다. 중국 인민은행이 금융시장에 더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2주일 전에 중간 규모의 은행 두 개가 파산할 거라는 소문에 단기 금리가 상승했고 인민은행이 자금 경색을 막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가 모락 모락 피어오르던 터였다. 중국의 금융시장 역시 격렬하게 반응했다. 상하이 지수는 폭락했고 은행 간 금리는 25%까지 치솟았다. 버냉키와 마찬가지로 인민은행도 “납득할 만한 범위 내에서 시장 금리가 움직이도록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미국의 거품은 이미 터졌지만 중국제 풍선은 여전히 부풀어 오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쪽 쇼크가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 특히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훨씬 더 크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는 2012년말 1조7000억달러에 이르렀고 중앙정부는 은행 대출을 통제했다. 지방정부는 국유지를 팔아서 적자를 메꾸고 있지만 그 또한 한계에 부딪혔다. 국영기업이나 민간 부동산 개발회사도 마찬가지로 빚투성이인데 사실 중앙·지방정부의 공무원과 국영·민간기업 경영진은 혈연, 지연으로 어지럽게 얽혀 있다. 공식 통로가 막힌 은행들은 장부외 거래(그림자금융)로 이들에게 돈을 대고 있다. 돈줄을 풀면 그림자금융과 정부·민간 부채의 위험을 통제할 수 있겠지만 거품을 더 키울 것이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돈줄을 죄면 미국과 같은 시스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



한편 최근 베이징대에서 발표한 가계조사는 중국의 빈부격차가 심각한 상태라는 걸 숫자로 보여줬다. 중국의 상위 5% 가계가 전체 소득의 23%를 차지한 반면 하위 5%는 겨우 0.1%에 머물렀다. 2012년 지니계수는 0.49로 공산당이라는 당명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원자바오 총리 말마따나 중국 사회는 “불안정하고 불균형하며 조정되지 않아서 지속불가능하다”. 중국경제의 경착륙은 한국경제를 낭떠러지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 홍콩을 포함하면 30%가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위태위태한 상황인데 한국 정부는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아니 일본과 미국에서 확실히 망하는 길로 거듭 판명난 경로를 선택했다. 상반기 수출은 겨우 0.6% 늘었고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세금은 계획의 41%밖에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 때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는 어찌할 것인가? 중국 지방정부처럼 박근혜 정부는 국민 모두의 재산을 팔려고 할 것이다. 이미 발표된 KTX 일부 민영화는 그 신호탄일 뿐이다.


(경향DB)



한국경제 역시 부동산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 그런데도 7월11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단계 투자활성화 대책”은 “부동산투기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재벌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수도권 규제가 완전히 풀렸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산지를 전용하는 기준도 지자체별로 정하도록 해서 지역토호들의 건설사도 소원을 풀었다. 과연 “줄푸세”의 여왕이다.



나는 중국이 경착륙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거품이 터지더라도 힘센 공산당 정부는 재빠르게 위기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번에 올 위기는 쉽사리 처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공산당의 위기로 이어질지 모른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내수 위주의 생태경제로 재편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줄푸세라는 시대착오에 의해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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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과 KTX

정동칼럼 2013.07.01 13:26

나이 들어 그리 된 건지, 아니면 세월이 하수상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되도록 날을 세우지 않고 살아가기로 한 지 꽤 됐다. 그 결과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예를 들어 대선 직전 TV 토론에서 혹시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누가 될까, 날을 거두고 공손한 태도로 일관했더니 내가 한 토론 중에는 그나마 나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적이지만 훌륭하다”고 감탄하며 더욱 정교하게 반박 논리를 세워야 하는 상황은 이 땅에 좀처럼 없다. 작금의 NLL 논란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국가 기밀을 공개한 것도 문제려니와 문서 어디를 봐도 NLL을 포기한다는 얘긴 나오지 않는다. NLL 논란을 묻어두고 서해에 평화구역을 만들자는 계획에 양 정상이 합의한 것뿐이다. 대선 때 한껏 이용해 먹은 거짓말이 여지없이 탄로났는데도 새누리당과 정부는 후안무치, 요지부동, 적반하장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이다지도 어려운가, 한탄해야 할 일은 또 있다. 국토교통부가 26일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그것이다.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 출자회사에서 운영하되 철도공사는 30%의 지분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연기금 등 공공자금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2017년까지 개통할 신규 노선과 적자노선에는 새로운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2012년 한바탕 논란이 있었던지라 정부는 “공공자금 지분에 대해서는 민간 매각이 되지 않도록… 정관이나 주주협약 등에서 안전장치를 둘 예정”(여형구 국토부 차관)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 말을 100% 존중한다 해도 앞으로 대주주인 연기금이 어떤 이유로든 정관을 개정해서 민간 매각을 하겠다면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과반수를 국토부가 장악하겠다는 이야기일까? 결국 이번 방안은 황금알을 낳는 흑자노선(철도공사의 노선 중 KTX만 흑자가 난다)과 지방의 적자노선을 모두 민영화하겠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


민영화 반대 기자회견 (경향DB)



지난 30년 시장 만능주의가 판을 치기 전의 경제학 교과서에는 철도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돼 있었고 이를 뒤집어 철도 민영화를 행했던 나라들의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다. 정부가 규제하는 기본 요금 외의 이용료가 폭등하고 돈 안되는 지방 노선이 없어졌으며 심지어 철도사고까지 빈번해졌다. 왜 정부는 이제 소음이 돼 버린 철 지난 유행가를 트는 것일까?



정부 말대로 철도공사(코레일)가 적자투성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적자노선에 대한 교차보조(시골에도 기차가 하루 한번은 다녀야 할 것 아닌가?), 노선 건설비용의 부담, 낮은 요금 때문이다. 말 그대로 네트워크산업의 공공성 때문에 생긴 적자일 뿐이다. 만일 이 적자가 국토부의 주장대로 공사 운영의 비효율성 때문이라면 그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 아닌가?



이런 공공성 비용을 치르지 않는 민간 자회사는 흑자를 볼 수 있고 정부 주장대로 수서발 KTX 기본 요금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엉터리 예측으로 악명 높은 교통연구원의 발표대로 20%나 내려가진 않을 것이고 초호화 노선을 만드는 등 부가 요금을 올릴 테지만). 그렇다고 서울발 KTX 기본 요금을 경쟁적으로 따라 내린다면 철도공사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 또다시 민영화 확대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도대체 대기업의 횡재와 국토부 퇴직 공무원들의 일자리 외에 어떤 이익이 있다는 건가?



더구나 이 땅에는 한·미 FTA가 발효돼 있다.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70% 지분 중 일부를 미국인 투자자가 사들인다면 그 때부터 투자자·국가제소가 가능해진다.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이 엉터리 정책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NLL과 KTX 논란이 쌍끌이로 이 여름의 수은주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나아가 ‘노후 의료보장 보험’이라는 의료 민영화까지, 도대체 ‘줄푸세’가 아닌 얘기를 이 정부에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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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어렸을 적 읽었던 <세개의 화살>은 일본 이야기였다. 16세기 다이묘 모리 모토나리는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하루는 모리 모토나리가 이들에게 화살 하나씩을 나눠주고 부러뜨리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쉽게 아버지의 명을 따랐다. 그러자 세 개를 한 묶음으로 주면서 분질러 보라고 했다. 이번엔 모두 실패했다. 협동과 단결을 강조한 얘기다. 



아베 총리의 세 개의 화살은 이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금융정책, 확대 재정정책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이요, 지난 5일 발표한 ‘성장전략’이 마지막 화살이다. 이 화살들을 각각 쏘면, 지난 20년간 일본의 경제정책사가 말해주듯 별로 효과가 없겠지만 한꺼번에 쏘면 시너지효과가 날 것이란 얘기다. 


 

일본 자민당의 주요 경제공약 (경향DB)



지난번에도 쓴 일본 얘기를 또 끄집어낸 것은, 변덕 심한 일본 주가 때문이 아니다. 틀리든 맞든 논리의 일관성을 지켜야 할 한국의 언론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4월23일 “한국, 늙은 일본에 경제활력 역전당했다”며 아베노믹스를 격찬했다가 5월28일에는 “요동치는 아베노믹스… 금리 위기에 은행 문의 쇄도”라는 제목으로 아베노믹스는 “근본적으로 모순이고 회의론이 비등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런 조선일보의 태도를 비판한 프레시안은 “아베노믹스, 구조개혁 없이는 실패할 운명”이라는 보수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를 예견한다는 건 분명 도박이지만 아베 총리가 세 번째 화살을 효과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일본경제가 완전히 파산할 것이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아베의 모든 정책은 2%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맞춰져 있다. 일본은 깊은 디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졌다. 물가가 떨어지면 현재의 제로금리도 실질로는 플러스가 된다. 투자는 위축되는데 그동안의 실질임금 하락과 고령화로 소비도 늘어날 수 없었다. 하여 크루그먼은 이미 15년 전에 4%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 5월23일에는 뉴욕 타임스에 ‘일본이 모델’(Japan the Model)이라는 글을 실었다. 


아베.



하지만 일본은 지금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풀려난 돈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고 실물 투자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케인스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남은 것은 그 반대편의 ‘피구효과’이다. 그런데 젊은 층의 임금은 계속 떨어지는 상태이고 정작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노년층은 별로 소비를 늘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풀려난 돈은 어디로 갈까? 인플레이션 없이 자산버블만 일어날 수도 있다(현재 일본의 필립스 커브는 수평선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무한정 사들인다 해도 최근 몰려든 외국인 투자자가 내다 팔기 시작하면 장기금리가 급등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 일본을 지탱해 온 수출마저 세계적 불황으로 여의치 않아 일본은 1980년대 이래 최초로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진정한 문제는 세 번째 화살에 있다. 핵심은 개방과 규제완화이다. 도쿄를 세계의 금융중심지로 만드는 국가전략특구의 설치, 의약산업과 전력산업의 규제 완화에 의한 투자 유도가 그것이다. TPP를 통한 개방을 합치면 그것이 바로 아베노믹스의 비판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구조개혁이다. 그리고 이런 시장만능주의의 실패는 이미 증명됐다.



정작 일본에 필요한 것은 정반대로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가 내린 처방이다. 소득과 자산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으면 일본의 내수가 살아날 길은 없다. 특히 일본에서는 노년층의 부가 청년층으로 이전되지 않으면 안된다. 후쿠시마의 기억을 밑천으로 삼아 대대적인 에너지체제 재편을 한다면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일본의 빗나간 화살은 한국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일 중국까지 침체에 빠진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나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사실상의 ‘줄푸세’까지 겹치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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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한 시간 전이라는 다급한 메시지에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서 본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일본에 역전 당할 우려”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반일 의식이 충만한 우리 언론이니 내일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도 틀림없다. 요약하면 요즘 두 나라의 성장률이 나란히 가고 있는데 금년도 한은의 예측은 2.6%이고, 일본 쪽은 2.9%이니 1998년(한국 -5.7%, 일본 -2.0%) 이후 15년 만에 우리가 일본에 뒤질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이렇게 두 나라의 성장률이 유사해진 건 물론 엔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선거를 앞두고 아베 현 총리는 “윤전기를 돌려 화폐를 무제한 찍어내서라도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고 취임 후에는 20조2000억엔(239조7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경기 확대에 나섰다. 달러당 80엔이던 엔화가치는 이제 100엔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더구나 2월 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일본의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경기부양책에 공감하며,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없애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발언했고 한달 전 G20 재무장관회의는 이 발언을 추인했다.



미국이 자신의 불황 원인으로 일본을 지목해서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가치를 급하게 끌어올리고, 반도체협정을 강요해서 일본 반도체의 수출마저 가로막았던 때를 생각하면 가히 상전벽해 상황이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풀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강행한 일본은 반짝 회복을 맛본 뒤, 천문학적 거품이 꺼지면서 무려 20여년 동안 1%를 넘지 못하는 성장을 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다.


삼성반도체의 64KD램 반도체 20만개 첫 출하와 미국 수출을 축하하는 직원들 (경향DB)



한국의 1980년대 말 3저 호황과 반도체산업의 비약적 발전은 이런 외부 여건에 힘입은 것이었으며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의 임금 인상이라는 내수까지 부추겨서 우리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최고의 상황을 맞았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은 미국의 확대정책과 중국의 급성장에 힘입어 4~5%대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세계 3대 경제권이 모조리 장기침체에 시달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총수요를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긴축 정책론자들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남은 것은 일본 내수확대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상황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며 이제 우리는 지난 50년간 전가의 보도였던,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사고를 내다버려야만 한다.



이제 활로는 내수에 있다. 우리의 중산층은 집과 관련된 지출, 민간 보험, 그리고 사교육으로 소비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일 수밖에 없고 1995년경 이래 생산성 성장률을 밑도는 실질임금은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사교육비와 민간의료보험료의 주술을 풀어야 한다.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의 집을 정부가 사들여서 공공임대로 돌려야 한다. 대기업은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지만 돈만 대주면 투자의욕이 넘쳐 나는 중소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지난 대선 때 사실상 여야가 합의했던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가 경제회복의 길이다. 경제위기를 들어 임금을 더 옥죄고 의료나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며, 나아가서 토목건설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일본의 길을 갈 것이요, 그 반대로 위와 같이 한다면 우리는 어느덧 북유럽의 복지사회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오히려 우리는 일본을 확실히 추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경제민주화 설전 2인 (경향DB)



나아가서 세계의 총수요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5조달러를 훌쩍 넘어선 동아시아의 외환보유액을 공동 관리하고, 그 여유분을 역내에 투자할 수도 사용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총수요 확대를 위해 일본의 양적 완화를 용인한 것처럼 이 정책도 수용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과연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운명은 지난해 12월18일에 이미 결정난 것일지도 모른다.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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