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을 것 같던 폭염도 한풀 꺾여 자연의 시계바늘은 여전히 째깍거리며 제 갈 길을 가는데 어이할꼬,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로 껑충 역행한 듯하다. 작금의 ‘내란 사태’가 내 머릿속 얄팍한 역사책에서 찾아낸 유사 사례는 선조시대 ‘정여립의 난’ 정도다. 하지만 정국의 반전을 노려 조작된 사건이라는 점만 동일할 뿐, 쿠데타 주역의 능력과 명성은 비교조차 민망하고 그들이 작당해 모의했다는 내용 또한 1950~1960년대 지구의 어느 외진 부족사회에서나 가능할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500여년 전의 역사를 떠올린 건, 국가정보원 불법 사건 ‘물타기’가 끝나면 흐지부지 사라질 이 소동 때문이 아니다. 진흙탕 싸움에 혀를 차며 ‘민생’이 걱정될 때마다 ‘유체이탈 화법’의 어명을 하교하는 대통령 때문이다. 투자자를 업어줘야 한다는 비유를 쓰면 곧바로 일국의 부총리가 그 장면을 연출하고, 이마에 ‘나는 엘리트’라고 써붙인 기획재정부(기재부)의 공무원들이 총출동해서 만든 세법 개정안도 단 하루 만에 수정된다. 이 어찌 어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전·월세 대책을 세우라는 어명이 떨어진 지 열흘째인 8월28일, 정부는 ‘전·월세 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온갖 편의를 다 봐줄 테니 집을 사라”는 것이다. 특히 돈의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가 집을 더 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취득세율을 인하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차등세율을 폐지하고, ‘민간임대주택 공급 활성화’를 이유로 임대사업자들의 금리와 각종 세금을 깎아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초주택구입자에게 1%까지 특혜금리를 제공하겠다는 ‘장기주택 모기지 확대’도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부자들을 위한 대책이긴 마찬가지다. 20년에 걸쳐 마이너스 실질금리로 갚는다 해도 현재의 집값으론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지만, 돈 많은 부잣집 자녀는 시중 이자율과의 차이만큼 땅 짚고 헤엄쳐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빨리 집을 사주라는 얘기다.

 

 

전세대책, 이번엔 잘 될까? (경향DB)

 

 

돈 많은 다주택 소유자들을 움직여 집값이 꿈틀거리게 해서 그예 전세 수요자까지 주택 구매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집 하나 가진 중산층마저 빚을 더 늘려서라도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당장 전·월셋값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서민들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 주겠다는 것도 현재의 전·월셋값 상승을 뒷받침해서 결국 구매로 발길을 돌리게 하겠다는 속셈일 뿐이다.

이런 황당한 정책은 더 큰 어명, ‘증세 없는 복지’ ‘국민이 행복한 나라’와 직결돼 있다. 2008년에 시작된 ‘대침체’를 아직도 깔끔하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최근 터키·인도네시아 등의 금융불안까지 덮쳐서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지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설비투자 증가율은 계속 줄어들고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소비를 늘릴 방법도 없다. 그러니 남은 것은 오로지 건설투자뿐이고, 해서 정부는 집값 상승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집값이 더 올라도 괜찮을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이 최근에 발표한 ‘가계 흑자 주택 구매력 지수’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새사연의 이 지수는 현실의 가계가 쓰고 남은 돈으로 집을 사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를 보여준다. 소득 1분위(소득 순서로 나열했을 때 하위 20% 가구)는 아예 불가능하고 그 다음 2분위는 40년, 3분위 27년, 4분위는 23년이다.

여기서 집값을 더 올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준재벌급 부모의 유산 없이(상위 20%인 5분위마저 18년이 걸린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소득만으로 내집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전·월세 상한제이고 장기적으로는 서서히 집값이 떨어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정부는 정반대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하늘 높은줄 모르는 전세값 (경향DB)

 

혹여 정부의 이 정책이 성공한다 해도 단기간의 거품 이후에는 곧바로 붕괴의 지옥이 입을 벌릴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어명은 내년 4% 경제성장이라는 환상 속에서도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가 살길은 서민들의 임금이 올라가고 복지가 확대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첫째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는 것이 둘째요, 그리고 현재의 협동조합 붐이 제자리를 잡는 데 있다.

 

‘민생’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운 대통령의 어명이 바로 그 민생을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게 뻔한데, 허무맹랑한 내란을 조작해서 정국을 주도한들 그 무슨 소용이랴. 그 앞에는 민심의 진정한 내란이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