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번 주 피디저널에 실릴 예정입니다.


미친놈과 바보의 게임

정태인(경제평론가)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것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미친 짓’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미친 짓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때도 있다. “치킨 게임”(또는 “매-비둘기 게임”, “눈더미게임”)이라면 그렇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짐(제임스 딘)과 버즈는 주디(나탈리 우드) 앞에서 자신의 용감을 증명하기 위해 절벽을 향해 나란히 질주한다. 아이들에게 그 짓이 얼마나 절박한지 몰라도 어른, 또는 제3자가 보면 분명 미친 짓이다. 만일 똑같은 조건이라면 잃을 게 많은 쪽이 먼저 핸들을 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관련 현황보고를 받기 위해 지휘통제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진짜 미친 놈이거나 상대방이 “저 미친 놈”이라고 혀를 내두르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70년대의 핵무기 경쟁 때 닉슨은 “미친 놈”이라고 욕을 먹자 “미친 놈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내 전략”이라고 대답했다.
군비 경쟁, 나아가서 무력 경쟁을 한다면 거의 100% 한국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잃을 것이 많다. 전쟁 개시와 함께 발사된 북한의 포탄에 서울 인구 100만명 정도는 희생될 것이다.

북한이 초토화되고 김정일정권이 무너진다 해도 이것은 이긴 게임이 아니다. 설령 중국이 참전하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이런 게임을 만들어 놓았다면 당연히 ‘미친 놈’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지금 조중동 등 수구언론의 주장이 그러하다.

사춘기 철부지 정도의 정신연령에 머물러 있는 조중동이야 그렇다 쳐도 설마 한 나라를 운영하는 집단이 이런 게임을 유도했을까?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표방한 대북정책의 지침은 ‘상호주의의 원칙’이다.
그렇다면 원래 이들의 대북정책은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정말 그랬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악셀로드의 유명한 실험이 증명했듯이 이 게임에서 최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이다.

상대방이 직전에 한 행동을 따라 해야 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아니 정확히 얘기해서 이긴다기보다 지지 않는다. 일단 선의(협력)로 시작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우리도 배반(협력의 중지 또는 무력경쟁)하는 것이다.

단 배반과 대결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쪽 다 패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선 어느 순간 다시 협력을 선택해야 한다. 현실에서 이런 전술의 반전은 여유 있는 쪽에서 결행할 것이다. 지속적 대결에서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여당은 “선에는 선”을 잊어버린 듯 오로지 배반을 선택했다. 이제 협력으로 얻을 게 별로 없는 북한은 ‘미친 짓’을 선택한다. 북한은 현재의 상황을 치킨 게임으로 인식한 것이다. ‘미친 짓’ 중 가장 비용이 적은 선택이 핵개발이다. 연평도 포격은 ‘미친 짓’ 좀 봐달라는 ‘미친 짓’이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더 나은 것이 사슴사냥게임(Stag-Hunt game, 또는 Assuarance game)이다. 이 경우는 협력에서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한번 좋은 균형에 도달하기만 하면 더 이상 배반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게 게임을 설계해서 양쪽 모두 배반할 이유가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대북정책의 뼈대가 그러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저비스(R. Jervis)는 저 유명한 "안보 딜레마 하에서의 협력“이라는 논문에서 국제정치란 안보딜레마 등의 제약이 걸린 사슴사냥게임이라고 갈파했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상황을 보아도 이런 정책기조는 불가피하다. 이미 G20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적어도 앞으로 몇 십년은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또 대결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엄정 중립이어야 한다. G2의 이 대립은, 우리가 어떤 게임을 선택한다 해도 그 뒤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절대적 환경이다. 북한의 배반을 응징하기 위해 봉쇄정책이나 군비경쟁을 강화한다 해도 중국이 존재하는 한 별 효과가 없다. 결국 죄수의 딜레마게임이나 치킨 게임으로는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더더욱 우리는 협력 게임을 선택해야 한다. 양쪽이 찢어지면 미중 대립의 앞잡이가 되고 결국 민족적 비극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연평도 사건은 “미친 놈”과 “바보”의 싸움을 보여주었다. 정부여당은 스스로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도록 게임을 설계했다.

내 보기에 “천안함 국제사기극”이 바보극의 제1막이었다면 연평도 사건은 제2막이다. 3막이 또 남았다. 재협상에 들어갔다는 한미 FTA가 그것이다. 언제 이 바보극은 끝이 날 것인가? 아직도 2년이나 남았다.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