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공동체경제발전운동(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 CED)"과 사회경제



세계화와 기술혁신은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도시와 농촌의 지역공동체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EU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는 지역 공동체 차원의 발전 전략이 모색되었다. 예컨대 앞에서 본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은 1990년대부터 3년 단위의 주민 참여 “협상 경제계획”(negotiated economic planning)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역사가 깊은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의식적으로 공동체 발전의 일환으로 사회경제를 발전시킨 캐나다 퀘벡지역, 그리고 이후 퀘벡을 모델로 한 캐나다 각지의 경험이 한국에 더 유용할 것이다.


캐나다의 실험은 공동체경제발전운동(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 CED)과 사회경제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CED의 초기에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CED는 별도의 조직으로(예를 들어 CDC와 같은 비영리기업을 만들어서) 다양한 성격의 사업을 해 나간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캐나다 전역의 CED를 연결한 CCEDnet를 결성했다. CED의 다양한 조직들, 여러 종류의 협동조합, 사회경제 조직들이 캐나다의 지역공동체를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Fairbairn, 2008).
 


“CED는 명시적으로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을 결합하는, 공동체 기초, 공동체 주도 전략이다. CED는 공동체의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그리고 문화적 복지를 지향한다. CED는 전통적인 경제발전 전략의 대안으로 탄생했다. CED는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 실업, 가난, 일자리 상실, 환경 파괴, 공동체 자치의 상실 등을 총체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CCEDNet)


CED는 개념 자체가 공동체 참여라는 전략을 표현하는 동시에 경제와 정치/사회를 구분하는 기존 발전 전략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사회경제와 친화적이다(Laville et.al.,2005). 한편 퀘벡지역은 1999년 “사회경제위원회”(Chantier de leconomie sociale)라는,정부가 포함된 사회경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구성했다(Fairbairn, 2008). 지방정부와 사회경제의 연합체(federation)가 체계적으로 사회경제를 발전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2004년 자유주의 정당 수상 폴 마틴은 “사회경제를 캐나다의 사회정책 수단의 핵심 부분으로 삼겠다...기업가가 강한 경제에 필수적이듯 사회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여 사회경제를 중앙정부 차원의 핵심 정책수단으로 삼았다. 이후 CCEDnet와 캐나다 협동조합연합(CCA)은 사회경제를 대표하는 두 조직이 되었다. 가히 “CCEDnet와 CCA의 연합은 캐나다 사회경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2007년에 퀘벡우파행동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선 뒤에도 사회경제의 지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Fairbairn, 2008).


CED와 사회경제의 결합은 결코 단선적인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수많은 작은 실험이 복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의 발전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의 유형은 공동체 수준에서 재현되는 과거의 경제성장전략이며 한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채택하고 있는 전략이다. 두 번째 유형은 한국에도 소개됐고 서울에서 일부 시행중인 사회투자국가론이 제시한 개인의 자산/능력형성 전략과 맞닿아 있는 패러다임이다. 세 번째 유형은 현재 캐나다가 도달한 사회경제와 공동체 중심의 발전 전략이다. 물론 현재의 CED에서는 세 유형의 발전 전략이 한 프로젝트 내에서도 동시에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처럼 사회경제의 형성이 미흡한 곳에서 세 번째 유형을 전격적으로 실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 발전의 원천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을 내부에서 찾아내서 공동체성원의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관점은 미국에서 “필요에 기초한 공동체 발전”에서 “자산에 기초한 공동체 발전”(Kretzman & McKnight, 1993)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사실을 거의 정확하게 반영하며 사회경제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사회경제와 공동체발전전략의 결합이란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의 구성요소들이 스스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표> CED의 세가지 발전 패러다임
 

 

발전 과정  

외생적 <--------------------------------------------------> 내생적 

 

 

 

경제시스템의 개혁에 초점 

(I 유형) 

 

개인의 경제적 능력 계발에 초점 (II유형)

그룹의 경제적 능력계발에 초점(III 유형)

CED는 경제성장의 수단

CED는 가난한 사람의 능력을 계발하여 자율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

CED는 개인과 집단이 권한을 강화하여 지역의 자원을 통제하도록 만드는 수단

공동체는 명확하게 행정구역으로 정의됨

 

공동체는 인구학적 차원을 포함하는 경향 - 누가 경제적으로 주변화했는가에 초점을 맞춤 

공동체는 스스로 정의됨 -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

 

자원의 사유화 

 

금융시스템 개혁 

 

외부 투자 유치 

확장된 서비스(extension service)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업가정신의 개발

 

공동체에 기초한 자원관리 

 

마을은행, 신용조합, 저축신용협동조합 

 

협동조합, 공동체기업 

 

Mathie & Cunningham, 2002.



여기서 공동체가 스스로 자산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캐나다에서도 각 공동체와 구성요소들은 크고 작은 기금을 형성하고 있으며 정부는 기본 기금을 형성하거나  매칭펀드를 부여하고, 또는 세제나 금융을 이용하여 공동체 자산 형성을 돕고 있다. 캐나다 퀘벡주의 노조 연대기금, 1억 달러 규모의 인내자본형성기금(patient capital fund), 공동체 대출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공동체의 자산 축적을 자본증식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유럽 전체의 현상이다(Laville et.al.,2004). 여기서 사회경제의 금융부문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에밀리아 로마냐 성공의 열쇠는 우니폴이라고 하는 거대한 보험회사와 조합기금(Coop Fund)라고 하는 대규모 투자기금이다”(ontario coops, 2008).


사회경제는 금융자본의 형성과 지역 재투자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경제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지역 공동체에 속해 있으므로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또한 신용조합 등 사회경제를 상대로 한 전문적 대출기관이 발전한다면 자연스럽게 사회경제는 지역재투자법의 역할을 한다. 사회경제의 이런 역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일부에선 지역화폐를 사용하기도 한다.


CCEDnet의 정의에도 나타나듯 공동체 발전 전략에서 생태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공동체 발전“(Sustainable Community Development, SCD)에는 로컬 푸드 운동과 지역  음식점, 소비자협동조합이 연계되어 있다(Soots & Gismondi, 2008). 퀘벡지역의 식품/에너지 협동조합, 시카고의 협동조합 시장, 디트로이트의 카스 코리도 협동조합 등은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지역의 자영업자, 소매상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저소득 계층의 소비자 선택권을 지키고 값싼 제품 공급을 가능하게 하였다(Zeuli & Radel, 2005, Wall et.al. 2004) 이들 협동조합은 지역공동체의 각종 발전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자 역할도 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종종 위기 때 최종 구매자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의 농업과 영세 제조업자들을 살려내기도 한다. 이런 결과는 공동체 정신이 발현된 것일 뿐 아니라 이들의 장기적 생존이 공동체의 발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사회경제는 풀뿔리 민주주의와 직결돼 있다. 결사체 민주주의(associative democracy)론의 핵심 이론가인 코헨이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는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Smith, 2005). 풀뿌리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가 사회경제인 동시에 사회경제는 민주주의의 학교이다. 공동체 발전계획을 주민 스스로 세우고 공동체 내의 자원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지역을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고 사회경제의 운영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사회경제는 민주주의의 미시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3. 한국의 사회경제를 위한 제언 - 맺음말을 대신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경제의 상황은 비참할 정도다. 단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에 명기돼 있는 협동조합의 존재도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풀뿌리 경제 운동을 통해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의 구성 요소들을 확충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체 차원에서 공동체 발전 전략을 수립하도록 촉구하여 성공 사례를 축적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법/제도 개정도 동시에 추구하여야 한다. 어떻게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어서 공동체 발전 전략의 수립까지 나아가느냐가 우선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국가주의 발전모델의 전통이 여전히 박정희 신화로 생생하게 살이 있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종주국인 미국보다도 더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사회경제를 어떻게 형성시킬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일단 사회경제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여야 한다. 물론 국가 차원의 복지도 OECD 수준에 도달하려면 매년 약 110조원의 예산을 필요로 할 정도로 빈약하지만, 밑으로부터 쌓아 올리는 공동체 복지도 동시에 추구하여야 한다.


캐나다나 이탈리아의 예에서 보듯이 노동조합 등 기존 진보운동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 기금 형성 등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역의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나 실업자들의 재훈련 사업에 노동조합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보듯이 지역의 사회경제(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은 서로 보완하며 발전한다. 우리와 역사적 맥락이 다르지만 스웨덴의 노동조합 조직율이 아직도 75%를 넘는 것은 겐트시스템 하에서 실업자 재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노조가 운영하기 때문이다. 한편 전체 제도 차원에서는 세박자 경제론의 세 영역이 보완적인 관계가 되도록 기본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농수축협 등 협동조합 형식의 거대 조직을 개혁해서 본연의 협동조합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앞에서 보았던 협동조합 네트워크도 조만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사회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 필수적인 사업, 즉 시장에서 공급할 수 없는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선 사회서비스 부문에 주력해서 가능한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육과 보육이 여성 고용과 출산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회경제가 협동조합 방식으로 이 분야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현재의 법제 상으로는 사회적 기업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시적 고용 정책으로 사회적기업을 보조하는 것은 그 목적 자체 때문에, 그리고 그로 인한 ‘나쁜 평판과 금융 제약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독일의 사례). 이명박정부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사회적 일자리 예산을 줄임으로써 막 발아하기 시작한 사회적 기업의 싹을 잘라 버린 것도 정부 예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사회경제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협동조합이 자조의 방식으로 사회경제를 구성해 나갈 수 밖에 없으며 동시에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자립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와 구조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당장 시작해야 할 과제이다.


한편 다우(Dow, 2003)는 노동자의 기업인수(buy out)를 사회경제 확대의 주요 수단으로 제시한다. 한국에서는 필요한 법과 제도가 없기 때문에 지극히 어렵지만 대규모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은 노동자의 기업 인수나 인수합병(Mosconi, 2008)에 의해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노동자가 기업인수를 할 수 있도록 임금채권에 대한 대출 등 법과 제도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사회경제는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경제는 노동운동과 결합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재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지역클러스터를 지원할 수 있다. 또 생태운동과 결합하여 유기농과 생협, 지역의 자영업을 연결할 수 있으며, 에너지 절약형 재건축 사업, 전국의 오솔길과 문화유적을 연계하는 생태관광, 문화사업도 할 수 있다. 한편 앞에서 제시한 법/제도의 제/개정은 기존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야 할 것이다.  평등과 연대, 생태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어우러져 삶의 질을 향상시킬 곳이 바로 사회경제와 그 터전으로서의 지역공동체이다. ‘진보의 재구성’을 진정 원한다면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곳이 바로 여기다. 도약하라!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