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5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번에 쓴 것처럼 강력한 재벌규제를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우리 경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다. 단순한 기우는 아닌 것이 재벌들은 이런 정책에 강하게 저항하거나 아예 국민경제를 볼모로 파업을 할 수 있다. 참여정부 때 강철규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총수들에게 하도급 단가 인하를 자제하라고 부탁하자 모 회장은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10% 단가 인하를 지시했다. 나는 정권이 싫다고 정말 수익성 있는 투자를 포기하는(파업하는) 재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자를 미뤄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는 일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재벌규제를 하면서도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는 방법이 있을까? 역시 답은 “안으로부터, 그리고 아래로부터”이다. 자주 듣는 말, ‘9988’이란 우리나라 사업체 수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이들이 고용의 88%를 담당한다는 말이다. 이들이 매년 투자를 10% 늘리고 한 사람씩 더 고용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답은 나왔는데 방법은 뭘까? 우리나라만큼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많은 나라도 없다. 그러나 그 효과는 별로 신통하지 않고, 중소기업 사장들은 언제나 불만이다. 과연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방법이 있을까? 불행히도 그런 묘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이탈리아에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가 있다. 인구 400만에 기업이 40만개가 넘으니 거의 전부가 다 중소기업, 아니 영세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농촌지역답게 와인 같은 농가공품, 가죽신발과 같은 ‘메이드인 이탈리아’, 가구,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이런 제품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공장들이 즐비하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이탈리아에서 가장 못사는 곳 중 하나였던 이 동네는 지금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 산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졌을까? 답은 중소기업 산업지구(요즘 말로 클러스터)다. 이들 중소기업은 네트워크를 이뤄서 기술변화나 국제경쟁에 대응한다.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물건 하나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과 위험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생산 노하우가 공공재인 셈이라서 누구나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자동차도 이런 수많은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만들어낸다. 설마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세계 최고의 명품 자동차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그리고 오토바이 두카티가 여기에서 생산된다.
 
중소기업들의 모임인 CNA, 그리고 협동조합의 연합체인 레가는 오래 전부터 이들에게 회계, 법률, 로비, 컨설팅 등 온갖 사업서비스를 제공했다. 지금은 공동브랜드와 품질관리, 해외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지방정부는 70년대에 산업별로 리얼서비스센터라는 기술컨설팅 서비스를 지원했고, 최근에는 대학과 연구소를 연결해서 바이오메디컬과 같은 첨단산업도 발전시켰다.


이곳엔 하청단가 인하라는 발상이 존재할 수 없다. 수평적 네트워크라 그렇고, 만일 최종 조립하는 기업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사회에서 매장될 테니 그렇다. 물론 장기에 걸쳐 형성된 이런 협동의 네트워크를 당장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방향은 이 쪽이다. 지금 각 지역에 존재하는 유사 중소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사업을 벌이는 것, 거기에 정부가 사업서비스, 특히 경영과 기술컨설팅을 제공하는 것, 지방대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모두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다. 요즘 뜨는 드라마 ‘패션왕’의 동대문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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