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노미. 교수신문 선정 올해의 사자성어라는데, 직역하면 ‘머리는 감추고 꼬리는 드러낸다’는 뜻이다. 원전에서는 타조가 주인공이라지만 우리로 치면 꿩이 제격이다. 매의 눈을 보면 꿩은 혼비백산하여 머리만 땅에 박는데, 매는 그 때문에 훨씬 더 쉽게 목적을 달성한다.

기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큰 시련을 맞으면 우리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곤 한다. 암선고를 받았을 때 보통 사람의 맨 처음 반응이 그렇고, 그토록 사랑하던 그 또는 그녀가 이별통고를 했을 때 우린 또 어떻게 행동하는가?

교수들은 4대강 논란, 천안함 침몰, 민간인 불법사찰, 이른바 영포 논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을 예로 들었다. 진실의 외면이라는 점에서는 ‘장두노미’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데, 정말 현실이 공포스러워 정부가 그랬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실을 호도하고 오히려 남에게 뒤집어씌운다는 점에선 ‘지록위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내 생각에 정부뿐 아니라 경제학자를 비롯한 지식인 대다수가 ‘장두노미’하고 있는 건 따로 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대침체’(Great Recession)가 바로 그렇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모두 침묵

우린 과연 꿩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2008년 11월에서 2009년 9월까지 1개의 면을 털어 연재했던 경향신문의 역작 ‘세계금융위기 이후’를 지금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 ‘효율시장이론’(현실의 가격은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버블이란 존재할 수 없다)의 파탄에 대해서 반성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매가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해서 머리 박은 꿩의 목숨이 보전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거부한다 해도 시스템 위기의 공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서울을 그저 지나간 G20의 금융거래세, 은행세, 새로운 국제통화체제 논의란 결국 시장의 거대한 비효율을 어떻게든 조절하려는 노력이다. “환율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허세는 ‘장두노미’의 변종에 속하지만 지난 봄의 선물환 규제(선물환 포지션 한도)와 며칠 전의 일종의 은행세(거시건전성 부담금) 도입은 급격한 자본이동에서 오는 시스템 위기를 막으려는 귀중한 정책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제관료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정책이 나온 배경이 자못 궁금하지만 어쨌든 당장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되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들 정책은 모두 한·미 FTA 제13, 14조(금융기관에 대한 시장접근)에 저촉된다. 한·미 FTA는 원칙적으로 모든 수량규제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통상교섭본부는 한·미 FTA의 건전성 사유의 예외를 들어 문제없다고 하겠지만 그 조항 말미에 “이러한 조치는 그러한 규정상 당사국의 약속 또는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자기취소’(self cancelling)가 붙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건전성 부담금이 외국계 금융기관에 불리하게 부과될 경우 명백히 내국민 대우 위반이 된다. 지난 10월에 도입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환원조치 역시 충분히 투자자·국가 제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된 상태였다면 공무원들이 이런 정책을 지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가 바로 그렇지 않은가?

‘급격한 자본이동’ 시스템 불안

2007년 4월 체결된 한·미 FTA는 금융위기 이전, 시장만능의 신앙을 담고 있는 초헌법적 경전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신앙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미 FTA의 조속 비준을 외친다면 ‘장두노미’가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가 또 어디에 있으랴. 시스템 위기 방안을 나름대로 충분히 마련하고 G20의 결론을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꿩도 정신을 차리면 매를 잡을 수 있다.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