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둔 보통 부모에게 교육만큼 절박하면서도 그저 막막하기만 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 과외시키고 애들 닦달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가 과연 승리(?)할지 자신이 없다. 행동경제학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운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마저 없었더라면 벌써 희망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말한대로 우리는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고 개인이 홀로 이 함정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모두 남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나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사교육에 들인 돈만큼 등수가 올라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그렇게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똑같은 사교육을 시킨다면 등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돈을 썼을 뿐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더 나쁘다. 우리는 등수를 올리는 ‘더 좋은’ 사교육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사교육은 더 비쌀 거라고 확신한다. 이제 사교육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요즘 그러하듯 부동산 가격은 주춤거릴 수도, 그리고 곧 곤두박질칠 가능성도 있지만 사교육 값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들이 아이들 대학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할아버지의 재산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은 정확히 이 게임의 성격을 짚고 있다. 높은 사교육 가격은 물론 부자들에게 유리하며, 서울대에 가보면 이 농담이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로또 심리라는 가느다란 희망 줄에 매달려 가망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만 절망적인 게 아니다. 나라 전체로 보면 더 심각하다. 세습귀족이 생긴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게 그 첫째요, 어떻게든 승률을 높이려고 하나만 낳아 인구가 줄어드는 게 그 둘째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머릿속에 구겨넣은 지식이란 게 구글 검색으로 언제든지 즉각 찾을 수 있는 것들뿐이다. 미래에 필요하다는 창조력과 상상력은 암기에 밀려 체계적으로 말살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과연 ‘밝은 미래’가 있을까?


상위 10%를 빼고는(장기적으로는 이들에게도 불행이다) 모두에게 불행인 이런 게임에서 벗어날 길은 과연 없을까? 있다. 지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 여사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평생을 연구한 것이 바로 과거에 인류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해방시켰던 지혜, 그리고 그 논리적 해명이다.

또다시 게임이론으로 단순화하자면 그것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남이 협동하는 경우 나도 협동하는 게 이익이 된다. 즉 남이 배반할 경우엔 나 역시 배반하는 게 낫지만 협동한다면 탐욕에 의해 이를 이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실제로 남들이 안 시킨다면 나도 애들 놀리고 싶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는가? 해서 엄마들은 외친다.

“제발 국가라도 나서서 모두 사교육시키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입시제도가 비합리적이라 해도 최소한 공정경쟁은 확보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 교육감 선거의 결과는 그런 엄마들의 소원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아이들의 불행이니 우리 스스로 풀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음 글의 주제이다.


Posted by moj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