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G20에서 “역사에서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중요한 역사적 일”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맞다. 나는 10월 22일 “이명박대통령의 역사적 사명”이란 글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을 썼다.

“우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미중간의 환율전쟁에 섣불리 개입해서는 안된다. 유독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만 환율조작이라고 말하려 한다면, 전 세계 통화를 모두 절상시킬 것이 틀림없는 미국의 달러 증발(QE)은 왜 환율조작이 아닌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인민폐(위앤화)를 20% 내지 40% 절상한다고 해서 미국의 경상적자가 해소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무려 15년에 걸친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가 과연 미국의 경상적자를 줄였는지, 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환율문제를 해결하겠노라 공언했고, 결과는 물론 실패였다.



<그림1> 중국과 일본의 대미국 무역수지
MaKinnon, Schnabl, The Case for Stabilizing China's Excange Rate, 
China and World Economy, 2009에서 재인용


위 그림을 보자. 미국이 플라자협정부터 약 15년간 엔화를 100% 이상 급속하게 절상시키는 등 일본 때리기를 했지만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미국 GDP의 0.5%, 즉 1000억 달러 가까운 수준이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대중국 적자는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2009년 세인트루이스 연방제도은행(우리의 한국은행이라고 보면 된다)에 실린 논문은 이 그림을 계량경제학으로 실증했다(Fratzscher, Juvenal, Sarno, "Asset Prices, Exchange rates and Current Account",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2009)



표에서 보듯이 환율쇼크는 미국 무역적자의 9%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주식과 부동산 쇼크(버블)은 거의 30%를 차지한다. 조금 단순화해서 얘기한다면 주가나 부동산가격의 상승이 미국의 소비와 건설투자를 능력 이상으로 늘렸고 이것이 무역수지 적자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글 “오바마의 전쟁”에서 썼듯이) 국내에서 곤경을 회피하기 위해 통상전쟁을 시작했다. 오바마대통령은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채권을 무한정 사들이는 양적 완화 정책(Quantitative Easing)을 단행했다.
달러가 넘쳐나면 물론 달러 값이 떨어지고 전 세계 통화는 절상될 것이다. 사실 이건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가 핵폭탄과 같은 최후의 위협용 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오바마는 G20에서 18:2의 상황을 자초했다. 미국 외의 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사상 초유의 비용을 치르고 우리가 배운 교훈은 이제 국내외 자본이동의 속도를 늦추고 금융자본의 몸집을 규제해야 하며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가지 과제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금융거래세와 은행세를 부과하여 자본의 이동속도와 몸집, 그리고 모험적 행동을 규제하고 한 나라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같은 글)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추가한 “금융안정망”과 “개발” 의제는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 이 과제들은 내년에 열릴 파리 G20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제기할 예정이다. 참으로 해괴한 일을 많이 저지르곤 하지만 사르코지는 드골의 후예임에 틀림없다.

결국 내년이 G20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이미 2009년에 SDR(IMF의 특별인출권)을 기축통화로 삼자고 주장한 바 있는 중국과 EU가 연합해서 미국을 몰아 붙일 것이다. 이제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물론 한국도 새로운 통화체제가 훨씬 더 이익이다. 어마어마한 외환을 보유하고도 통화위기를 걱정하는 일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

사실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44년의 브레튼우즈 협상, 그리고 1970년대말 달러 위기 때도 어떤 한 나라의 통화가 아닌 제3의 통화로 기축통화를 삼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렇다면 타협점은 없는가? 있다. 브레튼우즈 때 케인즈가 제시한 국제청산동맹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을 담고 있었다. 즉 일정 한도 이상의 흑자가 쌓인 나라도 벌금을 물도록 해서 현재와 같이 외환보유고를 무한히 쌓을 유인을 줄이려고 했다. 물론 케인즈의 생각은 당시 거대 적자국이었던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고 흑자국이었던 미국이 반대했다.

그러나 1970년대말 달러 위기 때는 상황이 달라졌고, 당시 미국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이 붙는다면 새로운 통화체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바 있다. 지금 한국이 미국을 대변한 국제수지 조정 방안이 바로 그 맥락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나 중국의 새로운 통화체제에 케인스의 안을 삽입하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 달러 기축통화를 포기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장송곡이 되고 말테니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미국은 아직 1940년대의 영국만큼 이빨빠진 호랑이 상태가 되지는 않았다.

한국이 어느 나라에 제일 많이 수출할까? 중국이다. 15% 안팎에 불과한 미국의 두 배 가깝다.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를 합하면 50%가 넘는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경제학자들의 미국의존도는 150%가 넘는다. 이렇게 현실감각, 또는 균형감각이 없는 사람들을 찾기란 좀체 어렵다. 병자호란 때도 명나라 편을 들던 조선의 선비들이 여기에 가까울까?





한미 FTA는?

한미 FTA 재협상을 타결하려던 양국 대통령의 계획은 무산됐다. 모든 게 비밀이니 진상을 알 도리가 없지만 아마도 쇠고기가 문제였을 것이고 자동차 분야에 대한 양보도 문서로 남기자는 미국의 요구 때문에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촛불이 이번에도 한미 FTA를 막아낸 것이다.

G20 이전 일주일 동안 서강대에서 열렸던 “민중대회”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한미 FTA의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는 세계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개혁 논의와도 부딪힌다. 금융거래세나 은행세 모두 투자자 국가제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은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가 한국에서도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금융위기는 한미 FTA의 철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 비춰서 한미 FTA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소리를 고 노무현 대통령 빼곤 아무도 하지 않는 것도 참으로 기이하다.

이제 이명박대통령은 미국에 마지막 피 한방울을 소리 없이 넘기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