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일(7일) 범국본 한미 FTA 긴급토론회에서 발표할 글입니다.



세계금융위기와 한미 FTA

정태인(경제평론가)

세계금융위기, G20와 한미 FTA



2008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우리 경제와 금융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며 “한미 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며 은연 중 재협상까지 암시했다. 그렇다. 원래 청와대의 뜻대로 2006년 말에 비준까지 완료됐다면 2007년에 월스트리트산 파생상품이 물밀듯 들어왔을 것이고 미국발 경제위기의 쓰나미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삼켜버렸을 것이다. 미국에서 생긴 신상품은 네거티브 리스트 원칙에 의해 한국 시장에도 직수입된다. 물론 우리의 금융위원회가 시스템위기를 고려하여 규제를 할 수 있지만 미국 금융당국이 하지 않은 규제를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금융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4년간 되뇌고 또 목이 터져라 외친 것처럼 한미 FTA의 본질은 미국식 법과 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것이다. 미국의 FTA 전략을 성안한 로버트 졸릭(현 세계은행 부총재)의 말대로 미국의 FTA는 단순한 관세 협상이 아니라 상대 국가의 규제완화, 민영화를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한미 FTA 협상 개시 직후 발표된 미의회의 CRS 리포트에도 정확히 기술되어 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1호)에서 “한미 FTA는 미국의 선진적인 법과 제도를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과 민주당 등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다고 선언한 정당들,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의 죽음으로 엄청난 이익을 본 정치인들은 이 유지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우려대로 한미 FTA 찬성론자들이야말로 세계금융위기가 한미 FTA의 금융부문과 서비스 분야에 대해 의미하는 바를 꼼꼼히 짚어 보아야 한다.

미국의 그 선진적 법과 제도가 붕괴한 것이 세계금융위기이다. 즉 한미 FTA의 목표인 미국식 법과 제도의 수용, 특히 금융 산업의 미국식 자유화가 파국적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G20에서 금융분야 규제의 강화가 논의되는 것도 바로 미국식 금융제도가 어마어마한 파국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와 미국 재무부의 저항과 물타기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거시건전성 규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인식 때문이다. 나아가서 더 근본적인 개혁인 새로운 통화체제, 은행의 규모를 제한하는 은행세, 자본이동에 제약을 가하는 금융거래세를 채택할 것인지는 내년 파리 G20에서 가부간 결판이 날 것이다.

한미 FTA 금융분야에는 이런 모든 재규제, 또는 규제강화를 가로막는 조항들로 가득차 있다. 우선 한미 FTA 금융 분야의 각 조항은 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금융거래에 적용된다. 13.1조 3항에 공적퇴직연금제도와 법정 사회보장제도는 예외로 하고 있지만 위의 “모든 활동 및 서비스를 공공기관 또는 금융기관과 경쟁하여 수행하도록 허용하는 한도”에서는 금융챕터의 각 조항이 적용된다. 결국 “민간 의료 보험의 확대”처럼 정부가 자발적으로 민영화하는 만큼 미국 금융기관이 참여가 당연히 보장되고 이에 따라 한미 FTA의 적용대상이 넓어지는 것이다.

제13.4조(금융기관에 대한 시장 접근)는 G20의 논의 중 대마불사를 막기 위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 규제와 경기증폭성(procyclicality)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원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즉 수량쿼터, 독점, 배타적 서비스 공급자, 또는 경제적 수요 심사의 요건과 관련없이 금융기관의 수, 거래 또는 자산의 총액, 금융서비스 영업 총수, 금융서비스의 총 산출량, 금융서비스 공급에 필요하고 직접 관련되는 자연인의 총수, 서비스 공급 수단에 대한 여하한 규제도 금지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한미 FTA는 모든 수량규제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G20에서 어떤 수준의 합의를 하느냐에 따라 “최소기준대우”의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이를 넘어서는 조치를 포함하여 사실상 모든 규제가 투자자 국가 제소권의 대상이 된다.

네가티브(예외목록) 방식 개방(p1023), 외환보유요건 추가 자유화, 예외(금융건정성 등을 목표로 한)의 제한(p990) 등도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G20에서 광범하게 논의되고 있는 건전성 사유 규제의 경우 "... 건전성 사유로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금지되지 아니한다. 그러한 조치가 이 항에서 언급된 이 협정 상의 규정과 합치되지 아니 하는 경우, 이러한 조치는 그러한 규정상 당사국의 약속 또는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여서는 아니된다"(p990)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대표적인 ”예외의 제한“으로 투자자 국가제소권이 발동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특히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외환시장이 협소한 한국의 경우 긴급한 자본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2002년 자본통제 조치가 무려 40건의 소송에 휘말린 것처럼 분쟁의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정부는 금융분야의 일시적 세이프가드조치를 유보받은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랑하지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 세이프가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언세이프가드(unsafeguard, 불안한 보호)라고 할 만하다. 예컨대 이 조항에 의거하여 위기 시의 자본통제를 실시할 경우 “미합중국의 상업적. 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것”(부속서 11-사 송금 마항), 또 “모든 제한된 자산에 관하여 대한민국에서 시장수익율을 획득할 수 있는 투자자의 능력을 달리 방해하지 아니할 것”(부속서 11-사, 송금 라항)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1) 경상거래를 위한 지급 또는 송금 2)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은 “일시적 세이프가드의 예외사항“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산업무역자문위원회 보고서(ITAC 10)는 세이프가드와 ‘수용’ 상의 “미미한 제약”은 이러한 조항을 이용하여 투자자국가제소권(ISD)에 의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금융분야에도 비합치조치 조항이 있다(제13.9조). 다항은 비합치조치의 개정이 그 직전에 존재했던 합치성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규정이다. 즉 현재 한미 FTA에서 유보된 사항이라고 할지라도 그 이전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경우 한미 FTA 위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G20에서 논의되고 있는 규제강화는 현재 유보 사항이라고 할지라도 한미 FTA를 위반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에서부터 추진됐던 자본시장통합법과 보험업법 개정을 완수했다. 자본통합법은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1999년의 그램-리치-브릴리 법(Gramm-Leach-Bliley Act)의 한국판이며 보험업법 개정은 미국식 의료제도를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금융위기와 미국 의료법 개정의 실패를 보면서도 이러한 시대착오적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이런 ‘자발적 민영화’와 한미 FTA가 만나게 되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복지에 대한 열망은 헛된 꿈이 되고 만다.

G2와 한미 FTA

금년 봄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이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한미 FTA 비준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다. 더구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미국의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출동했고 한국은 이 비용도 치러야 한다. 언젠가 밝혀지겠지만 젊디 젊은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엉뚱하게 미국의 횡재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 결과는 우리가 이 비용을 치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 역시 세계금융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의 예측보다 빨리 미국과 중국 간 G2의 세계가 열렸다. 경제위기에 빠져 달러 패권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지금 미국은 거의 모든 사안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 대한 절상 압력이 여의치 않자 미국은 서울 G20 직전에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조치를 취했고, 그 결과 모두 절상압력을 받게 된 다른 모든 나라가 미국을 고립시켜 18:2가 된 것은 현재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살 길은 중립을 표방하며 캐스팅 보우트를 쥐는 것 뿐이다. 그런데 경제와 외교안보 양 면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길을 택한 것은 앞으로 중국과 대립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럴 경우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개선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는 북한은 현재의 상황을 ‘치킨 게임’으로 인식하여 연평도 사건을 일으켰다. 치킨게임에서는 ‘미친 놈’이 이기기 때문이다. 연평도 사건은 “미친 놈”과 “바보”의 싸움을 보여주었다. 정부여당은 스스로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도록 게임을 설계했다. “천안함 국제사기극”이 바보극의 제1막이었다면 연평도 사건은 제2막이다. 3막이 또 남았다. 그리고 한미 FTA 재협상 결과가 3막이다. 앞으로도 2년이나 남았으니 이 바보극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의 결과

한미 FTA에서 한국 정부가 가장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하는 자동차 분야 역시 미국의 요구를 거의 100% 들어 준 것이었다. 3,000cc 미만 자동차의 2.5% 미국 관세 철폐를 얻어낸 대가로 한국이 약속한 것은 8%인 자동차 관세 인한 뿐 아니라 세제개편, 환경기준 완화, 자동차 표준협력반 설치, 그리고 스냅백 조항이다. 스냅백이란 “협정위반 또는 관련 이익을 무효화하거나 침해하고 심각하게 판매, 구입, 유통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정할 경우” 6개월 내에 관세 장벽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했으며 정부의 비위반제소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재협상은 정부가 자화자찬했던 3,000cc 이하 자동차에 대한 미국측 관세 2.5%의 즉각 철폐를 4년 후로 미뤘다. 뿐만 아니라 촛불이 겨우 막아 놓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도 자유화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2월에 발간된 미의회의 CRS 리포트((Cooper et. al., The Proposed U.S.-South Korea FTA : Provision and Implication)는 앞으로의 쇠고기 수출은 “한국 소비자의 신뢰 회복”과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소비자의 구매력”에 달려 있다고 요약하고 있다. 즉 이미 민간 수출자율규제 형태로 되어 있는 현재 협약 내용을 별도로 고칠 필요는 없다. 소비자의 신뢰 회복을 이유로 더 풀라고 요구하면 그만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 역시 규제를 푸는 방식(예컨대 곱창의 검사 방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조용히 수용할 것이다.

이제 야5당은 총력을 다해서 한미 FTA 비준을 막아야 한다. 2012년 대선까지 야5당 등 범야 진영은 외교안보, 통상분야의 대안을 마련해서 ‘정치연합’의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 20-30년간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한미 FTA 비준은 나라 전체를 크나큰 위기에 빠뜨리는 역사적 과오다.

현재 세계는 대전환을 맞고 있다. 아무리 협소하게 해석한다 해도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수정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미 FTA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특히 금융자유화가 파탄을 맞기 일보직전에 체결됐다. WTO+, 황금의 FTA로 불릴만큼 가장 지독한 금융자유화, 민영화를 담고 있다. 한미 FTA는 역사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초헌법적(supra constitutional) 정책일 뿐 아니라 미중 대립이라는 구도 속에서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내몰 것이 틀림없다. 백보, 천보 양보해도 G20의 결과와 WTO체제의 수정이 이뤄질 때까지 만이라도 한미 FTA 비준을 보류해야 한다.

<참조> 주요 거시건전성 정책(규제) 수단

규제 영역

규제 수단

주요 내용

비 고

자본

규제

경기대항적 완충자본

(capital buffer)

- 경기호황시 추가자본을 적립토록 하여 과도한 신용확장을 억제시키고 금융위기시 동 자본을 손실보존, 대출재원 등으로 사용

G20,BIS 논의

레버리지규제

- 위험가중자기자본규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위험가중치를 부여하지 않은 자기자본(TierI) 대비 레버리지 총량을 규제(난외거래 포함)

시스템리스크 추가 자본규제

(system risk surcharge)

-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에 대해 추가적인 자기자본 적립의무를 부과

동태적 충당금규제

- 미래의 예상되는 손실에 대해 충당금 적립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과도한 신용확장을 억제

신용

규제

LTV 규제

- 특정대출유형에 따라 담보인정비율(LTV), 담보가치할인율(haircut ratio), 담보요구(margin call) 등을 신축적으로 부과함으로써 주택담보대출 등의 과도한 확장을 억제

각국의 전통적

규제수단

DTI 규제

- 부동산대출 등 특정대출에 소득대비 대출한도를 부과함으로써 주택담보대출의 과도한 확장을 억제

위험가중치

부과

- 특정대출에 위험가중치를 다르게 부여하여 대출한도 등을 설정하거나 규제자본을 부과함으로써 특정부문의 과도한 신용확대를 억제

유동성 / 시장

위험

LCR(Liquidity Coverage ratio)

- 위기시 순현금유출액 만큼 자산의 가치손실이 적은 상태로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현금, 중앙은행예치금, 국채 등)을 보유하도록 규제

G20,BIS 논의

NSFR(Net Stable Funding Ratio)

- 필요시 자금조달액 만큼 안정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자금조달 금액을 사전에 충분히 마련토록 규제

외화대출 규제

- 과도한 외화자금의 유입 및 국내 신용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외화대출의 용도를 해외사용 등으로 규제

신흥시장국의

외환건전성 규제

통화불일치 규제

- 통화불일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외화차입, 대외자산 운용 등을 규제

외환포지션 규제

- 환율변동의 시장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순외화자산의 매입 또는 매도초과가 과도하게 발생하지 않도록 외환포지션을 규제

자료 : CGFS(2010)을 일부 수정 보완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