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딜레마와 그 해법 - 인간이 협력할 조건


(1) 사회적 딜레마


우리는 위에서 경제학자들이 외부성과 공공재, 독점 등을 시장실패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았고 스티글리츠는 이 세상은 ‘유사 외부성’으로 가득차 있으므로 시장은 원천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이기적 인간이 자신의 목적(수요곡선을 이루는 효용극대화, 공급곡선을 이루는 이윤극대화)을 추구하기만 하면 바람직한 사회적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통찰(위에서 본 바대로 그림은 아주 간단하고 그 의미는 강력하다)에 맞서 역시 단순한 하나의 게임이 위 가정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로 알려진 존 내쉬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의 해법을 제시하고 이것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열등한 해가 된다고 갈파한 것이다. 이 죄수의 딜레마는 “공유지의 비극”, “집단행동의 문제”, 즉 사회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기본 원리가 된다.


죄수의 딜레마외에도 공유지의 비극문제(공유자원), 위에서 나온 공공재의 문제,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집단행동의 문제가 모두 사회적 딜레마에 해당한다. 게임이론으로 보면 죄수의 딜레마, 사슴-토끼게임(루소), 그리고 치킨 게임이 이런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은 협력이다. 생물계와 인간 사회에서도 협력은 광범하게, 또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어떤 경우에 협력은 일어나는가?


(2) 협력 진화의 다섯가지 규칙


하버드대의 생물학 및 수학과 교수인 노박(Nowak, 'Five Rules for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Science", 2007, V314)은 협력이 진화할 수 있는 5가지 규칙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머니의 가이 없는 사랑’에서 찾았던 “혈연 선택”입니다. 꿀벌이나 흰개미,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광범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협력, 그것도 자신을 희생하는 협력의 많은 부분은 핏줄 때문이라는 거죠. 전설적인 생물학자 할데인은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면 1/2의 확률로 자신의 유전자를 살리는 것이고 조카를 구하면 1/8의 확률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직관적으로 금방 이해되는 주장입니다. 유명한 해밀턴의 규칙, b/c > 1/r가 적용됩니다. b는 협력이 가져오는 이익, c는 협력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 그리고 여기서 1/r은 우리 말로 치면 촌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입니다. 촌수가 가까울수록, 그리고 비용이 적고 이익이 클수록 협력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은 거죠. 그러나 현실에서 아주 친한 친구라도 촌수는 무한대일 겁니다. 그래도 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이 그렇게 반갑고 동향이라고 서로 돕는 건 혈연선택의 위력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둘째는 ‘직접 상호성’(direct reciprocity)입니다. 이 얘기는 우리가 단골의 예에서 찾은 겁니다. 앞으로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치면(무임승차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손해라는 얘기죠. 이미 이 책에서도 몇번 소개한 죄수의 딜레마를 잠깐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상대방이 자백을 하건, 아니면 비밀을 지키건 나는 자백을 하는 게 유리합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게 되니 둘 다 자백을 하게 되고 결국 협력의 이익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사교육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협력(우리 모두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얼마나 행복해질까요?)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을 무한히 반복한다면(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 협력하는 게 유리합니다.
즉 맞대면하는 관계에서는 다시 만날 확률(게임이 반복될 확률=w)이 협력을 결정합니다. 즉 b/c > 1/w라는 관계가 성립합니다. 역시 협력의 이익이 크고 비용이 적다면, 그리고 게임이 반복될 확률이 충분히 크면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협력을 하는 게 유리합니다. 즉 이기적이기 때문에 협력을 하는 셈입니다. 트리버스라는 유명한 생물학자는 이런 관계를 ‘상호적 이타성’이라고 불렀죠. 부품 업체와 장기 거래를 하고 경기가 나쁘다고 바로 해고를 하지 않는 과거의 일본 기업가가 대충 여기에 해당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 가장 적합한 전략은 전에 소개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TFT)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모두 협력을 하는 관계가 되면 그 다음은 그냥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요? 만일 집단 안에서 이기주의자가 생기거나(돌연변이) 밖에서 들어온다면(침입)? 이번 달의 첫 번째 문제입니다.


셋째는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입니다. 사실 우리가 두 번 이상 만나는 사람이 도대체 몇명이나 될까요?  그렇다면 직접 상호성에 의해서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협력을  설명하는 건 아주 제한적입니다. 항상 남을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도움을 주고 싶을 겁니다. 또 어떤 이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곧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겠죠(안 그러면? 나쁜 놈이죠) 이런 협력이 일어난다면 그건 평판, 명성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간접 상호성은 주로 평판에 의해 유지된다는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눈도 늘 의식하고 우리가 술자리에서 하는 ‘뒷담화’(gossip)는 곧잘 어떤 사람에 대한 태도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평판을 좋게 유지하는 게 유리합니다. 말하자면 쓰리쿠션으로 협력을 자아낸다고나 할까요? 이 경우도 역시 자신의 장기 이익과 관련되어 있는 셈입니다. 간접 상호성이 협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b/c > 1/q (q는 상대의 평판을 정확히 알 수 있는 확률)를 만족해야 합니다. 결국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정확히 알려져 있는 사회에서 협력이 일어납니다.
 

                              경향DB


여기서 질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누굴 만나건 늘 협력을 하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이타적인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평판은 어떨까요? 물론 좋겠죠. 그러나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숨쉴 공간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무임승차자에 대해선 TFT 전략대로 무임승차로 응징하는 게 올바른 행동일까요? 그런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또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아무런 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얘긴 모든 사람은 나머지 모든 사람과 같은 확률로 만나서 협력을 할 것인지, 무임승차(배반)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실험들도 역시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채 만납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듯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지지 정당이 확연히 다릅니다(다행히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만). 이제 이렇게 사람들이 끼리 끼리 모여 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집단 차원의 선택이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게 오늘 할 얘기입니다.


네 번째 규칙은 네트워크 상호성(network reciprocity)입니다. 최근 최정규교수의 논문에서는 ‘국지적 상호작용’이라고 옮겨 놓았습니다(최정규, 양재석, 조항현(2006), “구별짓기와 협조적 공진화”, 제1회 복잡계 컨퍼런스.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는 충분히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유유상종”이 유사한 현상입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 처럼 협력자와 무임승차자가 골고루 섞여있는 사회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다면 무조건 무임승차자가 이깁니다. 그러나 현실의 공간 구조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정상입니다.


이런 공간구조의 분석은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지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분석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간단한 몇가지 가정을 한 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네트워크 외부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고루 섞인 상태에서는 완전히 소멸할 수 밖에 없었던 협력자들이 네트워크 클러스터를 형성해서 살아남고 그 클러스터의 힘을 바탕으로 무임승차자들의 영역을 정복해 나갑니다. 협력자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당연히 이익이 크고 남한테 당하는 착취는 없을테니까요.


여기서 관찰되는 규칙은 또 다시 b/c>k (k는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평균)입니다(수학적으로는 모집단이 크고 약한 선택이 일어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즉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을수록 협력은 촉진됩니다. 조금 이상한 얘길 수 있지만 거꾸로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모든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곧 골고루 섞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니까요.


제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지 못하고 이 쪽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그렇지만 이 네트워크 상호성은 일반적인 산업 클러스터 이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하려 한다든가,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 이미 형성된 공동체에 들어 간다든가 몇 명이 같이 움직인다든가 하는 것이 아마도 여기에 해당될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어쩌면 미국보다도 더 무임승차자로 가득찬 사회인데 이 곳을 떠나서 어디 괜찮은 사람끼리 모여 살 수 없을까, 가끔 꿈구는 것도 이 네 번째 협력 규칙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섯번째입니다. 집단 선택이라는 겁니다. 골고루 섞여 있는 한 집단 내에서 협력자들은 소멸합니다. 또는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무임승차자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협력자들로 이뤄진 집단이 있다면 이 집단은 무임승차자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적합도(fitness)가 높을 겁니다(요즘 용어로 경쟁력이 높을 겁니다). 예를 들어 희생정신이 강한 투사들이 모인 스파르타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즉 여기서는 두 차원의 선택이 일어나는 겁니다. 집단 내 선택(저차원)에서는 무임승차자가 생존하지만 집단 간 선택(고차원)에서는 협력자들이 유리합니다. 만일 집단 내에서는 협력자가 지지만 협력적 집단이 승리한다면 전체적으로 협력자들이 더 많은 사회가 될 수도 있겠죠.  이론 모형에서는 빠르게 성장한 집단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분화하고 뒤쳐진 집단이 소멸하는 걸로 설정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대 사회처럼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없애는 경우도 상정할 수도 있고, 현대의 상황이라면 어떤 집단이 협력자 집단을 흉내낼 수도 있겠죠. 현실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끼리 끼리 모여 살 수 있다면(assortation, 최정규교수는 유유상종으로 번역) 집단 선택은 현실에서도 관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약한선택과 희소한 집단 분화를 가정하면 또 다시 앞에 나온 네 공식과 유사한 b/c > 1+(n/m) (n은 집단의 최대 크기, m은 집단의 수)이 성립합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한 집단의 평균 인구가 적을수록 협력이 잘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것도 거꾸로 유추하면 이해됩니다. 한 집단의 평균 인구가 제일 큰 경우는 모두가 한 집단인데 이건 협력자가 소멸하는 상황과 똑같으니까요.


(3) 정리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서 인간이 협력할 조건을 임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든 규칙의 좌변에 나온 b/c부터 보면 당연히 b가 클수록, 또 c가 적을수록 협력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집니다. 즉 협력자로부터 여러 사람이 얻는 이익이 클수록, 그리고 협력자가 치르는 희생이 적을수록 협력 행위가 많아지는 거죠.


다음 우변을 보면 차례로 피가 많이 섞일수록(싸이나 블로그의 촌수도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게임이 반복될 확률이 높을수록),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져 있을수록(만날 사람이 협력자인지 무임승차자인지 잘 알 수 있을수록),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집단의 구성원이 적어서 협력자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을수록 그 사회는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또 하나, 이런 논리적 추론에 따르면 완벽하게 협력자들로만 이뤄진 아름다운 세상은 또한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사회에 돌연변이나 이주(migration)에 의해서 무임승차자가 나타나는 순간 또 다시 세상은 이기적 인간으로 가득찬 무한 경쟁의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위의 규칙과 다른 여러 특성을 반영해서 사회의 규범, 법률, 제도가 잘 만들어진다면 협력적인 사회가 꽤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도 있을 겁니다. 다음 달에는 협동조합 중소기업 위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 관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의 경제학’(이 말 자체가 이 지역인 볼로냐 대학의 자마니 교수가 쓴 용어입니다)이 이뤄진 사회라고나 할까요?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은 무궁무진합니다. 만일 그 답이 있다면 신학과 철학은 이미 없어졌겠지요^^. 사실 우리가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더라도 어찌 인간과 역사를 꿰뚫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무지,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이 출발점입니다.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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