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모델, 붕괴와 부활, 그리고 한국

 

정태인(경제평론가)

 

1. 마이드너의 꿈 -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

 

 

(이번 호에 쓸 글은 상당한 경제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웨덴 모델은 지금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스웨덴 모델은 신정완교수의 믿을만한 책 등으로 꽤 많이 소개돼 있으니 여유가 있으신 분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복잡다단한 역사를 생략하고 렌-마이드너 모델을 단순화한 논리로만 설명합니다. 가능한 쉽게 이야기하려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그건 오로지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스웨덴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내 마지막 질문은 똑같았다. “제2의 마이드너라고 할 만한 사람은 누굴까요?” 때론 렌-마이드너 모델 이후 스웨덴 특유의 독창적 거시모델이 만들어졌는지, 또는 그런 모색을 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다. 그러나 속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마이드너와 한 방을 쓸 정도로 절친했다는 스트리앙교수도 곤혹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LO(우리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의 연구책임자에겐 “당신이 그 후계자가 되길 바란다”고 덕담을 했더니 그는 “말도 안된다”며 얼굴을 붉혔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는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평등교육과 성평등 정책에 관해 담당자에게 직접 들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그런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전반적인 거시모델에 관해서 물었으니 답이 신통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 답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지금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스웨덴이 이번 여행기에서 뭔가 냉대를 받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런 ‘불평등한 질문’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마이드너 자신이 1998년 인터뷰에서 받은 것이기도 했다. “창조적인 사회민주주적 개혁의 새로운 목소리를 들은 게 있나요?”(실버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있냐구요? 나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건 (83살이나 먹은 늙은이라서) 내 잘못이겠죠”(마이드너)

 

요스타 렌과 함께 1951년 저 유명한 렌-마이드너 모델을 만들었던 루돌프 마이드너는 1993년 “왜 스웨덴 모델은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썼다. 한 때 빠른 성장과 동시에 최고의 복지를 누림으로써 온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스웨덴 모델. 그 설계자가 실패를 자인할 수 밖에 없는 비통함이 글 안에 절절하다.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했던 그 모델의 핵심은 무엇이었고 왜 무너졌는가?(지면 때문에 다음 달에 얘기하겠지만 지금은 ‘스웨덴 모델의 부활’을 논하고 있다. 여전히 스웨덴은 세계 최고이다. 최근의 금융위기 때도 미국 언론들은 ‘스웨덴에서 배우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바로 1990년대 초 스웨덴의 정책을 따르자는 얘기니 과연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마이드너 스스로도 자신이 쓴 LO의 제안서(1951)를 ‘케인즈주의의 수정’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이들의 관심은 케인스의 ‘실업 대책’이 아니라 정반대로 ‘안정정책’이었다. 유럽의 북쪽 외진 곳에 있었던 덕에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피했고 더구나 전후 유럽의 부흥기를 맞아 스웨덴은 초호황을 누렸다. 따라서 스웨덴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인플레이션이었는데 문제는 동시에 완전고용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른바 ‘필립스 커브’(최초로 필립스가 인플레이션과 실업율의 트레이드 오프 관계를 논문으로 쓴 해는 1957년이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한 경험은 독특한 인플레이션 이론을 가지도록 했는데 그것은 초호황으로 숙련 노동자를 구하기 힘든 수출대기업이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의 노동자에게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임금-물가 연쇄 상승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으로 알려지게 되는 뉴케인지언의 이론을 이들이 생생한 경험 속에서 이미 깨닫고 있었다는 얘기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의 동시 달성이라는 꿈의 비법은 무엇일까? 물가안정을 위한 재정긴축정책과, 동시에 산업간 임금격차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연대임금정책이 그 핵심이다. 물론 이것은 LO와 SAF(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기업가들의 모임)가 중앙교섭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출대기업으로서는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줘도 되니 대환영이고, LO는 평등과 연대라는 사회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그림1> 참조).

<그림 1> 렌-마이드너 모델

 

문제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한계산업 또는 중소기업들이 파산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렌-마이드너 모델이 지닌, 또 하나의 독창성이 나오는데 바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다. 노동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동시에(70년대 이후 스웨덴의 실업수당은 이전 월급의 80% 수준을 넘나든다) 성장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재교육/재훈련을 하는 것이다. 훗날 학자들이 ‘일자리 보장’(job security, 즉 평생직장)이 아닌 ‘고용보장’(employment security)이라고 부른 정책이며, 요즘 유행하는 유연안정성(flexecuity)의 원형인 셈이다. 여기서 유연성(flexibility)이란 곧 노동자의 이동성(mobility)이며, 말하자면 노동자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이다. 마이드너는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을 당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율조정’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수출대기업 등 고생산성 산업부문이 초과이윤을 누리고 결국 권력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70년대 중반에 마이드너는 ‘임노동자 기금안’(마이드너 플랜)을 내 놓는다. 원안은 대기업 이윤의 2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해서 노조가 관리하는 기금에 내 놓게 하는 것으로 이렇게 20-30년이 지나면 노조는 웬만한 기업의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물론 SAF 등 자본가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사민당도 세가지 의견으로 분열했으며 결국 LO와 사민당 관계는 서먹해지고 끝내 사민당의 패배로 이어져서 마이드너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결과가 그렇다 해도 임노동자기금안은 시장경제 틀 내에서 실제로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정책이었으니 기금사회주의자(fund socialist)인 블랙번이 2005년 마이드너가 세상을 떴을 때 조사에서 그를 ‘끝없이 실천적인 비전있는 사회주의자’라고 칭송할만 하다. 마이드너 스스로 말한대로 임노동자기금은 렌-마이드너 모델의 원래 요소는 아니었지만 그림에서 보듯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정책이었다. 다만 왜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든 70년대말이 아니라 최상의 조건이었던 50년대 말부터 시행하려 하지 않았을까가 아쉬울 뿐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렌-마이드너 모델은 짧게는 노동자 주도의 독창적 구조조정 정책이고(사실 이들의 독창적인 임금-물가상승이론이나 수출대기업의 이익이 되는 연대임금 모델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심지어 ‘반노동자적’ 정책으로 비판받기 십상일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장기전망을 가진 모델이었으며 실제로 약 20여년간 스웨덴 경제가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든 동력이었다. 물론 이런 성공은 80%에 이르는 노조 조직률과 평조합원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점은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스웨덴 모델의 장기 위기를 설명하는데도 필수적인 요인이며 동시에 최근의 ‘부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다음 호에 계속).

 

 

 

2. 스웨덴 모델의 붕괴와 부활, 그리고 한국

 

 

(저는 결코 스웨덴 전문가가 아닙니다. 일주일 갔다 오고 한두달 공부를 했다 해서 어떤 나라를 안다고 한다면 그건 선무당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글이 바로 그렇습니다.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스웨덴 논쟁에서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혹시 독자들을 호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그러하듯 우리나라에 관한 생각을 스웨덴에 투사하는 오류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신정완교수, 조영철박사의 글을 꼭 같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온갖 경제학 이론이 다 등장하기 때문에 어려우실 겁니다.)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

 

마이드너가 비통한 마음으로 위 제목으로 글을 쓴 때는 1993년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내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노정하던 스웨덴은 그예 1991년 통화위기를 맞았다. 1984년에서 94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3.0% 증가한 반면 스웨덴은 1.4%에 머물렀다. “스웨덴 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미국과 스웨덴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앞다퉈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이 일할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에 물들게 했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공짜 점심(예컨대 월급의 80%에 해당하는 장기 실업수당)을 주는 데 왜 일을 할 것이며 병가를 내도 조사를 하지 않으니 툭하면 집에서 쉬는 게 당연하다(도덕적 해이). 소련-동구가 그렇게 망했는데 ‘북구사회주의’(미국이나 주류경제학 쪽에서 보면 북구는 사회주의다)라고 어디 가겠는가?

 

미시논리(이기적 인간의 행동 원리)로 보면 그럴듯하고, 또 주위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어서 바로 수긍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은, 훗날 린더트에 의해서 철저히 실증적으로 반박되었다. 현실에서도 스웨덴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1%를 성장해서 미국의 2.8%보다 높은 성장률을 거둠으로써 ‘부활’하게 된다. 물론 임금격차 등 각종 평등 지표에서 스웨덴은 여전히 수위를 달리는 반면 미국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렇다면 지난 번에 살펴본 렌-마이드너 모델은 왜 70년대 중반부터 작동하지 않았을까? 또 90년대 중반 이후에 다시 효율과 평등의 균형을 찾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 번째 원인에 대한 마이드너 스스로의 진단은 이렇다.

 

우선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네번에 걸친 대규모 평가절하 등)으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 반면 원래부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던 연대임금정책은 효력을 상실했다. 그는 첫 번째 이유로 그 스스로 심혈을 기울였던 동일노동가치-동일임금이라는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데 실패했다고 자책한다. 기업가 집단이 중앙교섭을 거부하면서 기업의 이윤격차가 임금격차를 낳았고(효율임금의 적용) 노동자의 연대는 훼손되어 임금부상(wage drift)과 와일드캣 파업이 빈번해졌다. 마이드너의 확신대로 임금격차와 노동자 간의 경쟁은 자본가의 통제 능력을 극대화한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최저임금법 등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이것은 곧 사회적 합의 모델이 붕괴한 것을 의미했다.

 

마이드너는 애써 희망을 찾는다.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에서 동맹을 찾아내는 능력이 사회민주당이 지도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스웨덴 사회주의가 다시 일어서려면 “스웨덴 노동운동이 원래 모델을 회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져야 하며 여전히 연대임금과 집합적 자본형성이 그 핵심이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가치에 기초한 사회라는 이상(notion)은 비인간적 시장의 힘에 의해서 절멸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

 

렌-마이드너 모델의 붕괴

 

비전문가로서 단언하건대 렌-마이드너 모델은 훗날 단순화된 케인스 모델이 아니다. 20-30년대의 케인스의 정책 처방만 놓고 본다면 70-80년대 스웨덴 좌우파 정부의 정책이야말로 케인스주의에 가깝다.

 

예컨대 위기 시의 평가절하 정책이라든가(물론 케인스의 주장은 처칠 정부의 금본위제 집착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유효수요 부족을 메우기 위한 재정확대 정책이 그러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금융세계화와 기술혁명이라는 조건에서 이런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한 인식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대내적으로는 과거의 스웨덴 모델, 즉 노조나 기업가 등 주요 행위자들의 행동양식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점에서 70-80년대의 정책은 대위기를 낳았다.

 

분명 관대한 복지제도가 이미 70년대부터 노동규율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국제분업의 측면에서 포드주의가 세계적으로 일반화하면서 스웨덴의 철강, 조선산업이 일본, 그리고 뒤이어 한국 등에 밀리기 시작했다. 장기적인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부르주아 연립정부나 사민당 정부가 모두 선택한 것이 대규모 평가절하정책이다. 76-82년에 집권한 부르주아 연립정부는 사양산업에 대한 보조금과 고용유지지원금도 지급했다. 이 모두 인플레이션 억제와 생산성 향상(즉 구조조정)을 통한 완전고용 달성이라는 렌-마이드너 모델과는 정반대의 정책이다. 대규모 보조금이 가져온 재정적자는 공공저축의 증대라는 또 하나의 축도 무너뜨렸다(<그림1> 참조).

 

인플레이션은, 어쩌면 당연하게 렌-마이드너 모델을 붕괴시켰다.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특히 85년의 대출상한규제 철폐), 조세개혁(특히 91년 이자에 대한 조세감면)은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넘어 폭발적인 거품경제를 불러 일으켰다. 평가절하로 인한 무역흑자에 대해 불태화정책(통화환수)을 쓴다면 수출-내수 부분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수출분야의 남아도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더 쏠리게 만든다. 이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가면(투기공격) 바로 외환위기이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자를 붙잡기 위해 이자율을 무려 500%까지 올려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스웨덴 모델의 부활?”

 

그렇다면 지난 10여년의 성장률 회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없이 많고 더구나 인구 900만명의 소규모 수출경제는 대외 조건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번의 금융위기가 스웨덴에 얼마나 타격을 줄지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90년대 초반에 정립된 정책기조(신정완교수의 “통화주의적 사민주의”)가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스웨덴의 부활’ 또는 성장과 평등의 균형이란, “80년대의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시스템이 스웨덴 고유의 장점들을 흡수해서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국면에 들어간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가설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렌-마이드너 모델은 거시적으로 볼 때 안정정책이었으며 동시에 동학적으로 볼 때는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정책이었다. 물론 마이드너의 기대와 달리 연대임금정책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지 않았다. 경제의 구조변화와 함께 금속노조(주로 수출대기업 산하)의 영향력은 눈에 띠게 줄어들었고 화이트칼라 노조와 공공노조 등이 하나의 중앙교섭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으로 첨단 벤처기업이 늘어나게 되면 업종의 다양성을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리로 포괄하는 임금결정제도를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자본 쪽에서도 기업별 분권교섭과 와일드캣 파업이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1997년 “산업발전과 월급 형성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산별, 지역별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분권화된 중앙교섭이 복원되었고 부분적으로 금속노조의 리더십도 회복되었다. 여전히 80%에 가까운 조직율은 노조가 언제든 적극적으로 거시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이하 <그림2> 스웨덴 모델의 부활 참조).

 

 

산업의 다양화와 불확실성의 증대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유효성도 의심을 받고 있지만(급변하는 환경에서 미래에 어떤 산업이 잘 나갈 것으로 알고 거기에 맞는 맞춤교육을 어떻게 하겠는가?) 지방분권형 노동시장정책이 클러스터와 결합된다면 (네트워크의 정보효과로) 이 문제는 더욱 효과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전통의 보편적 사회서비스(교육, 보육, 의료 등)도 과거처럼 증가 일변도는 아니지만 GDP의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스웨덴 국민의 복지와 고용을 동시에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평등 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구3국은 돌아가면서 성평등지수 1,2,3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 특유의 개인 과세와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지만 성평등정책(출산휴가와 육아제도 등)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율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고용율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성평등이 더욱 진전되면 첨단산업이나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90년대를 거치면서 스웨덴이 산업구조 고도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에릭슨이 상징하는 IT산업이나 바이오산업, 그리고 사업지원서비스 분야의 클러스터(기업-연구기관-지원서비스의 지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는데 폰투손 등 일부 학자들은 이를 독일의 도제식 직업교육에 대비하여 스웨덴의 평등교육(특히 기초교육의 강화)에 연관시키고 있다. 협동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북구형 교육이 네트워크형 협동을 필수로 하는 클러스터 발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모델에 비해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거시적 안정의 메커니즘이다. 자본이동과 변동환율제 하에서 안정의 닻(앵커)을 과거처럼 노동부문이 떠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좌파나 케인지언 쪽에서 격렬하게 비판하는 지점이지만 내가 보기에 스웨덴의 EU가입과 중앙은행 강화는 환율과 금리의 안정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케인스 역시 인플레이션을 줄곧 경계했으며 물가는 중립적 위원회(잉글랜드 은행과는 다른)가 관리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결국 그림에서 보듯이 렌-마이드너 모델은 대폭 수정된 상태로 복원되었다(또는 평등전략이 관철되는 새로운 스웨덴 모델이다). LO-사민당의 거시안정정책은 EU의 안정협약과 중앙은행이 사전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과거 산업사회 시절에 연대임금정책이 담당하던 역할은 더 넓은 사회 제도/정책들, 즉 분권화된 임금교섭, 성평등정책, 평등교육정책 등이 나눠 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처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클러스터의 발전은 다수 시민의 참여 속에서 지속적인 구조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 감히 가설적으로 말하자면 스웨덴, 조금 더 넓혀서 북구의 사회경제를 지배하는 정신은 기본적으로 ‘자제의 경제학’(economics of self-restraint)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변화에 맞서는 ‘자조의 대응 경제학’(economics of self-help response)이다.

 

다만 마이드너가 시도했던 임노동자기금과 같은 장기적인 소유의 사회화 전략은 아직 찾을 수 없다. 금융자본주의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이 때,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역할(사회공헌 투자)은 분명 바람직해 보이지만 여기에서 길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일 것이다.

 

한국과 스웨덴 - 정반대 방법으로 유사한 성공을 거두다?

 

스웨덴모델을 공부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성장전략에 관해서 한국과 스웨덴이 보인 유사성이다. 우선 수출경제라는 점이 그렇고 또한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이뤘다는 점이 그렇다. 외환위기를 공통으로 겪었고 교육에 힘입어 IT등 산업구조 고도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나 그런 성장을 향해 밟은 길은 거의 정반대다. 스웨덴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평등 전략을 고수했다면 한국은 줄곧 불평등 전략을 구사했다. 똑같이 임금을 억제했지만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가 스스로 했다면 한국은 군화발과 제도로 짓밟았다. 한쪽은 80-90% 조직된 노조가 거시 정책을 결정한다면 한쪽에서는 10% 남짓의 노조가 극한의 생존 투쟁을 한다.

 

똑같이 교육 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자랑하지만 한 쪽은 평등과 협력교육을, 다른 한 쪽은 극단적 경쟁교육을 시키고 있다. 결국 성장률은 한국이 조금 높지만 평등에 관한 모든 지표는 극과 극을 보이고 있다. 내 이해가 맞다면 스웨덴은 신자유주의의 압력을 평등의 성장 흐름 안에 외적 규제로 흡수했고 한국은 신자유주의를 전 사회의 운용원리로 받아 들여 모든 부문에서 극단적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 변화에 대한 개인의 마지막 대응은 출산인데, 한 쪽에서는 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출산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출산율이 1.13까지 떨어졌다.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가치를 떠나서 과연 어느 모델이 지속가능할까? 내 원래 전공이 클러스터/산업정책이어서 그런지 나는 클러스터의 발전에서 두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본다. 평등이 다양성을 낳는 사회, 자발적 협력이 이뤄지는 사회가 아니고선 아무리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도(결국 기업도시/혁신도시로 변질된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클러스터였다) 클러스터는 위에서부터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이 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생태의 지속가능성이 최우선의 가치로 주목받지만 건설업의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자연은 파괴될 수 밖에 없다. 스웨덴이 자제와 자조의 모델이라면 한국은 강제와 타율의 모델이다. 한 쪽은 생명을 북돋우고 한 쪽은 생명을 죽인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Posted by moj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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