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

좋은 삼성 만들기 2011.03.08 16:39

* 이 글은 이번 주 시사인에 실렸습니다.

참척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참척(慘慽)이라는 게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 고통을 이렇게 토로했다. “자식을 앞세우고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전쟁 영웅 이순신장군도 다를 바 없다. “하늘이 이다지도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것은 이치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죄를 지어서 그 화가 네 몸에까지 미친 것이냐?” 전 세계를 뒤흔든 서양의 천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은 휑하고 황폐해졌다. 아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이 집의 생명이고 영혼이었다” “내 아이의 죽음은 나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나는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예리하게 아픔을 느낀다. 내 불쌍한 아내는 완전히 무너졌다”(마르크스)



여기 또 하나의 참척이 있다. 지난 월요일 김명복씨는 아이를 냉동고에 둔 채 49재를 맞았다. 잊어야만 할 고통을 외려 부여 안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리도 모질게 만들었는가.

키가 186cm나 되는 스물 여섯의 고 김주현은 1월 11일 6시 44분 흑빛 새벽에 자살했다. 그가 근무했던 삼성전자 탕정기숙사 13층에서 떨어졌다. 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우울증으로 2개월의 병가 뒤 복귀한 바로 그 날이었다. 주치의는 5개월의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회사는 병가휴직이 최대 2개월이라고 대답했다. 6시 14분, 창문 턱에 걸터 앉아 있던 그를 발견한 안전요원은 그저 방에 데려다 주었을 뿐, 1분 만에 바로 철수했다.

 바로 일주일여 전인 1월 3일에도 투신 자살이 있었다. 그 이전에도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탕정공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아이는 “12시간 근무=기본”이라고 노트에 썼다. “1년은 나 죽었다”라는 메모도 있다. 사실상 2조 2교대 하에서 14시간에서 16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설비 엔지니어가 없어서 퇴근할 수도 없었고 밥도 제 때 목먹었다. 자다가도 부르면 나가야 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나 북한의 어느 공장 얘기가 아니다. 작년 매출 153조7,600억원, 영업이익 17조2,800억원에 빛나는 세계적 기업 삼성의 이야기다. 아마도 합격 통지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을, 바로 그 기업의 이야기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은 사건 발생 1시간이 지나도록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휴먼 삼성”은 김명복씨를 근처 모텔로 데려가서 “1년 연봉 2760만원과 퇴직금, 그리고 위로금을 주겠다”고 했다. 함께 울고 웃었을 김주현의 동료들은 인솔자를 따라 조를 짜서 조문을 왔고 금세 돌아갔다. 경찰은 사망한지 5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수사 중이고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 위반 내용을 조사만 하고 있다. 취업규칙이 영업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을 정도이니 “글로벌 삼성”에 노조가 없는 건 불문가지다.

 “초일류 삼성”은 참척을 양산했다. 클린룸에서 방진복을 입고 화학약품을 다루던 김주현은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삼성전자, 삼성LCD, 삼성전기에 근무하던 젊은이들 중 46명이 백혈병 등 암이나 다른 희귀병으로 사망했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이나 유해요인도 “기업의 영업비밀”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니 역학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모든 산재신청을 기각했고, 가족들이 억울해서 제기한 행정소송에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삼성 쪽 변호사들을 불렀다.

김명복씨의 요구는 단 하나다. 과실 책임을 인정하고 공개사과하라는 것이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이 눈꼽만큼의 예의도 없다는 말인가.

역시 참척의 고통을 당한 에릭 클랩튼은 이렇게 흐느꼈다.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니? 언제나처럼 변함 없을 거니?”(천국의 눈물) 우리 아이들이 천국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참척이 계속되도록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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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