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후, 주간경향 원고를 바꾸기 위해 쓴 글입니다. 광주행 기차 시간에 쫓겨 마무리하지 못한 채 결국 펑크를 냈죠. 일단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세대간 착취”(intergenerational exploitation)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88만원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에 졌다. 53년 한국전쟁이 끝나 어느 정도 살만해지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아이를 낳았다. 하여 55년생부터 63년생까지 한국의 50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이들이 박근혜당선인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 나(60년생)도 포함된 이 세대는 앞으로 점점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 배고픔을 경험했지만 그들의 부모세대처럼 죽음을 넘나들지는 않았다. 10대와 20대 청년기 때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맛 보았다. 이들 중 일부는 목숨을 건 학생운동을 했고 당시로선 특권이었던 대학생 신분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들의 이타적 행동은 같은 세대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독재 속에서 성장은 30대까지 지속됐고(학자들은 “발전국가”라고 부른다) 웬만해선 취직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독재 속에서도 희망이 활활 타오르던 시대를 살았다. 농지개혁과 전쟁으로 지주계급이 소멸됐고 보편 교육으로 인해 사회적 이동이 가장 활발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신분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고 통계 상으로 그러했다.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그랬지만 일찍이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에 뛰어든 친구들도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세대는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자신의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부동산과 교육 투기 경쟁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높아진 자산 가격은 패배자의 아이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불행하게도 이 “상대적 지위 경쟁”은 대부분을 패배자로 만든다. 자산 가격이 소득보다 더 빨리 오른다면 그건 곧 절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은 40대가 되면서 과거의 이타성을 청춘기의 어리석음으로 치부하면서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한 시민이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걸린 시세표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 :경향DB)

자산 가격 역시 한 없이 오를 수는 없다. 머지 않아 닥쳐올 가격의 파괴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어떤 정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서서히 가격이 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있을 리 없는(놀랍게도 그들은 아직도 ‘거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들이 이명박정부처럼 가격을 끌어올릴 궁리만 한다면, 어느 순간 가격은 폭락하고 말 것이다.

 

인구가 많은 50대가 본격적으로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정체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자산가격의 문제다. 하지만 세대간 정의를 해칠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이번 대선에서도 논의된 노인연금도 그런 종류에 속한다. 연금, 또는 연령 수당이란 한 해에 생산된 부를 세대 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노인연금의 증가는 기존 스톡(자산)의 소유에 더해서 플로우(소득)마저 노령 세대에 유리하게 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들이 대부분의 자산을 틀어쥔 채 근검절약까지 한다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세대간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다. 지난 20년간 일본이 제로성장을 하면서도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데는 이러한 세대간 착취, 세대간 부정의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어떤 세대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집단 간 경쟁은 집단 내 협동을 강화하고 다수결로 대결하는 한 구성원이 많은 세대가 이길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이 70년대부터 성장률이 떨어졌고 일본이 80년대 후반부터 “안정 속의 정체”를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만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오로지 이제 초로에 접어든 50대들의 각성에 달려 있다. 내 자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손을 위해서, 나아가서 아이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생태를 위해서 “혁명적인 정치”를 할 때 비로소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과연 가능할 것인가? 자연으로 말하자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필요한 자산과 돈은 줄어든다. 자산과 소득을 아낌없이 분배하고 아직 남아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아무런 재산도 능력도 남기지 않고 무소유로 죽을 수 있다면 그건 진정한 생의 혁명일 것이다. 언젠가 끄적거린 것처럼 “노인혁명당”이 필요하다. 개인의 각성이 어렵다면 제도적으로 그렇게 만들면 된다. 북유럽의 소득재분배를 넘어서 자산재분배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 집 3형제는 57년, 60년, 63년생으로 모두 베이비붐 세대이다. 짐작컨대 하나와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을 찍었을 것이다. 내가 변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내 동생도 5년 후엔 변하게 될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절망적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와 내 동생을 설득할 수 있을까? 5년간 얼마나 그럴 수 있을까? 5년 뒤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다.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