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경제평론가)


#1 2009년 초 어느 날들

최장집교수가 오바마를 극찬한다. 최교수가 시카고대학 출신이라서 오바마가 빈민운동을 한 시카고 구석 구석의 지도를 그려가며 실감나게 설명한다. 오바마는 운동 속에서 끝없는 대화와 설득의 위력,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미덕을 체득했다. 초기에 의욕이 넘쳐 곤경에 처했던 클린튼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란다.

“선생님, 꼭 아들 자랑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경제는 그렇게 타협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타협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김상조교수가 슬쩍 웃으며 한마디 한다. “노무현하고 똑같아요”

그렇다. 그는 이제부터 최강의 월스트리트와 싸워야 한다. 똑같은 대위기와 싸웠던 루즈벨트보다 훨씬 불리하다. 루즈벨트에겐 일군의 진보파(progressives) 지식인들과 운동이 있었다. 같이 손잡고 금융자본과 맞서 싸울 산업자본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달러 패권이 확립되는 시기의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다(당시에 쓴 긴 글을 첨부했습니다. 참고하세요).

그가 자랑하는 “두명의 밥”(Bob, Robert의 애칭)의 성향을 보면 로버트 라이시(클린튼 행정부 당시 노동부장관)는 왼팔이고 로버트 루빈(재무부 장관)은 오른팔이라고 할 만하다. 오바마는 오른팔을 들었고 나아가서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대신 서머스와 가이트너를 경제사령탑으로 택했다. 불길한 징조는 더욱 뚜렷해졌다.

#2 안정으로 향한 우리의 길을 수출한다(Exporting Our Way to Stability)

오바마가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뉴욕타임즈에 기고를 했다(2010.11.5).
제목은, 내가 번역을 잘못 한 게 아니라면 위에 있는 그대로인데 여기서 ‘우리의 길’이란 곧 수출이다. 특히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아시아에 수출을 두배 이상 늘리겠다는 다짐이다. 물론 모든 나라가 수출을 늘려서 무역수지 흑자를 거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바마의 몰락을 읽는다. 중간선거 패배를 계기로 오바마는 길을 잃었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제조업을 강조했으니 뭐가 그리 잘못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바마는 금융자본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국민들의 눈을 외부로 돌리려고 한다.




US President Barack Obama speaks during a DNC rally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in Los Angeles, California, October 22, 2010. TOPSHOTS AFP PHOTO/Jim WATSON



글로벌 불균형을 수출로 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왜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약해졌는지, 글로벌 불균형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의 재경부 관료들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는 장치)를 없애려고 할 때마다 항상 하던 얘기가 있다. GE같은 제조업체도 GE 캐피털과 같은 금융업을 하며 대부분의 이익은 금융에서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GE의 경쟁력은 형편없어졌다. 손쉬운 자산 투기, 소매금융업의 이익률이 더 높다면 제조업에 힘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보험자본과 대형병원의 힘에 따라 의료를 온통 시장에 내맡긴 결과 GM은 노동자 한명당 연간 천만원이 넘는 의료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여기서 자동차의 경쟁력이 나올리 없다.

내부의 개혁없이 수출을 늘리려면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할 수 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환율 압력이나 한국의 자동차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자신이 비판하던 FTA 비준에 열을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는 덤핑판정과 상계관세 등 공격적 보호주의를 하면서 오히려 상대에게 보호주의의 굴레를 씌워 별 근거없는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경상수지 적자 변화분의 30%는 자산버블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식 가격의 쇼크는 20분기 후에 경상수지 변화의 17.3%, 그리고 부동산 가격 쇼크는 12.4%를 설명하며 환율쇼크는 9.2%를 차지할 뿐이다.
쉽게 얘기해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부자가 된 기분 때문에 소비와 건설투자가 늘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커진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외국에 절상 압력을 가해 봐도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요는 글로벌 불균형을 개선하려면 미국의 금융과 주택 버블부터 잡아서 수입을 줄여야 하고 의료, 교육 등 비효율적인 부문부터 바로 잡아서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최근 경기부양을 위해 대대적으로 착수한 양적 완화(Quantity Easing)는 미국 통화를 증발해서 다른 나라의 통화를 평가절상시키겠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유동성 함정에 빠진 미국 경제는 다시 한번 버블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의료개혁은 중도반단이었다. 내부의 개혁이 좌초할 때마다 미국은 전쟁에 의존했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나 오바마의 통상전쟁이나 무엇이 다를까?

# 로버트 라이시의 “미국의 두 경제, 왜 하나는 회복되는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가?”(America's two Economies, and Why one is Recovering and the Other isn't)

오바마의 버림받은 왼팔, 로버트 라이시는 11월 6일 자신의 블로그에 ‘두개의 미국경제’에 관한 글을 썼다. “큰 손들의 경제”(Big Money Economy)와 “보통 노동자의 경제”(Average Worker Economy)가 그것이다.
큰 손들이란 월스트리트 트레이더, 대규모 투자자, 고급 전문가들, 그리고 기업 경영자들이다. 위에서 말한 양적 완화 덕에 이들의 손에는 다시 돈이 넘쳐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의 경제는 회복됐다. 그러나 보통 노동자들은 여전히 실업의 위험에 시달리고 가계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양적 완화”는 그림의 떡이다.

물론 그래서 수출을 늘려 고용을 회복하자는 것일테지만 미국의 S&P 500대 기업 40%는 자신의 사업 60% 이상을 해외에서 운영한다. 내부 개혁을 하지 않은 채, 무엇보다도 금융개혁을 하지 않은 채 외부에 압력을 가해 봤자 미국이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단지 중국과의 관계만 악화될 것이다. 물론 오바마가 얻는 것도 있다. 그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는 이명박 정부가 있지 않은가? 애구구.. 어째 2년 전에 내가 쓴 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일까?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1980년대 중반의 플라자협정, 그리고 미일반도체협정을 떠올리며 만만한 나라에 비용을 치르게 하는 단기 해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다만 이제 그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고민일 테고 훨씬 만만한 상대로 한국이 자동차 등에서 먼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목숨을 건 환율전쟁, 금리전쟁, 통상마찰., 심지어 군사적 전쟁.. 그 한 복판에 한반도가 있다.” (일본 세카이지, 790호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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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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