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저널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21일 534명의 지식인이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인사 선언”을 했다. 이들의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삼성전자 계열사에서 백혈병, 뇌종양, 난소암, 루게릭병 등 희귀병 피해제보가 104건 있었고 이 중 35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삼성이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삼성의 작업환경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게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해야 할 산업안전보험공단은 자료를 모두 공개하지 않았고 삼성은 기업 비밀 보호를 이유로 작업과정에 사용한 화학물질마저 밝히지 않고 있다. 같은 라인, 같은 업무를 맡았던 두 노동자가 똑같은 암에 걸렸어도 그 공장 엔지니어팀의 4명 중 3명이 희귀병에 걸렸어도 그저 우연일까?

삼성은 1980년대 초반에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었고, 1980년대 말 미일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이 주춤할 때 급성장했다. 반도체가 탄생한 곳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이다. 그럼 미국은 어땠을까? 1981년 실리콘 밸리에서 이미 수질오염 사건이 일어났고 1985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당시 유산과 선천성 기형아가 증가했다고 인정했다. 1985년 산호세 IBM 연구센터에서 일하던 화학자 개리애덤스는 동료연구원 12명 중 6명이 암에 걸렸고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의심스럽다는 편지를 IBM 회장에게 보냈다. 루이스 거스너 회장은 “유감스럽게도 암은 미국 성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흔한 병 중 하니다. 근무환경과는 무관하다”고 답변했다.

1990년대에 이미 50건 이상의 IBM 관련 산재 소송(캘리포니아 노동자 보상 시스템)을 진행하던 아만다 허즈(이하 맨디)라는 여성 변호사는 2003년 IBM의 두 노동자를 대리해서 민사소송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IBM이 1969년부터 2001년까지 기록한 “IBM 기업 사망 파일”이 공개됐다. 보스톤 대학교의 역학자 클랩교수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이 글은 후일 “미국 거대 컴퓨터 제조회사의 노동자 사망”이라는 논문으로 발표됐다). 결론은 컴퓨터,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된 여성노동자는 폐암, 위암, 유방암에, 남성노동자는 뇌암에 걸릴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맨디는 패소했다.

2003년 12월 10일 CBS는 이런 사실들을 기초로 "60분 II"에서 "빅블루(IBM)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를 방영했다. 결국 IBM은 클린룸의 대부분 공정을 자동화했고 염화메틸렌, 글리콜 에텔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개리애덤스가 근무하던 빌딩이 폐쇄했으며 유해한 공정은 해외로 이전됐다. 노동자들은 산재보험금을 받았다. 아직도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맨디의 끈질긴 추적과 CBS의 공영성이 IBM을 일단 굴복시킨 것이다.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용기를 낸 삼성 노동자 16명이 산재 신청을 했지만 심사를 한 9건이 이미 기각됐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다. 작업환경과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 없다면 일단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서 따지는 것이 옳다. 암과 같은 희귀병은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누가 보험금 타먹으려고 일부러 암에 걸릴까?

국민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서 이건희회장을 사면하는 정부라면 똑같은 이유로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보상하고 더 이상 이런 죽음을 용인해선 안된다. 암에 걸릴 개연성이 높은 공정을 최신의 안전한 공정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초일류 삼성’, ‘기술의 삼성’이란 소리를 들을 자격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러려면 우선 삼성이 진실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한영애의 거친듯, 시원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하네/ 나와같이 누구 아침을 볼 사람 거기 누구 없소/ 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주/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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